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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당신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1

by 황보름

오늘은 집에서 나가기 전 고민이 많았어요. 이 옷을 입을까, 저 옷을 입을까. 이 옷과 저 옷의 차이점은 두께. 이 옷은 얇고, 저 옷은 두껍고. 한참을 고민하다 두꺼운 옷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왔어요. 완벽한 선택! 두꺼운 외투를 활짝 열고 바람을 가르며 걷는 기분이 좋았어요. 어깨와 팔, 등엔 따뜻함이 가슴과 배엔 차가움이 느껴졌어요. 여름과 겨울 사이를 걷는 것만 같았어요.


M, 당신이랑은 전화로만 이야기를 했었지요. 통화는 5분 내외였어요. 당신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날, 저는 생각했어요. 이 사람은 참 당당하다. 할 말을 조리 있게 잘 하네. 전문성도 느껴지고. 나랑은 많이 다른 느낌. 그래서 멋지다. 반면, 거리감이 느껴졌어요.


이후 우리는 몇 번 더 통화를 했어요. 당신에 대한 나의 느낌은 변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언제나 같았거든요. 주로 당신이 전화를 했고, 내가 받았지요. 당신의 번호가 뜨면 기대가 되지도,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어요. 딱 당신이 보여주는 만큼의 거리감을 느끼며 나는 당신의 전화를 받아 들었어요.


"여보세요?"

"네, 보름씨."


당신에게 나는 어떻게 느껴졌을까요? 이런 생각을 해본 적도 있어요. 혹, 나의 목소리가 점점 당신을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내 목소리가 당신을 따라 당당함을 과장하고, 전문성을 드러내려 애를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가끔 나를 잃어버리거든요. 기분이 좋아 활짝 웃다가도 무표정한 상대의 얼굴을 보면 내 얼굴은 금세 무너지곤 해요. 내 기분도 내 얼굴처럼 어디론가 훌쩍 사라져버려요. 안타까울 정도로 너무나 쉽게 나라는 사람이 사라지는 거예요.


나를 잃어버린 나라서, 당신은 나를, 당신과 닮은 사람이라 느꼈을까요? 당신은 내게 전화를 할 때 마음이 편안했을까요? 당신과 닮은 사람에게 전화를 하니까? 당신에게 향하는 동안 나의 바람은 이거 하나였어요. 나를 만나러 오는 당신이 지금 긴장하고 있으면 좋겠다. 나와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느끼는 묘한 긴장감을 당신도 느끼고 있으면 좋겠다. 나처럼.


세련되고 높은 빌딩들이 가득했고, 그중 한 빌딩의 1층 카페에서 우린 만났어요. 우리의 대화는 5분씩 끊어하던 대화를 마치 한 데 모아 죽 이어 붙인 것 같았어요. 약간의 디테일이 얹어지고, 서로 눈을 마주 보거나 커피를 홀짝이는 시간이 얹어졌을 뿐, 나는 마치 당신의 사진을 보며 통화를 하는 기분이었어요. 당신은 당당했고, 말을 잘 했고, 전문적이었어요. 나랑은 많이 다른 느낌. 멋졌고, 거리감이 느껴졌어요.


우리는 살짝 웃으며 인사를 했어요. 헤어졌고, 서로 갈 길을 갔어요. 날은 점점 더 추워졌어요. 나는 외투를 채우고 손을 주머니에 넣고 목을 잔뜩 웅크린 채 거리를 걸었어요. 완연한 겨울이었어요. 거리를 걸으며 생각했어요. 나는 오늘도 나를 잃었던 걸까. 당신에게 나는 어떻게 느껴졌나요? 당신은 오늘 긴장했나요?


누군가와의 만남은 유독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요. M, 당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에요. 당신은 또 전화를 하겠지요. 당신은 여전히 당신일까요? 나는 나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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