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呼吸-7]

by 김명구
엉킨 머리카락을 풀면, 7 ㄹㅇ.jpg

*

모든 것이 순식간이었다.


“봐도 봐도 이해가 안 가.”

“카메라 훔쳐 가서 한다는 게, 고작 자기들 사진 찍는 거야?”

“얘들 눈빛 봐. 이게 친구냐?”

“그럼 얘들 레즈야?”


수진이 내가 손에 쥐고 있던 메모리카드를 낚아챘다. 그러고는 소희가 돌려놓았던 자기 카메라에 꽂아 넣었다. 카메라의 전원이 켜지자, 메모리 카드 속 사진들이 화면 위로 하나씩 떠올랐다.


“난 둘이 같이 다닐 때부터 느낌 왔어.”

“최여진도 원래 좀 이상했잖아.”

“근데 유소희는 아저씨 만나잖아.”

“와 그럼 유소희가 양다리 걸친 거야?”


어느샌가 우르르 몰려든 아이들. 사진을 보며 소곤거리는 입술들. 어젯밤. 소희와 만든 추억이 끔찍하게 조롱당하고 있었다.


“나 살면서 레즈 처음 봐.”



정수리까지 피가 쏠렸다. 손끝이 저리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고개를 돌렸다. 소희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다행이었다. 이런 모습을 소희에게 들키는 것만큼은 죽기보다 싫었거든. 그때, 수진이 비릿한 미소를 띠고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여진아. 소희랑 그런 사이였으면 미리 말을 하지 그랬어.”

“그거 내놔.”

“이거? 원래 내 껀데?”


수진의 말에 교실 한쪽에서 웃음이 터졌고, 웃음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얇고, 가볍고, 날카롭게 내 귀를 파고들었다. 수진은 사진을 보다가, 카메라를 내 얼굴 가까이 들이밀었다.


“근데… 너네들 이러고 있는 걸 다 여기에 넣어놔서… 다시 쓰긴 좀 찝찝하다. 그치?”


당장 빼앗아 지워버리고 싶었다. 아니, 지워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우리가 만든 추억이 수진의 손아귀에 들려 있는 게, 우리의 관계가 그들의 씹을 거리가 되는 게...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그런데, 이걸 지우면 우리의 추억도 함께 지워지는 걸까? 불꽃놀이가 잔뜩 번졌던 소희와 내 얼굴. 바닷바람에 흩날렸던 머리카락.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까지도. 정말 이 모든 것이 지워지는 걸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굴욕감과 수치심이 가슴 속에 뒤섞였다.


“근데 여진아.”


더는 볼 수 없어 고개를 숙였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거 단톡에 올려도 돼?”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뭐라도 해야 하는데...발이 바닥에 박힌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만 보기 아깝지 않아?”


그때였다. [퍽—.]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수진이 휘청였고, 뒤로 한 걸음 밀려나더니,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찧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내 앞에 소희가 서 있었다.

소희의 손에는 수진의 카메라가 쥐어져 있었고, 그 카메라를 움켜쥔 손가락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커튼이 흔들렸다. 햇빛이 강하게 교실을 가로질렀다. 수진의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머리카락을 타고 붉은 선을 그리며 뚝뚝 떨어졌다.


소희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다시—, 다시 한번 내려칠 듯이.

말려야 한다.

말려야 한다.

말려야 한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소희의 팔을 붙잡았다.


“소희야.”


소희가 내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카메라가 다시 수진을 내려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퍽—] 소리와 함께, 수진의 팔이 허공을 휘젓다 힘없이 내려앉았다. 수진의 입술이 달싹였지만, 목소리는 새어 나오지 않았다. 교실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제야, 소희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보였다. 지금 소희가 느끼는 것은 분노도, 슬픔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은, 산산조각 난 감정들만이 남아 있었다.


“소희야, 제발.”


소희의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그제야, 소희가 나를 보았다. 소희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드리워졌다. 소희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다, 천천히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툭, 손에서 미끄러진 카메라가 바닥에 떨어졌다.


“……괜찮아?”


카메라가 바닥에서 튕겼다. 렌즈가 깨졌다. 조각난 유리가 바닥 위로 흩어졌다. 그 안에 있던 우리의 모습도, 산산조각이 났다.


*

수진은 응급실에 실려 갔고, 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조퇴시켰다. 그리고, 나와 소희는 학교에 남았다. 소희는 교무실로, 나는 그 옆에 상담실로 끌려갔다. 상담실 안은 너무 밝고, 조용했다. 공기 중에 먼지가 떠다니는 게 보였고, 벽에 걸려있는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여진아.”


상담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한 쪽 벽면에, 벽지가 군데군데 뜯겨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그 무늬가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손톱으로 긁어내려 간 듯한 자국. 누가 여기 앉아서 자국을 낸 걸까?


“소희가 왜 그랬는지 말해줄래?”


선생님이 질문이 던지자, 무언가가 내 목을 확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선생님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선생님이 책상 위를 손끝으로 툭툭 두드렸다. 갑자기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수진의 얼굴에 붉게 번진 피. 바닥에 깨진 카메라 렌즈. 그 안에 담긴, 우리 둘.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수십 개의 눈, 그 눈들이 아직도 나를 지켜보고만 있는 것 같았다. 가슴 한 켠이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뜨거워진 피가 몸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만 같았다.


“저희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목이 바짝 말라, 목소리가 갈라졌다. 선생님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우선 여진이 마음 잘 알겠어. 그래도 일단—”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그러는 거냐고요.”

“선생님이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좀 놔두면... 안 돼요?”

소희가 왜 그랬는지. 내가 왜 이러는지. 이제 와서, 이제 와서 물어보면... 내가 어떻게 설명하겠냐고... 왜 내가 가해자처럼 진술해야 하는데. 왜 내가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는 건데. 우리는 피해자인데. 잘못은 저들이 한 건데... 내 떨림이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목에 힘을 주고는 말했다.


“다들... 왜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 거예요?”

“여진아.”


선생님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 시선을 보자, 도망치고 싶었다. 아니, 숨을 쉬고 싶었다. 하지만, 내 폐 속에는 더 이상 공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주먹으로 가슴을 아무리 내려쳐도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쏟아냈다.


“제발... 숨이라도 좀 쉬게 놔두면...... 안 되냐고요.”


그 순간, 벽지의 뜯긴 틈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잔잔한 물결, 햇빛을 머금은 파도, 아득하게 펼쳐진 수평선. 눈을 깜빡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한참 뒤에야 상담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복도에 나와 숨을 들이마셨지만, 여전히 목 안은 텁텁했다. 소희는 아직일까. 하긴, 나보다 소희가 더 심하겠지. 이제 소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복도 끝을 멍하니 바라봤다. 복도 조명이 흐릿해서 어지러웠다. 그때, 복도 오른 쪽에서 둔탁한 발소리가 들렸다. 거칠게, 거의 내달리는 소리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계단에서 땀에 젖은 머리를 한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익숙한 얼굴. 어디서 봤더라.

아, 수진이 찍은 사진. 소희와 함께 있던 남자였다.


그 남자가 교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손잡이가 벽에 부딪혀 [쾅—] 소리가 났다. 순간, 교무실 안에 있던 선생님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봤다. 그의 숨이 거칠게 교무실을 채웠다. 남자가 어깨가 들썩이며, 빠르게 말했다.


“유소희 보호자입니다.”


책상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신중한 얼굴로 물었다.


“그 혹시 성함이…”

“…신영일.”


남자가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거칠게 갈라졌다.


“소희 법적 보호자입니다.”


그 남자의 말에, 교무실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 이어졌다. 나는 그의 뒤에 다가가서, 교무실 구석에 앉아 있는 소희를 보았다. 소희는 그 남자를 보고도. 그의 거친 숨소리를 듣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소희야. 괜찮아.”


그 남자는 소희를 보자마자 달려갔다. 책상에 부딪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넘어질 듯한 걸음으로 소희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단숨에 소희를 끌어안았다.

그 남자가 엉엉 울었다. 소희의 작은 몸을 꽈악 끌어안고 울고, 또 울었다. 등을 감싸 쥔 그의 손이, 아니, 그의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계속 말했다.


“괜찮아, 아무 일 없어. 괜찮아….”


소희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안긴 채, 가만히 있었다.


-[8부에서 계속]

<명구 에디터 작성>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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