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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everFenber Sep 15. 2023

물건이 아닌 경험을 파는 오프라인 리테일 트렌드

온라인 마켓에 밀린 오프라인 소매점의 새로운 전략


팬데믹을 거치며 쇼핑의 주 무대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이제 고객은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라인으로는 직접 만져보고 입어볼 수 없다. 매장에서 제품을 입체적으로 경험하는 과정은 오직 오프라인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온라인에 맞서 이러한 경험의 가치를 중시하는 오프라인 공간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를 이끌고 있는 일본의 오프라인 공간 트렌드를 살펴보고 리테일 시장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브랜드 b8ta에 대해 알아보자.


ⓒLos Angeles Time

POST COVID-19

 팬데믹은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던 온라인 시장을 급격히 메인스트림으로 올려놓았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리테일러들은 오프라인 매장에 변화를 일궈야만 했다. 물건을 사고파는 것은 더 이상 오프라인 매장의 역할이 아니다. 고객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고객이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공간을 선보여야 했다.


머무는 공간

머무는 공간은 오프라인 공간의 새로운 트렌드이다. 스타벅스(Starbucks)는 2018년 음료를 구매하지 않아도 매장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도 되는 정책을 시행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한 공간을 넘어, 오피스로,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장소로, 지친 하루의 쉼터로 공간의 쓰임을 다각화했다. 오프라인 공간이 물건을 사는 공간이 아닌 머무르기 위한 공간으로 바뀌고 있던 것이다. 빠른 속도로 일상의 리테일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

서점이 거대한 복합 시설이 된 츠타야 하코다테 ⓒTsutaya

일본의 서점 브랜드 츠타야(@tsutaya.official)는 지속적인 지방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책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매장을 새로 단장했다. 홋카이도의 하코다테를 시작으로 서가를 덜고 음향기기를 구비한 스테이지나 벽난로, 키즈카페 등 다양한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기획했다. 지역 주민을 위한 허브가 된 츠타야는 매달 지역의 행사나 축제에 공간을 빌려주고 주민이 직접 특산품이나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부스를 운영하게끔 도와준다. 츠타야는 그들의 기획력을 바탕으로 12개의 콘셉트를 가지고 전국의 1,100개 매장을 꾸미며 단순한 서점에서 책과 함께 머무는 공간,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간으로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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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시마야 본점, ⓒWWD JAPAN

물건을 팔지 않는 백화점

매장에 재고를 쌓아 두고 판매하는 방식은 옛말이 됐다. 불규칙한 수요에 효율적인 재고 관리와 운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타카시마야 백화점의 커머스 CEO는 옛 것과 새 것의 어울림을 강조하며 젊은 세대에 딱딱하고 비싼 인식의 백화점이 바뀌어야 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츠 스토어와 카와구치, ⓒPR TIMES
"백화점을 방문하는 고객 수가 감소하는 가운데 재고를 안고 판매하는 종래의 비즈니스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중략) 백화점에 있어 쇼룸형 매장은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카와구치 타카아키, 닛케이 인터뷰.

타카시마야(@takashimayasc)는 카와구치씨가 제인한 대로 QR 코드를 부착한 여러 잡화 브랜드의 샘플을 모아서 선보인 미츠스토어를 오픈했다. 구매자가 빠르게 샘플을 체험하고 샘플에 붙은 QR 코드를 통해 각 브랜드의 온라인 마켓에서 구입하는 방식이다. 비슷한 예로 번개장터의 BGZT LAB에서는 실물 샘플을 선보이고, 바닥에 새겨진 QR 코드를 통해 번개장터 APP에서 구매를 진행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세이부 시부야점 지하에 있는 200평 규모의 츄스베이스 시부야 ⓒSeibu ⓒLE BENEFIQUE

한편, 일본의 대표적인 백화점 재벌 그룹 중 하나인 세이부는 물건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닌 브랜드를 공유하는 쇼룸형 매장을 적용한 공간, 츄스베이스 시부야(@choosebase_shibuya)를 선보였다. 츄스베이스는 백화점이나 오픈 마켓에 쉽게 출품할 수 없는 작은 브랜드의 제품을 체험하도록 한 새로운 형태의 공간이다. 일정 기간 테마를 정해 테마에 맞는 브랜드와 제품을 직접 큐레이션 하기도 하며 츄스베이스의 공간을 브랜드에 빌려주기도 한다. 온라인 전용 또는 작은 브랜드에 있어서 츄스베이스는 그들의 독특한 아이템을 선보일 수 있는 최적의 무대이다.


이처럼 쇼룸형 매장은 이제 리테일 업계의 한 분야가 아닌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고객이 특별하고 새로운 공간을 만나게 하는 오프라인 공간의 필수 전략 중 하나가 되었다. 미국 실리콘밸리 출신 b8ta(@b8tajp)는 이러한 트렌드의 중심에서 고객이 새로운 제품을 체험하는 쇼룸을 제공한 것을 넘어 고객의 체험 데이터를 수집하고 브랜드와 공유하는 리테일 혁신을 이뤄낸다.



입구부터 닛산의 최신 전기자동차가 전시된 b8ta 시부야 ⓒPR TIMES

경험으로 데이터를 삽니다

‘발견과 경험을 제공하는 상점’이라는 b8ta의 모토처럼 b8ta는 삶에 혁신을 가져다줄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을 큐레이팅해 선보인다. 아이템을 제공하는 브랜드는 출점 시 b8ta의 특별한 서비스를 받고 계약된 출점료를 지불한다. b8ta의 특별한 서비스란, 매장 곳곳에 설치된 AI 카메라로 쇼룸 안에서 어떤 특징을 가진 사람이 어떤 브랜드의 어떤 물건을 체험했고, 또 테스터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등과 같은 고객의 행동 데이터를 브랜드에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들은 수집 과정에서 배제된다.


b8ta 유라쿠초 ⓒmxmobiling

체험이 가지는 힘

2022년, b8ta는 팬데믹의 타격으로 미국을 포함한 14개의 매장 중 일본을 제외한 모든 지점의 문을 닫았다. 미국 본사와 달리 제조사와 공간을 공유하여 공간을 판매하는 수익 모델을 고수하던 b8ta 재팬만이 살아남아 본사의 모든 지분과 상표권을 사들이고 현재 도쿄에 두 곳, 사이타마 코시가야 레이크타운 점과 오사카 한큐 우메다 점을 운영하고 있다. b8ta는 단순히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라 지점마다 그 지역 고객의 특징을 살린 제품을 전시하는데, 일본 유수의 기업들과 고층 오피스들이 솟은 도쿄 유라쿠초역 중심가에 있는 b8ta 유라쿠초는 그 지역을 드나드는 40대, 50대 고소득 남성들의 방문이 잦기 때문에 고가의 IT 기기나 바이오, 나노 하이테크 기술의 제품을 주로 선보인다.


FORM사의 스마트 수안경, HEALBE사의 GoBe3, 일본의 홈센터 카인즈의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flicker

수영 시간과 거리, 소비 칼로리 등을 홀로그램으로 표시하는 고글, 자동으로 섭취 칼로리나 체내 수분량, 스트레스 수준을 계측해 리포트를 내주는 스마트 워치 등 IT 기술을 접목한 제품도 있으며 기술 장비가 아니어도 특별한 아이디어의 인테리어 소품과 가구도 만나볼 수 있다.


ⓒest

브랜드가 찾아가는 b8ta

b8ta 유라쿠초에서 볼 수 있는 제품 중 하나인 화장품 브랜드 카오(花王, KAO)가 개발한 ‘바이오 미메시스 베일’은 탄소 나노 섬유질 액체를 피부에 뿌려 가는 막을 형성해 피부에 바른 화장품 더 잘 흡수되도록 도와주는 미용 기구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개발한 제품이었지만 b8ta 리포트를 통해 제품에 흥미를 보이고 직접 테스트를 한 19%가 성인 남성이었다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었다. 카오는 b8ta로부터 받은 이러한 정보를 프로모션이나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다.

ⓒb8ta

이처럼 제조사는 b8ta에 출품함으로써 얻는 광고 효과와 함께 고객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수치화된 피드백을 받아 명확한 타겟을 설정하고 상품성을 향상할 수 있으며, b8ta는 장기적으로 다양한 브랜드의 혁신적인 제품을 제공해 고객의 재방문율을 높였다. 브랜드와 소비자 양쪽이 모두 스스로 b8ta를 찾아가게 만듦으로써 고객에게는 경험을, 브랜드에는 인사이트를 제공해 양쪽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탄생한 것이다.


b8ta 시부야의 식품 코너(전체의 1/3 규모) ⓒ닛케이

오프라인에서만 할 수 있는 것

b8ta 시부야는 도쿄에서도 가장 유동 인구가 많고 활발한 지역인 시부야의 특성을 살렸다. b8ta 유라쿠초와 달리 훨씬 다양한 테마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이 집중한 것은 온라인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각과 청각이 아닌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식품이다.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에키소바 ⓒカメイアコ (왼) b8ta 시부야에 운영중인 yo-KAI express ⓒHUFFPOST (오)

일본 철도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에키소바는 바쁜 사람들을 위해 플랫폼 위 작은 가게에서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소바, 라멘 등을 판매하는 문화이다. 철도회사 JR 동일본(@jreast_official)은 사라져가는 낡은 에키소바 가게를 대체하기 위해 미국의 스타트업 기업과 협력해 라멘을 끓여주는 자판기 YOKAI EXPRESS를 만들어 b8ta에 출품했다. 이외에도 b8ta 시부야에는 다양한 대체육, 글루텐 프리와 같은 트렌드를 반영한 식품부터 완전식품처럼 식품 업계에 혁신을 불러오고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 제품을 전시하며 시식해 볼 수 있도록 했다.



ⓒb8ta

판매가 목적이 아닌 리테일 혁신

체험은 b8ta 뿐만 아니라 최근 다양한 오프라인 리테일 숍에서 볼 수 있는 트렌드다. 이전에 애플(@apple)이 보여주었던 판매보다 체험이 중심인 매장, 애플스토어가 대표적인 예다. 온라인으로 느낄 수 없는 제품에 대한 고객의 다양한 체험이 궁극적으로 브랜드와 제품에 이로운 영향을 미치게 되고, b8ta는 그것을 더 현실적이고 확실한 서비스로 보여주고 있다.


키타가와 타쿠지 ⓒXTREND
“b8ta는 새로운 형태의 소매점입니다. b8ta에서 고객의 역할은 시도와 경험입니다. 판매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구매를 결정하는 것은 여타 소매점에서처럼 온라인으로 하셔도 무방합니다. b8ta도, b8ta에 출품하는 제조사들도 판매가 아닌 b8ta를 통해 고객 여러분과 소통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_b8ta 재팬 대표 키타가와 타쿠지, flicker


b8ta 매장 안에서 고객의 체험을 돕고 반응을 기록하는 ‘베타 테스터’ ⓒb8ta

b8ta는 브랜드와 브랜드, 브랜드와 사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객에겐 폭넓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경험을, 브랜드에겐 매장 내의 다양한 고객 데이터를 제공해 서비스와 상품의 향상을 돕는다. 더 이상 미국 본토에서는 b8ta의 매장을 볼 수 없지만, 일본에서 만들어 갈 이들의 비전은 리테일 업계에 남아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러다 줄 것이다.



매일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새로움을 추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존의 것에 안주하고 혁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같은 자리에 머물러 도태된다. 도쿄에서 본 다양한 리테일 매장들은 나날이 커지는 온라인 시장에 맞서 고객이 새로움을 체험하는 공간을 통해 팬이 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리테일 업계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준 b8ta도, 작은 브랜드의 쇼메이커가 된 세이부의 츄스베이스도, 책을 넘어 지역의 인프라가 된 서점 츠타야도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기획력을 바탕으로 온라인에 대항해 리테일 업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여러 방향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하는 리테일 트렌드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는 좋은 장소를 제공해 줄 것이다.


b8ta 한큐 우메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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