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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리 Oct 30. 2022

약자 대신 싸우려 하네요?

가을, 진료실 안

1.


생리를 시작했다는 얘기를 했다. 한동안 울적했던 건 PMS였던 것 같았다. 생리도 시작했고, 컨디션도 안 좋길래, 동호회에 일주일 동안 네 번이나 나갔다는 얘기를 했다. “기분이 좋지 않은 걸 외부 활동을 통해 나아지게 하고 싶군요?” 하는 주치의의 말에 긍정했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여럿 생겼다. 

A는 호모포비아였다. 나는 내가 퀴어 이슈를 먼저 꺼내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최대한 나이스하게 A의 말을 반박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이야기가 장애인 혐오와 노동조합에 대한 반감에까지 흘러가자, 혀를 내둘렀다는 말도 했다.

“박오리 씨는 다른 이들의 반감을 사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네.”

단호하게 답했다.

“박오리 씨는 성소수자가 아니잖아요. 자신의 문제가 아닌데도 왜 그렇게 행동하나요?”


“일단 전 제 제일 친한 친구가 성소수자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 자리에 성소수자가 있을 수도 있고요. 저는 그쪽 편을 들고 싶어요. 안 그러면 성소수자 혐오를 묵인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약자니까 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고요.”


“약자 대신 싸우려 하네요?”


“좀… 그런 기질도 있죠.”

나는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선생님, 이런 식으로 입을 다물면, 세상이 어두워져요!”


“세상을 밝게 하기 위해 대신 싸운다. 그 밝다는 개념도 사실 모호하고, 누구나 동의할 것도 아니고, 게다가 박오리 씨는 그러면 항상 싸워야 해요.”

나를 투사로 만들어버린 의사는, 항상 싸워야 한다는 대목에서 웃으며 말했다. 저기요, 저도 투사는 아니예요. 하지만 내 앞에서 그런 말 지껄이는 걸 용인할 수가 없다고!

“그건 당연하죠. 어쨌든 전 그런 말이 용인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건 그렇죠.”

주치의는 A에 대해서 말했다. 그가 성소수자가 싫다고 하는 것, 장애인도, 노조도 싫다고 하는 것. 그건 그 자신의 심리적 어려움과 연결된 것이라고. 그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그의 문제’지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듯했다. 

“자신이 왜 약한 사람 대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나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면서 그에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의 치료 과정을 생각해본다면, 그 맥락에서라면 당연히 엄마와 아빠 때문이겠죠. 엄마와 아빠가 싸우면, 항상 엄마가 약자였으니까요.”


“엄마 대신 싸우려 했나요?”


“대신 싸운다까진 아니더라도, 엄마를 지키려고 싸움에 개입하곤 했죠. 그래서 약한 사람에게도 그런다… 는 말은, 뭐 머리로는 이해 못할 건 없는데요.”

진심으로 납득되지는 않는답니다.



2.

두번째 사람 얘기를 시작했다.

“좀 창피하긴 한데 저랑 관련된 얘기니까 해야겠어요. 이 B는 저한테 계속 남자보는 눈이 높다고 해요. 제가 예전 소개팅 상대 보여줬더니 ‘엄청 잘생겼다’고 하면서, 저한텐 절대 예쁘다고 안 해요!”

왜 내 외모 깎아내리냐! 주치의는 얘기를 듣자마자, B에 대해 일축해버렸다.

“눈이 높다는 건, 자신을 평가 절하하는 것이기도 하죠. ‘네 눈 앞에 있는 나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겠구나’라는 뜻이니까.”

얼떨떨했다가, 웃음이 터져나올 뻔했다. 

“그건 사실이긴 해요. B한테 관심 없거든요.”


“네. 사실 그 남자의 문제인데, 박오리씨는 그것을 자신과 관련된 문제로 끌고 들어와 싸우려 하는군요.”


“걔의 자격지심이 표출된 것인데, 제가 ‘이 자식이 날 깎아내려?’한다는 거죠?”


“그렇죠.”


“하지만 자격지심 그런 식으로 표출하면 기분 안 나쁜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렇죠.”

그리고 또, 내 주치의는 그 특유의 차가움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이성적이지 않아요. 그게 보통인 것 같아요.”

아무튼 B는 ‘자격지심을 남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표출하는, 비이성적인 보통의 인간’이라는 뜻이었다.


3.


주치의는 내가 분노나 불안을 표출하는 사람들을 대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안 그런 사람이 있나?) 그리고 그것을 어머니와 연관 지었다. 성소수자에 대해 같은 편이라고 느끼는 것도 무언가 관계가 있을 거라고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가정에서 약자라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생겼다고 하는 게 맞지 않나? 아니면 차라리 내가 학창시절에 교실에서 약자였어서, 다른 약자에게도 동일시한다는 게 더 그럴 듯하지 않나? 

진료 시간은 칼같이 20분이었다. "요즘 되게 칼 같이 잘 끝내시네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장난을 쳤다. 그는 "저도 '불안'이 있어서요." 하며 웃었다. 다음 진료는 일주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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