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레멘타인 Apr 30. 2018

라운지 b의 탄생

강릉 독서 클럽



과연 사람이 모일까?

강릉 독서클럽 라운지 b 모집 공고를 페이스북에 올리고 난 뒤 불면의 밤을 보냈다.

동네 새로 오픈한 카페 웨이브에서 클럽장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나는 '이거다!' 했다. 하지만 호기롭던 잠깐의 도전 의식이 사라지자 사람이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는 무시무시한 불안감에 컴퓨터를 끄지도 못 한 채 가입 신청서 사이트를 들락 거렸다.


좋아요 숫자가 동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페이스북의 친구 숫자와 포스팅 좋아요 숫자가 오프 라인 연결과는 무관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는 것은 현실이 되었을 때의 불안에 비하면 봄바람이었다. 아무도 안 모여서 이렇게 사라지는 이야기가 되면 어쩌지? 사람들이 그 일 어떻게 됐냐고 물으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나는 이미 실패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예 누군지 모르거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들이 더 많다. 그리고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나는 내 이야기를 쓰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지 다른 사람의 생활과 안녕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았다.


그런 내가, 그 정도로 타인을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이, 이제 타인의 관심과 이해 그리고 더 나아가 참여를 원한다고 하니 스스로도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진짜 못난 인간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이미 계속 살아왔다. 그래서 어떤 연결고리도 만들지 못 한 채 이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나의 프로젝트는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시작되어야만 했다.


아니,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관념적인 인간에서 진짜 현실 속의 인간으로 알을 깨고 나가고 싶었다.

 



다행히 포스팅을 올린 다음 날 한 사람의 신청서가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잘 아는 사람. 나는 마음이 시무룩해졌다. 겨우 아는 사람 잔치를 만들려고 시작한 걸까. 마땅한 답변을 빠르게 하지 못했다. 그렇게 잠시 우울한 생각을 하다 나는 내 머리를 꽁 때렸다.


이 멍청아. 아는 사람이라고 너의 모든 일에 관심을 가져 준다는 보장은 없어.


그렇게 천둥벌거숭이 같은 이기심을 한 방에 잠재웠다. 그래. 이왕이면 더 마음을 가볍게 해보면 어떨까.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 보고 안 되면 될 때까지 해보는 거.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와도 좌절하지 않는 거. 부끄러워하지 않는 거.


인생에서 그런 사건 하나쯤은 이제 만들어봐야 하지 않겠니?


혼자서 어떤 프로젝트나 실험을 하게 되면 철저하게 혼자 질문과 혼자 대답을 하는 셀프 현자와 우자의 상태로 지내게 된다. 좌절 전문가 내가 동기 부여 전문가 나와 끊임없이 내 세계관을 차지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난상토론을 벌인다.


이걸 왜 해? 넌 결국 망하고 말 거야. 사람들은 널 비웃겠지.

VS

마음을 따라가. 이 일부터 시작해보는 거야. 누군가 널 응원하고 있어.


'나'들아, 다 시끄럽고.

오늘부터 나는 무조건 '긍정이'에게 한 표 주기로 했다.



인스타에도 올리고 독서 클럽을 할 장소에 가서 카페 대표님 하고도 상의했다. 솔직히 상의라기보다는 '그 일은 내가 할 것이요.' 하는 선언이었다. 그렇게 미리 밑도 끝도 없는 선언을 해 놓으면 좌절 전문가 내가 도망갈 구멍을 좀 더 좁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정이의 의문의 1승.


독서모임은 처음에 7명 정도로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에 회비 2만 원? 음. 생각보다 좀 비싼가. 나는 회비에 대한 고민을 하다 결국 1만 원으로 책정하고 독서 모임 공고가 적힌 프린트물을 들고 가까운 시립 도서관으로 향했다.


읽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이 된다는 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니까 어디선가 내가 쓴 글을 누군가 보고 있다는 시선의 압박과 마주치게 되는 일은 불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압박을 딛고 서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도 불편했다. 내 게시물에 대한 부끄러움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꼭 그럴까?  


'나 역시 남의 게시물에 그렇게 열혈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니니, 분명 다른 사람들도 제 삶을 꾸리기 바쁠 것이다.'


하고 나의 불안을 좀 덜었다.

보여줘야 하는 삶이 당연해지는 세상이 되었다는 걸 이제 인정해야만 했다.


시립 도서관에 공고를 붙이려면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처음으로 도서관 사무실에 찾아가 프린트를 내밀었다. 한 달간 게재를 해준다고 하고 붙이는 건 도서관 재량. 나는 선생님에게 숙제를 제출하는 학생의 마음으로 허락을 맡고 게시물을 내 손에서 떠나보냈다. 도서관을 빠져나오는 데 뭔가 허탈했다.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어야 하는 데 너무 기대하지 말자는 스스로의 다독임 자체가 왠지 그건 그일 대로 불안했다. 정말 사람들이 다 제 삶에 바빠서 아무도 안 읽어보면 어쩌지?


하. 진짜 나도 심각하다. 이 정도면 정신 분열인가.

실체도 없는 불안의 고통이 마루에 놓인 장난감 기차처럼 끝없이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니 참여하고 싶다는 덧글이 하나 둘 달리기 시작했다.참여한다와 참여하고 싶다는 꽤 먼 거리다. 하지만 나의 기대감은 상승되었다. 약간의 희망이 보였다. 그들이 하고 싶다에서 하겠다로 어서어서 마음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렇게라도 같이 응원해주고 관심 보여주는 사람들이 너무 고마웠다. 일이 이렇게 정말 진행되는구나.

이대로 딱 3명만 모여도 그냥 진행하겠다 마음먹었다.


아. 인스타 DM으로 참여하겠다는 메시지가 왔다.

나는 급하게 참여 감사 문구와 안내 메시지를 작성했다. 그리고 잠시 뒤 바로 모임 회비 계좌 입금이 되었다.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Really? 정말 되는구나.




약 1주일 만에 다섯 사람이 모였다.

누가 보면 엄청 많이 모은 것 같아 보이겠다. 하지만 내 인생 첫 주관 모임이고 프로젝트다. 그래서 참여해준 사람들이 너무 고맙고 한 사람 한 사람 다 소중하다. 혹 시간이 더 많았다면 더 모을 수 있었을까?

그건 솔직히 모르겠다. 바로 모이는 사람은 정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다는 뜻이고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결국 내가 발굴해내야 하는 작업인데, 여기서 부터는 기술적이거나 더 적극적인 홍보 활동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독서 모임은 꽤 오래전부터 하고 싶다고 생각해 왔던 일이다. 그건 어떤 경제적인 활동도 아니었고 인맥 교류를 위한 장도 아니었다. 그냥 마음이 원하고 있었다. 어떤 욕망이 가슴 언저리에서 늘 일렁거리고 있는 데 그 밑바닥에 무엇이 깔려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 독서 모임 활동을 하면서 내가 천천히 날 알아갈 수 있겠지.


서른 중반이 넘고 알았다.

그래. 세상에는 가끔 내가 원하기만 하면, 손을 뻗어 잡기만 하면 되는 일도 있다는 걸.

시작하는 것에 있어서 너무 많은 것을 다 알려고 하지 말 것.

그리고 불안함은 그저 친구처럼 데리고 다니되 그 순간에 최선을 다 할 것.

최선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 한 발 더 나가볼 것.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위한 일을 먼저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어떤 일들은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이런 기분을 기록하기 위해 독서 모임 후기를 꾸준히 올려봐야겠다.



@클레멘타인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애장품은 무엇인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