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에 관한 문제에서 정상의 범주는 일부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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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가 정책을 이야기하는 것은 웃긴 이야기 일수 있다. 그러나 상담사가 언급하는 정책은 상담사의 말을 통해서 신뢰가 되어 내담자에게 전달한다. 결국 정책이라는 키워드도 상담을 통해서 신뢰를 다루는 일이 된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다시 기대를 품을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청소년상담사는 개인의 성장뿐 아니라, 그들이 마주할 미래를 함께 이해하고 설계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언제나 ‘신뢰’가 있다.
그러나 그 신뢰를 말하는 일이 의외의 지점에서 흔들리는 순간이 있다. 정책, 특히 국민연금과 같은 제도를 설명해야 할 때다.
“어차피 안 될 것 같은데요.”
청소년들에게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이 말은 단순한 냉소나 무관심이 아니다.
그 말 속에는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실망하지 않으려는 방어,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었다는 감각, 그리고 자신이 설계되지 않은 제도의 미래를 책임지게 될 것이라는 불안이 스며 있다.
예를 들면 국민연금은 노후를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공적 제도다. 2024년 기준, 역대 최고 수익률을 기록하며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입증한 바 있다.
그러나 청소년에게 이 제도는 여전히 자신과 무관한 언어, 또는 기성세대의 약속을 자신이 책임지는 구조로 비춰진다. 설명은 가능하지만, 경험되지 않은 제도는 신뢰되지 않는다.
정책 수립자들은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 형평성을 고려하여 제도를 설계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청소년과 같이 정책 대상이자 미래 주체인 이들의 정서와 생활 감각은 논의 테이블에 오르기 어렵다. 제도의 내용은 객관적으로 정당하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설명되고, 누가 포함되어 있는가에 따라 수용감은 달라진다.
이 지점에서 상담자는 내면적으로 흔들린다. 국민연금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왜 지금 개혁이 필요한지를 충분히 알고 있지만, 막상 청소년에게 “미래에는 나아질 거야”라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이 온전히 닿지 않는다는 걸 직감한다.
그럴 때 상담자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 말이 지금 이 아이에게 의미 있는 신뢰의 언어로 들릴 수 있을까?”
정책은 구조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신뢰는 감정의 경험으로 형성된다. 신뢰는 단지 설명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문맥 속에서 체감되는 소속감에서 비롯된다.
청소년이 자신이 그 제도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한, 아무리 좋은 설명도 벽을 넘지 못한다.
“어차피 안 될 것 같다”는 말은 비이성적 회피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현실을 직관적으로 감지한 감정의 표현일 수 있다.
우리는 그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제도만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
심리상담이 개인의 성장만 도모한다는 시각은 다소 편협할 수 있다. 심리상담은 내담자가 사회적으로 적응하길 돕는 일로 작동하기도 한다. 상담자는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수 있도록 언어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제도 역시 감정과의 관계를 다시 설계해야 하지 않을까. 제도는 공정해야 하고, 설명 가능해야 하며, 동시에 감정적으로도 설득되어야 한다.
청소년이 신뢰할 수 있는 사회는 좋은 정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정책 안에 자신이 설계된 존재로 포함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신뢰는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