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삶의 낙이 뭔가요
선생님은 삶의 낙이 뭔가요, 그에게 물었다. 요새는 진료예요.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도 가르침을 받곤 하거든요. 내 정신과 의사에게 눈을 흘기고 싶어졌다. 가증스러울 정도로 모범 답안이네요. 그래도 당신이 당신 일을 좋아하는 것 같아 다행이예요. 물론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말리씨의 삶의 낙은 ‘의지할 사람을 찾는 일’인 것 같네요. 다양한 사람들을 스치듯 만나기도 하고 진득하니 만나기도 하고. 의사의 모범 답안에 비해 나의 낙은 초라해 보였다.
낙이라고만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남자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그 관계의 깊이와 상관없이, 절망이 하나씩, 켜켜이 쌓인다고 느꼈다. 절망이 너무 무거운 단어라면 낙담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고보니 낙이 겹친다. 즐거울 락(樂)과 떨어질 락(落). 내가 자꾸만 의지할 사람을 바라는 것이 한때는 싫었는데, 지금도 싫은데, 마치 내가 불완전하고 불쌍한 존재인 것만 같아서.
“의존이 나쁜 건가요?”
그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은 마음은 나쁜 것도 없애야만 하는 것도 아니란 걸 배웠다.
한때 그 마음은 주치의를 향했다. 지금도 의지하는 존재지만, 그때는 그가 나의 연인 혹은 양육자였다. 그를 바라는 나를 바라보며, 내가 무얼 원하는지 받아들여갔다.
꽤 오래 잊고 있었다. 기대와 낙담이 교차하는 와중에 따뜻하고 편안한 시간도 있다는 것을. 관계에 격렬한 즐거움과 부침만 있지는 않다는 것을.
슬픔에 잠길 때에는 다시 아무렇지 않을 낮을 기억하자. 포근한 원룸에서, 각자 컴퓨터와 아이패드를 차지하고서는 게임을 하며 데굴거리던 오후를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