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공항으로 하는 효고 여행

대한항공 인천-고베 노선 탑승기 겸 고베 여행에 대한 잡담

by CleverFenber

최근에 대한항공이 새로 취항한 고베 - 인천 노선을 타고 고베에 다녀왔다. 주중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합리적인 가격이었고, 다양한 방면에서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던 고베 여행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고베 공항 (UKB)

우선 고베 공항은 2006년 개항한 간사이권 3대 공항으로, 2025년 4월 국제선 2 터미널을 개항하면서 서울(인천) 노선이 생겼다. 규모가 정말 작아 국제선 터미널에는 보딩 브릿지조차 없다. 버스 터미널처럼 보딩 게이트 뒤로 버스들이 늘어서 있었다.


긴키 지역에서 국제공항의 역할은 간사이 국제공항(KIX)이, 국내로는 오사카 이타미 공항(ITM)이 입지를 단단히 다지고 있기 때문에 고베 공항은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관제 공역마저 다른 두 공항과 공유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제한이 많았다. 경제-문화적으로 긴키 지역의 중심은 고베가 아니라 교토와 오사카. 관광객 마저 고베 대신 나라에 가는 현실이다. 그러나 2025년 오사카 엑스포와 맞춰 간사이 국제공항의 단거리 국제선 수요를 분담하기 위해 우리나라와 대만, 홍콩, 중국 등의 노선을 잇달아 개통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항공의 고베 취항은 상당히 전략적이다.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까운 간사이 국제공항의 단거리 노선에 비해 고베 공항은 여유롭다. 효고현 지역민들에게도 호재다. 고베 시민 및 지역 주민들은 국제선을 이용하려면 오사카를 뚫고 빙 둘러 간사이 공항까지 가야 했으니, 산노미야에서 20분, 가까운 고베 공항에서 국제선이 취항한다면 그들의 수요는 따놓은 당상이다. 고베시 역시 결코 작지 않은 경제 규모를 갖고 있기에, 단순한 단거리 노선을 넘어 서울을 경유해 유럽, 미주 등으로 향하는 장거리 승객을 유치하는 대한항공의 큰 그림이 돋보인다.


실제로 이번 비행 편을 탑승하면서 눈에 띄었던 부분은 돌아올 때였다. 인천 -> 고베 구간에서는 주중 화요일이었기 때문이었음에도 내 양옆을 포함해 뒤로 5줄이나 비어있는 엄청난 공기수송을 경험했다. 하지만 고베 -> 인천 구간은 사람이 꽉꽉 들어찼다. 놀랍게도 한국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노선을 타면서 이 정도로 일본인만 가득 차는 경우는 없었다.


이 노선에 투입되는 것은 대한항공의 새 A320-neo이다. 737에 비하면 기내 환경이 정말 쾌적하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깔끔하다. 신형 비즈니스 시트는 2-2 배열, 이코노미는 3-3 배열이다. 무릎 공간은 충분하고, 좌석 너비도 딱 맞다. 기내식 역시 괜찮았다. 단거리 기내식은 별로 기대하지 않지만, 일본 출발 기내식이었던 한국식 닭고기 덮밥이 기억에 남는다.


고베 공항 액세스

고베 공항은 포트라이너로 고베 산노미야역까지 약 20분 걸린다. 20분 만에 시내라니 정말 가깝다. 더 놀라운 점은 간사이 국제공항보다 오사카 시내가 더 가깝다는 것이다. JR 산노미야 역에서 신쾌속 열차로 갈아탄다면 700엔대로 총 50분도 걸리지 않고 오사카역에 도착한다. 혼잡한 간사이 국제공항에 지친 일본 여행 고수들에게는 긴키 지방으로 향하는 관문이 하나 더 열린 셈이다. (물론 간사이 공항에는 특급 열차가 다니기 때문에 오사카까지 더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다.)


그래서 고베?

단순히 오사카와 가깝다는 걸로 고베 공항에 가야 할 이유가 설득되지는 않는다. 고베 공항과 고베가 여행지로서 정말 괜찮은 이유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보려 한다.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식도락. 우선 고베공항에서 산노미야역까지 향하는 포트라이너가 가로지르는 오사카만(大阪湾)의 시원한 뷰가 좋다.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캐리어 등을 싣고 타기에 넉넉하다. 무인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열차 맨 앞칸과 뒷칸의 전망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가운데 의자가 있는 것은 덤.


그렇게 공항에서 중심지인 산노미야에 도착하면 거대한 시내에 마주한다. 산노미야역 근처에는 한큐를 비롯한 마루이와 MINT 등 복합 쇼핑센터가 많이 들어서 있다. 한큐 백화점 건너편으로는 고베 최대의 상점가, 모토마치(元町)로 이어지는 산노미야 센터 거리가 있다. 이곳 역시 빔즈 고베를 포함해 다양한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다.


모토마치역에는 고베 구도심의 아이콘, 다이마루 백화점과 모토마치 상점 거리가 있다. 모토마치 상점 거리엔 지역 음식점과 소매점이 즐비하고, 바로 옆의 차이나타운이 유명하다. 모토마치에 들린다면 칸논야(観音屋)에 들려 고베 명물 덴마크 치즈 케이크를 먹어보자. 지하에서 커피와 함께 내점 할 수 있고 선물용으로도 많이 사가는 유명한 기념품이다. 다이마루의 9층 이벤트 홀에서는 다양한 지역 이벤트 상품을 판매할 때가 있다. 구경 차 들려보는 것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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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논야의 베스트셀러 덴마크 치즈케이크와 인기 기념품, TORAKU의 고베 푸딩

덴마크 치즈 케이크뿐만 아니라 고베에서 유명한 오미야게로 푸딩이 있다. 본품은 고소한 커스터드 베이스인데 가을 한정 밤 크림이 들어간 푸딩이 인기가 많다. 직접 먹어봤지만 정말 맛있었다. 가격이 적당해서 일본식 푸딩이 그리울 때 쟁여놨다 먹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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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고베 진 라인업 (왼) 선물용 세트 (오)

이외에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던 오미야게는 고베 진(KOBE GIN)이다. 해외 이곳저곳을 다니며 그 지역의 재료가 들어간 크래프트 진을 종종 사 모으는데, 고베에도 마찬가지로 특별한 크래프트 진이 있어서 구매했다. 고베 증류소에서 생산하는 제품으로 YAMA와 UMI, 두 가지 라인업이 있는데, 한큐 산노미야 점에서 각각 200ml씩 세트로 3,300엔에 구입했다. 개인적으로 UMI 버전에 재료로 가쓰오부시가 들어가서 정말 기대를 했는데 예상대로 특별한 맛이었다. 가쓰오부시 향이 느껴지는 진이라니 이미 합격이다. 해조류의 풍부한 향도 난다. 헨드릭스처럼 오이를 넣은 진토닉으로 마셔도 좋았다. 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포스트로 더 자세하게 써 보도록 하겠다.


JPG_4449-4.jpg ©CRAFT BEER SEEKER

지역 크래프트 진이 있다면 크래프트 맥주도 있다. 고베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롯코 크래프트 비어 (ROKKO CRAFT BEER)로, 롯코 양조장에서 생산된다. 세계 맥주 어워드에서 여러 번 수상한 이력이 있는 만큼 세종(Saison)과 세션 IPA가 화이트와인 같은 부드러움이 느껴져서 인상적이었다. 라인업이 정말 많아서 하루에 하나씩 마셔도 3주는 족히 걸릴 수준이다. 특히 기간마다 생산하는 한정 라인업들이 매력. 내가 갔을 때는 한신 타이거즈와 콜라보한 타이거즈 오리지널 세종을 판매 중이었다. 백화점과 슈퍼마켓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성인이라면 꼭 마셔보길.


IMG_6180.HEIC 하버랜드 스타벅스에서 바라본 뷰

본론으로 돌아와, JR 고베역(神戸駅)에서 안내를 따라 여러 쇼핑센터들을 지나면 고베의 랜드마크, 포트 타워와 하버랜드에 도착한다. 하버랜드 바깥쪽에 포트 타워와 고베항의 뷰를 볼 수 있는 카페와 음식점이 많아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기 좋다. 이곳에도 아까 언급한 칸논야의 분점이 있고 항구 방면으로 스타벅스가 있다. 항구 주변의 분위기가 구조적으로 시드니의 서큘러키를 참고한 듯한 느낌이 강하다. 가볍게 걷기에도 좋은 곳. 포트 타워에 올라가 보는 것도 좋지만 고베의 스카이라인이랄 게 딱히 없기 때문에 굳이 추천하진 않는다.


음식은 어떨까. 고베의 음식 하면 단언컨대 고베규. 일본 최상 와규의 고장이다. 고베규는 정말 비싸지만 정말 맛있다. 그래도 고베에 왔다면 한 번쯤 먹어봐야 할 음식이 아닐까. 워낙 고베 하면 유명한 음식이다 보니 식당도 많다. 그만큼 투어리스트 트랩도 많으니 타베로그(食べ ログ)와 구글 지도 리뷰를 참고해서 식당을 미리 골라서 가자. 일본 어디를 가도 음식으로 실패하지 않는 방법은 그 지역 백화점의 식당 층에서 고르는 것이다. 값싸게 고베규를 즐기고 싶다면 신칸센 신코베역이나 백화점에서 파는 다양한 고베규 도시락을 사 먹어보자.


이외에 고베는 중식과 퓨전 프렌치식이 유명하다. 한큐 산노미야역과 바로 이어진 골목, EKIZO에는 유명하고 엄선된 가게들이 많이 있으니 둘러보며 메뉴를 골라보자. 길거리 중화요리를 맛보고 싶다면 모토마치 바로 옆 차이나타운에 가보는 것도 좋다. 규모는 요코하마에 비해서 아쉽지만 슈마이와 지파이 등을 가볍게 즐기기 좋다.


이 외에 고베에선 뭘 할 수 있을까. 시선을 고베뿐만 아니라 효고현 전체로 넓혀보자. 우선 간사이 여행을 다녀오면서 고베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 축하한다. 여러분은 한 번의 여행으로 효고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slider02.jpg ©有馬温泉観光協会

아리마 온천 (有馬温泉)

롯코산 너머에 있는 온천 자락

고베 여행에서 아리마 온천이 빠지면 섭섭하다. 일본 3대 온천 중 하나로 꼽히는 아리마 온천은 그 유명도만큼이나 역사도 오래된 온천지이다. 고베 산노미야역에서 전철을 타고 갈 수 있어 편리할뿐더러 전철 티켓과 온천 입장권을 묶은 패스를 이용한다면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봄과 가을 롯코산이 만들어내는 절경과 해가 진 후 오래된 온천가의 분위기가 정말 매력적인 곳이라 꼭 1박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IMG_5375.jpg JR 마이코 역에서 얼마 안 가 나오는 기념 공원 ©charihoi travel & food

아카시 (明石)

고베와 히메지 사이에 위치한 아카시시(明石市)

JR 산노미야역에서 신쾌속으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JR 마이코역(舞子駅)에서 내리면 아와지 섬을 거쳐 시코쿠를 연결하는 아카시 대교를 볼 수 있다. 이 구간은 바닷가를 따라 달리기 때문에 차창 밖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해 질 녘 아카시 대교를 바라보며 마이코 공원에 앉아 아카시 명물, 문어 도시락을 먹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47329936.jpg?cmsp_timestamp=20210304222805 ひっぱりだこ飯 ©淡路屋

개인적으로 아래에 소개할 히메지와 묶어서 하루 코스로 돌아오는 길에 들리는 것을 추천한다. 문어밥 역시 아카시에 방문했다면 반드시 먹어봐야 할 음식이니 꼭 니시아카시역(西明石駅)에 잠깐 내려서 구매하고 가길 바란다.


tempImagemKAlZ4.heic 히메지역에서 보이는 히메지 성 전경

히메지 (姫路)

마찬가지로 JR 산노미야역에서 신쾌속으로 약 40분 정도면 히메지역에 도착한다. 히메지 하면 역시 히메지 성.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큰 히메지 성이 고베에서는 정말 가깝다. 특급을 탄다면 30분도 걸리지 않지만 역시 신쾌속의 가성비가 압도적이다. 마찬가지로 산요 본선이 해안선을 따라 달리므로 창가 자리를 선점하는 것을 추천한다. (히메지 방면일 때 왼쪽, 돌아올 때는 오른쪽) 성인 요금 1000엔으로 히메지 성에 입장할 수 있으니 꼭 가보길. 히메지 역 북쪽 출구로 나가면 성이 바로 보이지만 의외로 거리가 꽤 있으니 버스를 타면 편하다. 걸어가는 길이 완만하고 잘 정비되어 있어서 가볍게 산책하고 싶다면 걷는 것도 추천. 느긋하게 30분 정도 걸린다.


위 셋을 다 다녀왔다면 고베 가서 뭐 했냐는 질문에 효고현을 정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알찬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볼거리, 음식, 쇼핑 모두 충족할 수 있는 고베, 그렇다고 작은 도시도 아니다. 다른 일본 도시에 질렸다면 한 번쯤 가볼 만한 선택지가 되지 않을까. 고베 공항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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