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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Jun 30. 2018

직립 보행

#클레멘타인 솔직 에세이

2018. 6.30


타임머신이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나에게 그건 꼭 그런 건 아니라고, 다 너의 오해라고 다정하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렇다.

다정해지고 싶다.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너무도 혼란스러웠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말이다.

타인에 대한 미움으로 얼룩져버린 마음을 어쩌지 못해 괴로워하던 나에게 다정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어린 시절에는 감정을 절제하는 방법이나 드러내는 방법 또는 공유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솔직히 모르겠다. 그냥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뜻이다.


친구들은 말도 없고 비밀스러운 내가 어딘가 궁금하다고 했다.

나는 떠드는 입보다는 듣는 귀를 갖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표현할 일이 없었다.

그런 부족한 인간이라도 좋아해 준 걸 보면 나는 참 다행스러운 인생을 건너온 것 같다.


생물학적 아빠는 늘 부재했기에 나는 기대하는 남자상이 없었고

다만 어린 시절 내게 다정했던 사람이 남성에 대한 가치관을 세웠는 데 그 일은 꽤나 오랫동안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았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연애 상대로는 빵점이었다.

물론 지금도 뭐 그렇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지만 그때는 좀 부끄럽다.


사회적인 풍토나 내게 다정했던 사람들 그리고 기본적으로 내재된 나의 이기적인 성격까지 합쳐지니 연애 상대로는 꽤나 복잡한 여자라고나 할까. 게다가 표현력과 공감력이 부족한 사람이 하는 사랑은 언제나 롤러코스터. 감정 기복에 떠밀려 왜 싫은 지, 왜 좋은 지 정확한 이해도 없이 늘 비틀거렸다. 사랑은 받되 주는 방법을 몰라 억누른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엉뚱하게 극단적으로 충동적인 일을 하기도 했다.


늘 살얼음 위를 걷는 사람처럼 누군가와의 관계는 어긋나고 부서졌다.

내가 기대하는 만큼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상을 씌워 이리저리 흔들어 놓았다.

남자는 이래야 해. 사랑은 이래야 해.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가 만들어 놓은 틀에서 다들 꽤나 피곤했겠다.

미안.


돌이켜보면 지나간 사랑은 어딘가 불편한 존재들이었지만, 나 역시 좋은 사람은 아니었던 거 같다.

그래서 조금 서글프다.


매번 누군가의 품에 매달려 우는 일 밖에 할 줄 몰랐다.


36년의 세월 동안 꽤 많은 사랑과 이별을 했지만 모든 게 사랑이었나 또는 진심이었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어딘가 혼란했던 시절의 감정이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누군가 나를 바로 잡아주길 기다리고만 있었던 건 아닌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요즘은 모든 감정에서 빠져나와 나를 관찰하거나 하루를 리마인드 하는 일을 자주 한다. 내가 했던 행동이, 또는 그런 감정과 말들이 정말 필요했었을까 하는 생각들로 나를 다 잡는다.

그렇게 스스로 좀 더 날을 세우고 주체적이며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오해는 안 했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이에게 기대고 또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당당한 사람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으려고 하면, 결국 단 한 사람에게 무너져 내리니까.

그래서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게 종속됨과 동시에 가치관에 혼란을 느끼게 돼버리니까.


적당히 기댈 줄 아는 것과 적당히 설 줄 아는 것.


아이가 걸음마를 하기 전에 배를 밀다가 뒤집다가 붙잡고 건들건들 거리다가 제 혼자 가는 것처럼.

그 오랜 시간을 단계별로 쪼개서 하나의 목표를 위해 차근차근 노력해 나간다.


생각해보면 왜 우리는 그토록 중요한 인생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까.

저 혼자 서는 일.

내가 지금 이렇게 두 발로 딛고 설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그 일이 얼마나 주체적이고 위대한 도전이었는지 스스로 기억하는 일 말이다.


그런 기억을 평생 안고 산다면,

이 평범한 행위들이 얼마나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일인지 가슴에 새기고 살 텐데 말이다.


서고, 걷고, 뛴다.

그건 자유다.


어떤 일들은 너무나 당연해서 가끔 중요함을 잊고 살게 된다.

이해되지 않는 오해들로 모든 게 다 부러지거나 사라지고 난 후에야 텅 빈 공간을 서러워한다.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여지를 주고 나는 다시 삶을 떠덕떠덕 깁는다.

타임머신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미워하다가도 다정해지고 더 다정해지려고 하는 중이다.



... 꽤나 긴 여정을 통과해왔으니까.



@클레멘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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