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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Nov 03. 2022

할 일

2022.11.1

2022.11.2

2022.11.3


집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꾸 할 일을 만들고 있다. 냉장고를 열어 필요한 것을 확인하고 마트로 가 에코백 가득 식재료를 사온다. 식재료를 바닥에 놓고 레시피를 보며 막 만든다. 만들다가 문득 얼마 전에 본 디저트를 생각하고, 이 디저트를 조카가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계속 이어가며 음식을 만들고 언니에게 가져다준다. 어제 산 귤도 같이 준다. 그리고 집에 와선 초저녁부터 침대에 눕는다. 계속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영상을 보고,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으로,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룬다.


그러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한다. 내일 있을 고등학교 강연에서 쓸 원고를 수정하고, 다음 주에 있을 강연에 쓸 원고도 만든다. 북토크를 할 도서관에서 요청하는 서류들에 정보를 넣고 사인을 한 뒤 보내준다. 쓰고 있는 에세이를 열어 퇴고도 하고(오래하진 못한다),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간다(더 급히 읽을 책이 떠올라 그 책을 빌린 김에 안 읽은 책을 반납한다). 


도서관에 갔다 오다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 두 명이 나란히 걸으며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다정한 목소리로 웃음을 섞어가며 고구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쩜 그렇게 고구마를 잘 쪄. 한 사람이 하는 말에 옆 사람이 뭐라고 대답하는데 그건 듣지 못했다. 고구마, 이 단어만 계속 귀에 들어온다. 저 일상적이면서 다정한 대화가 왠지 너무 좋아서, 너무 소중해서, 혼자 또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 감은 머리를 또 감고 머리를 감으면서는 화장실 바닥을 솔로 박박 닦았다. 뭐라도 해야 좀 덜 울게 된다. 나도 이런데, 라고 생각하면 우는 것도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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