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얘기하고 싶어
네게 첫 편지를 보낼 때 난 이렇게 생각했었어. 나는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네게 편지를 쓸 수 있을 테지만, 아마 너는 일주일에 하나 쓰기 힘들 거라고. 아무래도 시간이 많은 건 나구, 넌 바쁠 테니까.
그런데 내가 10일만에 네게 답장을 쓰게 되네. 급할 것 없이 언제든 쓰고 싶을 때 쓰자고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너무 늦장을 부린 것 같아 미안하다.
그런데 왠지 써지지가 않았어. 너의 편지를 받고 몇 번을 읽어내려 가면서 난 무슨 말을 해야할까 고민이 너무 되는 거야. 저번에 너 만났을 때 내가 그랬지. '나 구상해 놓은 거 있다.기다려라.' 그런데 그 구상도 날아가 버리고 말았어. 무슨 짝사랑하는 남자한테 편지를 보낸다고 해도 이렇게 많이 고민하진 않을 것 같아.
아무래도 너가 저번 편지에서 쓴 말들이 내게 너무 깊이 들어와서 이런 것 같아. 너희 어머니 이야기, 너의 눈치 이야기, 우리의 체코 이야기, 그리고 함께 성장해 온 이야기. 어느 것 하나 내가 모르던 이야기가 없었는데, 어느 것 하나 가볍게 넘겨지지가 않더라.
그리고 아마 미안한 때문이었던 것도 같아. 너는 편지에서 좋게 말해 줬지만, 너 힘들 때, 내가 널 너무 닦달한 게 아닐까 싶어서 요즘도 많이 미안해. 너니까 날 감당했던 게 아닐까도 싶고. 널 더 많이 위로해주고, 더 많이 받아주고, 그냥 너가 하는 말을 그 어떤 편견없이 들어 줬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내 생각들을 네게 강요했던 가도 싶고.
그때의 난, 내가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너도 강해지길 바랐던 것 같아.
요즘에도 난 가끔 생각해. 강함을 추구하는 나의 이 태도가 실은 내게도 버거운 것이 아닌가 하구. 나도 나약한 사람일 뿐인데 '강해져야 해, 강해져야 해' 하며 내가 너무 나를 밀어붙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내가 눈물이 진짜 많잖아. 그런데 나와 관련된 것에 대해선 절대 울지 않으려하지. 또 힘들어도 누구한테 힘들다 소리 한마디 못하고 혼자 끙끙대기만 하고(까칠해지긴 하지). 그러다 누군가가 내게 '넌 힘든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라고 말하면 속상해나 하고, 또 이러면서도 누군가가 너무 나약하게 굴면 속으론 또 '저러지 말고 강해지는 게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고.
이거 병인가?
그런데 재미있는 건 너가 힘든 시간을 보내던 그때. 우리 둘이 일주일에 한번씩 청계천 거리를 걸으며 이야기하던 그때. 내가 네게 이것 저것 주문하던 그때. 넌 그 시간들로 인해 강해졌다고 지금도 자주 말하잖아.
그런데 난 그 시간들로 인해 반대로 내 나약한 면을 보게 된 것 같아. 그리고 인정하게 된 것 같아. 나도 나약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나를 나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어. 나약함을 인정한다는 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거고 나를 받아들이는 거라는 것도.
그리고 가끔 너무너무 나약해진 통에 나 스스로 답답해질 때에도, 나약함을 억지로 외면하거나 얼른 강해지라고 채근할 것이 아니라 가끔은 잠시 그냥 나를 나약하게 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고 말이야. 나 알게 된 거 많지 않아? ^^
그리고 또 재미있는 건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 온 카톡에서 너가 이렇게 말했다는 거지.
"강한 멘탈로 늘상 평점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째 지난 몇 년 사이 너랑 나랑 좀 바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