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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두 Jan 25. 2019

그 날 내가 하는 일이 처음으로 부끄러웠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기 어려운 일.

선생님 시간 나세요?


작년 12월 중순, 그러니까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어느 날 센터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멘토와 그가 담당한 아이가 내게 퇴근 후에 시간이 있냐고 묻는다. 나는 평일엔 시간을 내기가 어렵고 토요일은 따로 시간을 내어 볼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했더니 저녁을 같이 먹고 싶다고 한다. 아이가 이제 대학에 합격하여 나와 멘토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저녁 식사를 사고 싶다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내가 이 아이한테 밥을 사도록 하는 것이 괜찮을지 고민했지만, 곧 아이가 사고 싶다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그 행동이 상식밖에 일은 아니라 판단하여 동의하였다.     

약속 날, 나는 대체 밥은 네가 사는데 왜 식당 앞에서 안 보고 내가 너희들을 태워서 식당까지 가야 하냐며 운전대를 잡고 투덜대었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그 아이가 계산을 한다. 그 모습이 퍽 낯설다. 식당을 나오니 이들이 내게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한다. 그리고 나는 커피를 마시는 것은 좋은데 왜 내가 또 너희들 태워서 카페까지 가야 하는지 참 이상하다며 투덜대었다. 분명 내가 대접받는 것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이들이 만나는 순간부터 케이크를 들고 있다. 아마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분명 낯간지러운 일인 듯하여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낀다.     


카페에서 음료를 이들에게 사주었다. 밥은 내가 얻어먹었으니 다른 것은 내가 사주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런데 멘티가 카페 사장에게 여기서 케이크가 초 좀 붙여도 되겠냐고 한다. 정말 여기서 하는 거야? 그런데 뭘 하는 건데 싶다. 잠시 자리에 앉았다가 음료를 받아서 오니 케이크가 초가 꽂혀있다. 아 근데 이거 정말 초가, 그냥 초가 아니다. 불 붙이면 활짝 펼쳐지고 쌈마이 한 멜로디 나오면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거대한 초다. 케이크만 한 크기다. 내 심리적 시각에 크기로는 거의 테이블만 해 보인다.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내가 퇴사하는 기념이란다. 퇴사 축하 파티. 이거 하고 싶어서 내 시간이 필요했구나. 그런데 어쩌지 3개월 더 일할 예정인데. 자기들은 당연히 12월 퇴사인 줄 알았다며 어쨌든 파티는 지금 해야 된다고 한다. 왜 파티를 하는데 당사자인 내 의견은 없는가.     


초에 불을 붙이니 초가 갑자기 확 펼쳐지면서 저렴한 생일 축하 멜로디가 나온다. 그냥 나오는 게 아니고 뱅글뱅글 돈다. 온 카페에 손님들이 날 바라보는 것 같다. 민망하다. 이들은 뭐가 좋은지 깔깔대고 웃는다. 아 숨 넘어가듯이 웃는다. 광대가 아프단다. 그래 니들이 좋다면야. 내가 너에게 가지는 마음에 부채가 있는데 이 정도쯤이야 하고 생각한다. 문득 그때 일이 떠올랐다.



선생님 이거 꼭 해야 돼요?


4년 전, 내가 일하는 지역에서 같은 일을 하는 센터끼리 모여서 연말 행사를 하기로 하였다. 각 센터에서는 1년 동안 아이들이 한 작품과 무대행사를 준비해달라고 한다. 또 여러 가지 행사가 동시에 진행되는데 처음 하는 행사라 지역 행정기관 고위직도 참석하게 될 것이라 한다. 결국 아이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센터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외부에 보여주는 자리가 되었다. 그렇게 사례 발표도 필요하게 되었다. 외부에 사람들이 오니 앞으로 지원을 더 받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선 아이들이 어떤 걸 경험하였는지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센터에 발표하기에 적절한 사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마침 한 아이가 눈에 띈다. 한부모 가정, 보호자 장애판정, 검정고시 통과. 나는 이 아이한테 가볍게 물었다. 센터에서 이런 것을 준비 중인데 좀 도와줄 수 있냐고 말이다. 아이는 곤란해한다. 어려워한다. 그래 그도 그럴 것이 어디 무대에 나서고 남들 앞에서 무얼 하는 일이 쉽겠는가. 내가 다시 한번 간곡히 이야기한다. 이것은 센터에서 하는 일이라기보다, 나 개인이 하는 부탁이라며 이야기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아이와 잘 관계되어 있는 사람은 나였으니 내가 부탁하는 것이 보편이고 나는 내가 맡은 일을 수행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     


아이는 어렵게 허락하고 나 말고 센터에 있는 여러분들이 아이에게 신경 써주게 되었다. 아무래도 아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것을 강조하고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 지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준비를 잘해가고 있었는데, 행사 하루 전 날에 아이가 내게 이야기한다. 선생님이 이거 꼭 해야 돼요? 나는 참 대수롭지 않기 대답했다. 이제까지 준비했고 여러 사람들이 도와줬는데 괜찮지 않겠니? 그리 나쁜 결과가 나오지 않을 거야. 괜찮을 거야 라고 말이다.



쌤, 왜 이야기 안 했어요? 왜?


행사 당일, 작품을 전시하고 아이들 공연 무대도 준비했다. 정신이 없다. 나는 작품 전시에 필요한 몇 가지 사항을 놓쳤고, 아이들 무대공연만 겨우 챙겼다. 다행히 아이들이 무대는 잘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사례 발표에 원고를 점검하고 무대에 혼자 오를 아이를 다시 한번 격려했다. 아이는 앞에 공연 무대에 올랐다가 다시 관객석에서 준비 중이었다. 내빈들이 오고 이제 사례 발표를 하는 즈음이 되었고. 나는 강당 외부에서 마지막으로 작품 전시 부스를 챙기고 있었다. 강당 내부를 비추는 외부 TV를 보니 아이가 혼자 오롯이 무대로 오르는 게 보인다. 이제 곧 다 마무리되겠구나.     


아이가 준비된 원고를 무대에서 읽고 조금 시간이 지났을 무렵, 함께 행사 무대 공연을 준비했던 아이의 친구가 훌쩍이며 강당 문을 열고 밖에 있는 나를 찾아온다. 왜 울어 왜. 무슨 일이야. 나는 살짝 놀랐다. 아까 무대에서 뭐가 안 좋았나? 싸웠나? 이런 생각들이 든다. 그런데 내가 들은 말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무대에서 원고를 읽는 그 아이의 친구는 훌쩍이며 내게 말했다. 선생님, 왜 이야기 안 했어요? 왜?, 무얼 말이야. 내가 무얼 이야기 안 했어? 쟤 저런 사정인 거, 왜 나한테 이야기 안했냐고요. 왜? 불쌍해.     


아. 나는 탄식했다. 그리고 강당 내부를 비추는 TV를 다시 바라본다. TV 속에 아이는 단상에 올라 화려한 핀포인트 아래에 초라하게 서 있다. 거기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불쌍한 사람이라 이야기하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내가 뭘 한 거지. 나는 왜 아이에 맘을 알아주지 못했을까. 왜 하루 전날 내게 꼭 해야 하냐고 물었었는지 그제야 이해가 간다. 그리고 나는 참 성숙하지 못했다. 그 아이에게 나는 내 입장에서 이야기했으니 말이다. 일을 해야 하는, 그저 맡은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 나는 서 있었다. 거기에 그 아이는 없었다. TV 속 아이의 모습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훌쩍이는 그 아이의 친구를 달래어 무던하게 받아주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굳이 어려운 이야기들 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리고 무대에서 원고를 다 읽고 내려온 아이를 맞이하러 갔다. 아이는 온몸이 다 지친 듯이 보였다. 나는 고생했다고 아이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 아이에 눈을 바라보는 것이 왜 그리 힘들던지. 그 날 내가 하는 일이 처음으로 부끄러웠다.



그리 말해주어 고맙다.


그 날 이후 나는 이 아이에게 많은 것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센터에 여러 수혜 사업이 있으면 우선 이 아이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였다. 센터에서 무언가 할 때 최대한 이 아이가 곤란할 만한 것이 있으면 알게 모르게 제외하곤 하였다. 아이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상을 받을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어느 날은 다른 선생님께서 이 아이가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은데 왜 여러 가지를 챙겨주어야 하는지 내게 물었다. 나는 센터는 이미 아이에게 그만한 것을 받았다. 그러니 그 정도는 해야 되지 않느냐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런 부채의식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날 행사에 내가 담당자였고, 내가 주도적으로 아이를 설득했고, 내가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다. 내가 마땅히 아이가 어떤 상황에 놓일지 알고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나는 내가 아이에게 상처를 입힌 것 같아 두려웠다. 그러나 묻질 못했다. 혹시 그날 많이 힘들었니 하고 말이다. 내 잘못을 마주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아이는 내 생각보다 센터를 오래 이용했다. 해가 몇 번 바뀌고, 아이를 담당하던 오랜 멘토와 아이, 마침 그렇게 3명이 센터 인근 카페에서 간단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날 나는 오래 미루어두었던 일을 했다. 선생님이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 날 행사에서, 널 그렇게 무대에 세웠던 것에 미안하다. 내가 너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거 같아서 부끄럽다. 그저 내가 하는 일 때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곤란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너에게 부적당한 일을 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이다. 그 말에, 아이는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센터에서 많은 것을 받았어요. 괜찮아요. 나는 아이가 그리 말해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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