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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Dec 17. 2018

밀당

그럴 수 없는 것들을 좋아한다.


도시의 야경이 보이는 방에서 해로운 담배를 피우는 일,

물속에서 보르르 소리를 들으며 수영장 바닥을 헤엄치는 일,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쾅쾅 내리치며 세상을 잊는 일.


그럴 수 없는 일들은 계속 그럴 수 없어서 종종 꿈꾸게 된다. 나는 꿈꾸는 시간이 제일 좋은 데 어쩐지 최근에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파랑새를 봐버리면 더는 궁금해지지 않는 일이 싫다. 상실 앞에서 밀려오는 기질적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이상하지. 남처럼 뿌듯하거나 성취감이 있어야 할 텐데.

어딘가 모자란 나는 슬픔이 밀려오는 걸 감당해야 한다.


매번 이런 건 좋은 거야. 이런 건 멋진 삶이야. 하고 나를 이해시키려고 하지만 어딘가 작은 구멍을 통해 바람이 새어든다. 그렇게 윤곽 없는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서 익숙한 겨울 냄새와 담배 냄새에 묻은 향수 냄새가 날 스쳐갔다.


분명 익숙한 향인데 누구더라?


골목 끝까지 걸으며 계속 생각해봤지만, 도무지 누구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다.


축복받은 기억력이여.


생각해보면 난 담배 냄새를 싫어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만난 사람은 다 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만큼 그들은 담배를 안 피웠다.  담배 피우는 사람은 싫다고 하면서 담배 피우는 사람을 만나 그들에게 금연을 요구했다.


시작이야 어떻든 그들은 담배와 이별할 수 없었고, 그보다는 나와 이별하는 게 더 쉬웠으며, 삶에는 서로에게 그럴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상대도 충분히 이해할 거로 생각하겠지만,

내가 이해하면 상대도 맞춰주는 부분이 있을 거로 생각하지만,

역시 세상은 어딘가 도무지 그럴 수 없어 그러려고 하지도 않는 부분들이 있다.


나는 그 부분을 사랑하고 그 부분은 인생의 경계선이다.


요즘 매일 고양이를 안고 해외로 갈 수 있을까, 묻는다.

방법을 몇 가지 찾아봐도 네이버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엄마도 모르는 영역.

계속 생각하면 결국 현실이 되니까, 가끔 생각해보려고 한다.

마음만 먹으면 그럴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여전히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일들은 이유를 물어도 대답할 수 없을 만큼 그럴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도무지 그러려고 하지 않는 자신만의 '밀당존' 같은 게 있는 데, 그곳에는 나만의 자기장이 있고 달이 존재한다. 그래서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왔다가 학을 떼고 돌아갈 것이며 뉴턴도 자다가 일어나 머리를 싸매고 누울 정도다.


죽을 때까지 미지수 X로 남겠지.

건너뛴 평범한 하루를 갑자기 기억해낸 사람처럼, 질서 없는 세상에 납작해진 마음이 자꾸만 밀고 당긴다.

뭔가 드럽게 짜증 나고 싫은데 또 한편으로 쫌 좋다.



@클레멘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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