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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에블린에게>를 읽고

by 황보름

밤엔 전자책을 읽는 일이 늘고 있다. 불을 끄고 옆으로 누워 눈이 나빠지든 말든 편안함을 추구. 어젠 밀리의 서재에 들어가 읽을 책을 찾다가 밀리 오리지널 연재 글을 열었다. 제목은 <세상의 모든 에블린에게>. 총 15화까지 공개된다는데 지금까지 공개된 글은 2개. 소개를 보니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의 배급사인 '워터홀컴퍼니' 대표의 에세이였다.

이상하고도 수상하면서 정신 하나 없는 와중에 관객에게 뜻밖의 감동을 안겨주는 '에에올' 전반에 대한 이야기와 이 영화를 재개봉하게 된 과정, 그리고 1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배급사를 차린 저자의 개인적 삶을 엮은 에세이인 듯한데, 무엇보다 나는 밀리의 서재의 기획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정보라 작가가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라 영국길에 올랐던 이야기를 담은 <런던이 나를 불렀다>를 읽으면서도, 이건 정말 밀리의 서재에서밖에 할 수 없는 기획이라 생각했었는데.

지금 가장 이슈가 되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독자도 좋고, 또 이 순간의 뜨거움을 비교적 가볍게 에세이에 담고 또 그걸로 돈을 벌 수 있으니 작가에게도 좋을, 기획. 책을 출간해도 1쇄 소진이 어려운 요즘 같은 상황에 나는 밀리의 서재의 이런 기획이 작가에게 특히 좋으리라 생각한다. 바로바로 독자의 반응도 확인할 수 있고, 또 밀리의 서재는 글 하나마다 가격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서 매달 쫄깃한 기분으로 입금을 기다릴 수도 있으니.

그나저나 '에에올'은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영화를 만든 각본가와 감독의 머리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도대체 그들의 머릿속엔 언제부터 이런 이야기가 쌓이기 시작한 걸까. 전례가 없을만큼 독특한 이 영화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인류 보편의 이야기를 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끝까지 함께 하는 관객만이 볼 수 있는 가슴 뭉클한 엔딩. 관계자들은 과연 관객들이 끝까지 함께 해줄지 확신할 수 없었겠지만, 관객들은 함께 해줬다. b급 영화의 탈을 쓴 새롭고도 놀라운 영화, 에에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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