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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게 걸어 보자

너와 얘기하고 싶어

by 황보름

이상해. 너의 글을 너가 올린 그날 한번 읽고, 지금 또 읽는데, 두 번 다 마음이 아프다. 너는 희망을 말하고 위안을 말하는 데 내 마음은 뭉클하고 눈엔 눈물이 맺히네.


가끔은, 또는 자주 나는 내 감정 상태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곤 그냥 지나치기도 하는 것 같아. 으샤으샤 기운 내자며 그 날 해야 할 일을 어떻게든 해치우고, 뭔가 잘 해치운 날 같으면, 안도감을 느끼며 잠이 들곤 하거든? 이런 날이 며칠이고 지속됐을 뿐인데 어느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거야.


주로 너의 글 같은 걸 읽을 때야. 너가 쓴 이런 문장을 만날 때.


2011년의 내 상태처럼 어수선하고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혼자 고흐의 그림을 보러 갔었어. 혹시, 불운한 삶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열정적으로 걸어 간 사나이에게서 고단하고 거친 삶을 살아내는 노하우를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를 조금은 했던 것도 같아.


혼자 그림을 보러 가는 너의 모습과, 고단하고 거친 삶을 살아내던 너의 모습이 연상돼서 인 걸까. 아니면 지금의 내 삶이 내게 고단하다 느껴져서 인 걸까. 내가 내 감정을 모르고 지나칠 때보다 더 자주,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의 근원을 찾지 못할 때가 많아. 이럴 땐 그냥 울고 보는 게 상책.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알게 될 수도 있으니까.


나는 네게 정말 부러운 게 있어. 미적 감각이 있다는 거야. 넌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있어서 아름다움을 쉽게 알아채고, 감동하고, 눈물 흘리고, 삶을 살아낼 힘을 얻곤 하잖아. 그런데 나는 사실 그림 같은 걸 봐도 도통 뭘 못 느껴. 너처럼 밀레의 '봄'을 봤어도 '오, 좋은데' 정도만 느끼고 말았을지도 몰라. 대신 책 속 문장에 주로 감동하지.


우리의 이 차이점은 분명 타고난 무엇 때문일 테고, 바로 이 타고난 차이점 때문에, 우리의 삶도 달라지는 것 같아. 너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됐고,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됐으니까.




너 말대로 '잔인한 4월'이 시작됐다. 이제 4월은 우리에게 슬픔이 됐어. 그날이 다가오는 모습을 무거운 마음으로 지켜봐야 하고, 그날이 오면 여지없이 울어야 하고, 그날이 지나가는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슬퍼하는 것뿐이니까.


나도 고작 슬퍼만 할 뿐이면서, 난 세월호 이야기에 피로를 내비치는 사람이 참 미웠다. 나는 그들을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자기 생각만 할 줄 알며, 이 세상 모든 것을 경제 논리로만 따지는 사람들이라 생각했어. 누군가가 아직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적어도 참아는 줘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했거든.


그런데 정여울의 최근 책 <공부할 권리>를 읽고 꼭 그렇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책에서 정여울은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를 읽은 후 비로소 그 사람들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해. 그 사람들 역시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는 거야. 그들 역시 더는 상처받기 싫은 마음에 방어기제를 작동하게 됐다는 거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식으로든 방어 기제를 발동시킬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방어 기제는 발동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무 자기만 보호하는 거잖아.


이왕 책을 언급한 김에 하나 더 말해볼게.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에서 정혜신 박사는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는 이렇게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데. 보통 우리는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흔히 말하잖아. 여기서의 아픔이 스트레스래. 그런데 트라우마는 아픈 만큼 파괴되는 것이라고 해. 트라우마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하나의 인생이 파괴되는 거라고.


그런데 이렇게 인생이 파괴된 유가족들이 한데 모여 뜨개질을 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나봐. 완성된 옷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 한데. 그간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4월은 잔인한 달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름답긴 하더라. 난 이맘때의 날씨가 가장 좋아. 긴팔을 입어도 되고 반팔을 입어 되는 날씨. 낮엔 조금 더운 감이 있지만 저녁이 되면 서늘한 날씨. 이런 날엔 걸어야지. 조만간 만나서 한 번 진하게 걸어보자. 한강에서 봐도 좋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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