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보름 Nov 26. 2022

응원

2022.11.25 금

친구는 26일 토요일 중요한 시험을 친다.

경기도로 신청을 했더니 우리 집 근처(차로 20분 거리) 학교에서 보게 되었다고.

저녁에 응원을 하러 친구가 묵는 호텔 근처로 갔다.

전보다 더 핼쑥해진 친구가 호텔 앞에 나와 있었다. 미리 봐 둔 국밥집이 있다길래 들어갔다.


--


친구는 힘든 일이 있어도 힘들다고 말하는 친구가 아니다. 힘든 일이 다 지나 과거가 되고 나서야 힘들었다고 말하는 친구. 그런 친구가 작년에 전화를 해 힘들다고 말을 해왔다. 친구가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무 위로의 말도 해주지 못했다.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 중엔 위로가 불가능한 일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섣불리 위로의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몇 개월 사이에 십 년이 늙었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내가 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주겠다는 말 뿐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누구에게 할지 모르겠다면 나에게 전화하라고. 다 쏟아내라고.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그대로 고꾸라졌을 것 같은데, 친구는 고꾸라지는 대신 초인적인 힘을 내기로 했다. 뒤늦게 다니던 대학원도 끝까지 마쳐 졸업하고, 목표까지 세웠다. 그 모든 일을 감당하는 도중에도 꾸역꾸역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했고, 아이들에게 날카로워지긴 했지만 적어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과정을 멀리서 다 지켜보고 있었기에 나는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응원을 해주기로 했었다. 친구야 밥도 사주고 커피도 사줄게, 그동안 수고했다는 뜻으로.


국밥을 계산하고 바로 옆 커피숍으로 옮겨 또 계산하려는데 친구가 극구 말렸다. 네가 또 왜 내. 친구의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려고 했었다. 그냥, 너 너무 많이 수고했으니까 사주고 싶었어. 그런데 수고, 까지 말하고 나도 놀라고 친구도 놀라고 앞에 서 있는 아르바이트생도 놀랄 만큼 울음이 팍 터져버렸다. 끅, 터져 나온 눈물이 당황스러워 겨우 계산을 끝내고 자리에 앉자 친구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날 보다가, 내가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자 지도 눈물을 글썽였다.


소설가 되더니 감성이 폭발해? 친구가 분위기를 무마하려 농담을 해 나도 농담으로 받았다. 아니, 소설이랑 아무 상관없어, 나이 때문이야. 나이 드니까 눈물이 시도 때도 없어. (그런데 이건 정말 사실이다.)


눈물이 나와서 제대로 말을 못 해 아쉽지만, 정말 친구에게 가장 해주고 싶던 말이 수고했다는 말이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또 폭풍 눈물을 흘리며 축하해주겠지만, 결과야 어찌 됐든 난 친구가 시험을 보러 여기까지 온 과정 자체가 너무 대단해서, 그냥 이것만으로도 그저 대단하다, 수고했다 말해주고 싶다. 정말, 정말, 정말, 수고했으니까. 정말로. 정말 너무 많이 수고한 친구가 내일 좋은 컨디션으로 일어나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디어 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