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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Nov 26. 2022

지각

2022.11.26 토

동대구역에서 청도까지 가는 열차를 탔다.

방송이 잘못 나와 청도역에서 못 내리고 밀양역에서 내렸다. (청도역, 밀양역 도착할 때마다 방송에서 이번 역은 경산역이라고 나옴.)

길치는 웁니다.


--


밀양에서 내리며 바로 사서님에게 내가 처한 곤경을 알렸다. 방송이 잘못 나왔고 나는 여기가 청도역인 줄 알았으며 하지만 여긴 청도역이 아니라 밀양역이라는 사실을. 전화를 끊고 얼른 지도앱을 켰다. 택시로 40분 거리. 이 얼마나 다행인가. 강연이 끝나고 사서님들이 말하길 잘못하면 부산까지 갈 뻔했다고. 하지만 밀양은 청도와 그리 먼 곳이 아니었고 택시로 1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 역 앞에 택시가 서 있어서 급히 올라탔다. 도서관 이름을 말하자 택시 기사님이 경상북도에 있는 도서관이요? 물으셨고 나는 네, 대답했다. 택시가 출발했다. 죄송하지만 좀 빨리 가주세요, 제가 지금 늦어서요. 네, 대답한 택시 기사님이 내가 보기에도 요리조리 속도를 내며 밟아주셨다. 2시 강연 시작인데 네비가 알려주는 도착 시간은 2시 18분. 어차피 지각은 면할 수 없으니, 그렇다면 내가 강연 시작 전에 말을 잘해야 한다는 답이 나왔다. 관객분들에겐 2시간을 함께 할 강연자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테니까. (그래야 재미있게 들으실 테니까.) (그러니까 내 잘못 아니라는 변명을 길게 늘어놓을 계획...)


다행히 강연 시간은 좋았다. 호의 가득한 눈빛이 내내 나를 향해 있었고, 농담할 때마다 감사하게도 웃어 주셨다. 당황했던 마음도 점차 사그라들었고, 끝무렵엔 내가 힘을 받은 느낌도 들었다. 호의로 가득한 눈빛이 주는 힘, 이 힘을 느낀 날.

 

다행히, 끝은 좋았던,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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