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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Jul 09. 2018

친구 집밥

2018. 07. 09


어릴 때 친구 집 밥을 먹는 걸 좋아했다.

우리 집에는 늘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꽤 오랫동안 친구 집을 전전하며 밥을 먹었는 데 그 일을 부끄러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고 엄청나게 좋아했다.


산꼭대기를 올라가면 아파트 두 채가 나란히 있었다. 

옆 동에 살던 친구 집은 부모님이 분식집을 하셔서 학교가 끝나고 우리끼리 집에서 밥을 먹어야 했는데, 그 집에서 너구리를 처음으로 먹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라면이라는 게 한 가지 브랜드를 고집하면 집에 매매 그 라면만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안성탕면을 먹던 우리 집은 너구리를 먹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으나 그 친구 집의 주 라면은 너구리였다.


열한 살의 나는 라면에 미역(물론 이건 다시마다)이 커다랗게 들어있다는 사실과 면발이 엄청 퉁퉁하다는 사실에 꽤 충격을 먹었던 거 같다. 물론 맛있게 먹었지만 지금도 너구리는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면발이 아니라 거의 사 먹지 않는다.


또 다른 친구 집은 어머니가 엄청 자상했고 친구들을 종종 초대해 밥을 먹였다. 때론 어머니가 집에 계셨지만 우리끼리 무얼 해 먹는 날도 많았는 데, 그 집에서는 김치볶음밥을 주로 먹었다. 친구가 만든 김치볶음밥은 우리 엄마가 해준 던 맛과 차원이 달랐는 데 엄마는 매 번 잠에 취해 김치볶음밥을 볶아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머리카락이 들어있거나 식용유가 겉돌아 밥알들이 흩어졌다. 


나는 약간 질퍽한 밥을 좋아했고 친구의 김치볶음밥은 약간 찰기가 있었고 달았다. 특히 마지막에 듬뿍 넣는 참기름이 (들기름 인지도 모르겠다) 엄청 고소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열두 살의 친구가 만든 김치볶음밥이 내겐 훨씬 맛있었다.


그래서 매번 친구 집에 갈 때마다 친구에게 김치볶음밥을 해달라고 했던 거 같다. 그리고 그곳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수정과를 먹었는 데 알싸한 계피향이 입안 가득 퍼지는 게 좋았다. 투명한 유리 볼에 담긴 홍갈색의 수정과 위에 잣 세 개가 동동 거리며 헤엄을 치고 있었다. 향은 좋은 데 맛이 이상해 사약을 받듯이 단 숨에 들이킨 후 입안에 남은 잣 세알을 혀로 굴리며 오도독 오도독 씹어 먹곤 했다. 당시 우리 가족은 외할머니댁 작은 방에 얹혀 살았었고 외할머니는 바깥 장독에 식혜를 묻어두곤 하셨기에 식혜는 알아도 수정과를 먹을 기회는 없었다.


또 다른 기억은, 엄마를 좋아하던 아저씨 집에서 짜파게티를 얻어먹는 거였는 데 집에서 끓여준 맛과 전혀 다르고 바짝 졸은 짜장 양념이 면발에 환상적으로 붙어 있어 밤이면 밤마다 맛있게 먹으며 엄마를 함께 기다리곤 했다. 그 일은 늘 내게 행복이었는 데 지금도 그 짜파게티만큼 맛있는 짜파게티를 먹은 적이 없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나서는 친구들과 밖에서 떡볶이를 사 먹는 걸 한동안 즐겨 친구 집밥을 먹을 기회가 적었던 거 같다. 게다가 나는 전학을 다니기 시작했고 도시는 집과 집 사이의 거리가 멀어 친구 집에서 자주 밥을 먹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친구 집에 가는 버릇은 여전히 고치지 못해 전학 간 뒤에도 나는 친구 집에서 숙제를 하거나 o.p.p.a 뮤직 비디오를 같이 보거나 시시한 이야기들로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런 나의 기이한 방랑 습관, 친구 집과 친구 집밥 사랑은, 꽤나 오랫동안 유지되었는 데, 고등학교 때도 자취를 하느라 3분 거리에 있는 친구 집에서 밥을 종종 얻어먹었다. 그 집 반찬은 꽤나 맛이 독특했는데, 엄청 엄청 두꺼운 계란말이를 소금을 넣지 않고 만들어주시거나 눈알이 퉁퉁 불은 생선 대가리만 모은 국을 내놓으시기도 했다.


나는 그 친구와 2년 동안 같은 반이 되어서 친구 어머니가 싸주는 도시락을 함께 먹거나 그 집에 가서 자거나 집 밥을 얻어먹는 등 다양한 시간을 그 집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친구도 내 자취방에 와서 종종 잠을 자기도 했는 데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 그저 우리 집에 와서 잠만 자는 형태였다.


침대가 꽤 넓어서 친구가 안쪽에 눕고 나는 바깥쪽에 항상 누웠는 데 당시 막 핸드폰 문자가 유행하던 시기라 친구는 핸드폰을 항상 두 손에 꼭 쥐고 문자를 보내다가 중도에 잠들곤 했다. 한 번은 도둑이 들기도 했는 데 이 일은 다음에 이야기하려고 한다.


대학에 온 이후로도 종종 부천에 사는 친구 집까지 찾아가서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간다던지 명절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오곤 했다. 친구 집에는 어머니가 직접 만든 이불이 있었는 데 그 이불은 세상에서 가장 촉감이 좋은 잠 잘 오는 이불이었다. 나는 종종 친구에게 그 이불을 훔쳐서 달아나야겠다는 말을 했다.


집 밥에는 그 집만의 고유한 이야기와 맛이 있고 그걸 느끼는 건 꽤나 행복한 일이다. 아무튼 내 인생에는 친구 집과 친구 집 밥이 꽤나 중요한 일이었는 데, 그런 소중한 사람들이 어렸던 내 곁에 있어줬고 이런 민폐스러운 나를 받아주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우리 집에 친구를 들이는 일이 거의 없었고, 우리 집보다는 친구 집 가서 노는 걸 좋아했으며 변변하게 우리 집에서 무얼 해서 먹여 본 적이 없다. 나는 지금도 요리를 싫어하고 귀찮아한다. 집에 사람이 오는 것도 그다지 반갑지 않다. 


꽤나 이기적인 삶이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남의 집에 가서 밥을 먹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 이 나이에 남의 집에 가면 며느리감이 되거나 아이 엄마들의 일손을 늘리는 일밖에 못 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변에 자취하는 친구가 있다면 가서 밥을 흔쾌히 먹을 생각은 있다. 타인의 흔적이 오랫동안 남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빈둥 거리며 의미 없는 농담을 하는 것이다. 그 일은 꽤나 재밌으니까. 나는 여전히 우리 집에서 노는 것보다 친구 집에서 노는 게 더 재미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게는 매번 아무 말 없이 자신들의 문을 열어주고, 반겨주고, 상 한편에 수저를 올리고 자리를 내어준 사람들이 있다. 


무언가를 대가 없이 내어준다는 건 정말 다정하고 굉장한 일인 것 같다.



@클레멘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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