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일화

by 조현두

마음이 짓무를 것 같은 장마가 시작되려던 지난여름

청수국 산들산들 핀 노란 화분 하나 구해다가

커다란 볕이 드는 창 아래 덩그러니 두고서 찬물을 부었다


그 여름 청수국

참 오래도 피어서 하늘을 보채었을까

산뜻한 가을은 여름을 보낸 적도 없는 것처럼 발끝에 닿길래

올해가 막 시작될 적에는

그 청수국 잘 퍼다 집 밖에 내어 심었다

분명 수국은 더 집 안에 있고 싶어하지 않은 듯 했기에

한적한 뜰에 내어 한 삽 내다 심었다


촛불 같은 새순을 틔우던 수국은

기다란 속눈썹조차 짙은 습기를 머금어 툭툭 떨어지는 여름에 이르더니

더는 푸르게 되는 방법을 잊었나보다

수국은 제 심장을 붉은 꽃잎으로 만들어 내어놓았다


한적한 뜰 안에서 큰 볕에 들던 창을 그리워하며

붉게 아주 붉게

그리고 한 번도 푸르렀던 적 없는 것처럼 꽃을 피운다

내 사랑 수국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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