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진료실 안
1.
요새는 계속 무기력하다. 돈은 없지만 알바도 할 의욕이 없다. 인생이 망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와 밤 놀이 갔다가 우리 일행만 ‘폭탄’된 얘기를 했다.
“여기에 있기엔 제가 나이도 많고 통통한가 했어요.”
의사는 이 얘기가 ‘인생 망했다’는 얘기와 이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 것 같아요. 현타가 오니까,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뭐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번 토요일에 친구와 퀴퍼를 갈 거란 얘기도 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퀴어라는 이야기를 한 참이었다. 주치의는 ‘퀴퍼’라는 줄임말을 못 알아들었다.
“퀴어 퍼레이드요.”
“친구가 부탁해서 가는 건가요?”
“부탁… 이랄 건 없죠? 제안을 한 거고 좋다고 한 건데요. 예전에도 갔었어요. 가서 행진도 하고 굿즈 구경도 하고…”
“거기엔 오리 씨 상대는 없을 것 같은데요.”
퀴퍼를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서 웃었다. 딱히 퀴어 친구가 부탁해야만 갈 수 있다든지, 연애 상대를 찾는다든지.
“그렇겠죠. 이성애자 남자들은 퀴퍼 안 오니까. 예전에 여동생이랑 갔었는데, 게이들 보면서 (물론 그분들이 본인들이 게이라고는 안 했지만 100퍼센트) ‘뭐야, 너무 괜찮아. 다들 괜찮잖아?’ 이랬었어요.”
퀴어 관련 이야기를 정신과에서 거의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내가 이성애중심적인 분위기보다 퀴어 프렌들리한 분위기를 편하게 여긴다는 것을 그에게 말했다. 뭐 이런 것들이었다.
1) 대학교 때 친구들 중 계속 연락하는 생물학적 남자 친구들은, 내가 그렇게 골라 사귄 것도 아닌데 다 퀴어다.
2) 내 단골 술집도 퀴어판이다. 어떤 남자분이 너무 귀여워서, 100퍼 게이겠지만 1퍼센트의 바이 가능성 없을까? 하고 말 걸었더니 남자친구 있다고 했었다.
3) 학생회 활동도 회장이 퀴어인 곳에서 했다. 걔랑 친해질 때 너무 즐거웠다. 거기서 페미니즘 세미나를 열었을 때도 남자분들은 다 게이거나, 매우 진보적인 사과대 학생들이었다.
4) 대학원에서도 퀴어 이론 수업을 들으러 갔다. 교수님도 퀴어, 학생들도 대부분 퀴어였다. 왜 여긴 이성애자 남자는 없을까, 했더니, 다른 분들이 “있겠니?”, “걔네가 이런 거에 관심 있겠니?” 라고 했다. 레즈도 헤테로 여자도 게이도 트젠도 있었지만, 헤테로 남자만 없던 수업.
주치의는 내게 물었다.
“여자가 접근한 적은 없었나요?”
술집 얘기를 했을 때였다. 저런 걸 먼저 물어봐서 신기했다. 개인적인 궁금증 아냐?하는 의심도 들었다. 왜냐면 이성애자 남자들은 내가 여자랑 만났던 얘기를 하면 '항상' 재밌어하기 때문이다. 내 의사는 그렇지 않길 바라며, 대답했다.
“그 술집에서는 없었던 것 같고요, 클럽이나… 뭐 다른 곳에선 있었어요. 스킨십하고 놀았던 여자는 세 명 있었는데요. 그 중 한 명이 데이트한 다음날 제 집 근처로 오겠다고 해서, 부담스러워서 그 후로 여자는 안 만났어요. 제가 비겁한 것 같았거든요. 그냥 집 근처로 오겠다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럽지만, 여자랑 있는 걸 들킬까봐... 그게 부담스러웠어요. 그래서 이런 마음가짐으론 여자 못 만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후론 안 만나요.”
“남자든 여자든, 연애 상대로 다가오는 사람을 어려워하네요.”
“제가요?”
나의 폭탄 이야기에서 뻗어 나간 대화는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내가 남자한테 안 먹힌 얘기한 것 같은데… 그런 사람 치고는 이성애자 남자 자체를 주위에 잘 두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새 말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주치의가 말했다.
“남성성을, 물론 육체적인 것 말고 정신적인 것이요. 남성성을 위협적으로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주위에서 다 제거한 것 같아요.”
남자를 위협적으로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이성애자 남자를. 전형적인 이성애자 남자일수록 나랑 안 맞으니까, 어느새 주위에 없었다.
“음… 제일 친한 친구랑도 항상 붙어다니긴 했어요. 겉보기엔 커플(?)처럼 보일 때도 많으니, 그러면 남자들이 안 다가와요. 쟤넨 무조건 그냥 친구사이다, 하고 확신하는 외국인 남자쯤 되지 않고서는. 친구도 장난으로 자기가 제 ‘수문장’이라고 했었어요.”
이런 얘기를 하고 있자니 한편으론 즐겁기도 했다. 보통 사람들의 이성애 중심주의에 대해 농담을 하는 느낌이었다. 진료실에서 얘기하진 않았지만, 친구와 둘이 있을 때 나는 “다른 남자들에게 나는 ‘주인이 있는 여자’로 보이는 거야?” 하며 둘이 낄낄거리곤 했다. 사실 우리의 관계를 수식할 보수적인 언어를 골라오자면, ‘자매’가 가장 비슷한데 말이다.
2.
내가 대부분의 이성애자 남자를 상대적으로 안 좋아하는 건 사실이고, 절친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극히 적은 것도 사실인데, 나는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성애자고 결혼도 했고 직업은 의사이며 내가 보기엔 상당히 고전적인 남성관을 가진 주치의에게 나의 사례는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나한텐 너무 당연한 것들이어서 사실, 내가 특이해 보일 거라고도 생각을 못했다. 내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성애 경연장보다는 무지개 깃발 걸려있는 술집이 내게 더 숨통이 트이는 공간이라는 것. 트랜스 젠더 친구, 게이 친구와 남자 얘기로 농담 따먹기 하는 것. 레즈 앞에서 마마무 문별이 예쁜지 모르겠다고 했다가 실컷 욕 먹는 것. 등등등등등….
주치의는 왜 남성성을 위협적이라고 느끼는지 물었다.
“당연한 거 아녜요…?”
할 말이 없었다.
"살다보니깐...?"
“정신과적인 용어인데요, ‘거세된 남성’만을 주위에 두네요."
내가 저 말에 동의하지 못할 것을 알아서, 그는 정신과적인 용어라는 말을 앞서 했다. 이해해본 바로, 나는 '어떤 남성성'에 위협을 느낀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없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그런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여기까지는 내가 나를 성적 대상으로 보는 이성애자 남자를 불편해한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야기를 더 확장시켰다.
"만났던 남자들도 '거세된 남성'일 수 있죠. 내 안에 있는 남성의 역할을 못한 사람들일 수 있으니까. 남성은 '능력' 이나 '먹이는 것' 등을 뜻하니까요."
뭐라는 겁니까 선생님.
“치료자도 일종의 ‘거세된 남성’이죠. 남녀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을 관계니까.”
이건 정답이었다. 그가 비윤리적인 또라이 의사가 아닌 이상 나에게 접근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오히려 좋다고 느껴왔다.
“맞아요. 그래서 안전하다고 느껴요.”
3.
그는 맞는 말과 틀린 말을 섞어 말해서 나를 헷갈리게 만든다. 나는 슬슬 짜증이 났다.
“제가 원하는 ‘남성성’이 대체 뭔데요?”
“박오리 씨 마음 속의 남자의 이미지나 그런 것들을 더 살펴봐야 되겠죠.”
나는 하필, 대학원에서 남성성 연구에 관심을 가졌다. R.W. 코넬의 <남성성/들>을 재밌게 읽었다. 헤게모니적 남성성, 공모적 남성성, 주변적 남성성, 종속적 남성성 등. 무엇보다 남성성이 단일하거나 고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변화하는 복수의 '남성성들'이라는 걸 배웠다. 지배적인 남성성, 코넬 식으로 말하자면 그 시대의 헤게모니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성에 대한 논의도 물론, 계속 중요하지만 말이다.
의사가 말한 거세된 남성이,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획득하지 못한(혹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면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언급한 '능력'이나 '먹이는 것'...은 생계부양자로서의 남성, 보호자로서의 남성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는 그것을 탈역사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나 내가 배운 바로는 그것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합작이다.
퀴어 친구들도, 만났던 남자들도, 심지어 정신과 의사도 내게 거세된 남성이라면, 거세 안 된 남성은 어디에 있는 건가? 이데아처럼 관념으로만 있는 걸까. 대체 의사는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설마 나더러 '진짜 남자'를 찾으라는 말은 아닐테고. (진짜 남자를 찾아요~ 말로만~ 남자다운 척할 남자 말고~ 오오오~)
아니면 내가 이상적인 남자를 마음에 품고 있을 수 있으니 그걸 깨달으라는 건가? 그럼 내가 남성에게 느끼는 위협감은 또 어떻게 다룰 것이며...
모르겠다.
오늘은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