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보낸 40만 원이 마지막으로 보내주는 용돈이다"
지하철에서 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던 엄마의 목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나는 말 그대로 이렇게 서울에서 살 수도, 고향으로 (끌려) 내려갈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죽을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었다.
나름 남쪽 지방에서 올라와 아득바득 서울에서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아는 대학에서 4년간 공부한 결과가 이건가 싶기도 하고 너무나도 처량했다.
하지만 피붙이 하나 없는 서울에서 고향으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이 끊어진다는 것은 처량함이나 허무함 같은 낭만의 문제 아닌 죽느냐 사느냐 하는 실존의 문제였다.
그 이후로 나는 대기업을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접고, 아니 작은 기업을 들어가서 취업 준비를 할 수 있다는 허망한 생각을 품고 닥치는 대로 회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회사 이름만 바꾼 복사, 붙이기 신공으로 완성된 자소서를 가지고 소규모 회사들에 마구잡이 식으로 지원했다. 온라인 마케팅 회사, 직원 교육 회사 등 범위도 계통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감사함을 소재로 글을 쓰는 어느 작은 잡지사에 지원하게 됐다. 아직도 면접 보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이사급은 되어 보이던 중년의 아저씨가 들어와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어디에 사느냐고 질문했다. 나는 청량리 쪽이라고 답하니 "앞으로 나랑 같은 버스 타고 다니겠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 '뭐지? 합격했다는 말인가' 싶기도 하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간 지원했던 숱한 대기업에서는 얼굴 한 번 보자는 면접 합격 문자도 받기가 여간 쉽지 않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합격하는가 싶기도 하고 온갖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렇게 면접이 끝나고 면접장 밖으로 나오니 차라리 불합격했다는 연락이 오기를 바라는 아주 묘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고 그렇게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