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얘기하고 싶어
그러게. 우린 보지도 않고 쉽게 이야기하길 잘하지. 자세히 보지도 않고 쉽게 판단 내리기 역시 잘하고. 그러지 말자고 하는대도 또 감정에 취해 쉽게 말하고 쉽게 판단하게 되는 것 같아. 피곤이 극에 달했을 땐 특히 더하고.
그래서 덜 피곤하게끔 삶을 잘 조율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 내가 피곤하면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을 곱게 보아줄 의지가 안 생기니까. 생각으로 총을 쏘듯 모든 것들을 향해 가차 없이 결론 내버리면 세상엔 욕 할 게 참 많아. 그렇게 흐려진 판단력으로 세상을 보다 보면 내 삶은 점점 더 피폐해 질테구. 그러니 덜 피곤하게, 더 즐겁게 살아야겠어!
그런데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 세상엔 욕할 거리가 참 많지. 슬프게도. 오늘 아침엔 김영하 산문 <말하다>를 읽고 있는데, 김영하 의견에 많은 부분 동의하게 되더라. 김영하는 말해. 터무니없는 낙관주의를 경계하자고 말이야. 대신 비관적으로 살자고 해. 합리적 비관주의자이자 내면이 강고한 개인주의자가 되어 희망할 게 없는 이 세상을 견뎌내자고 말이야.
김영하가 바라보는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아. 말 그대로 욕을 한 바가지 해줘도 모자랄 만큼 이 세상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거지. 이미 한쪽으로 기울 만큼 기운 세상에 대고 낙관적인 마음을 품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르겠어. 그건 마치 저 멀리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데 어쩌면 파도가 나만 스쳐 지나갈 거라고 기대하는 것과도 같을 거야.
이런 세상에선 힘없는 개인만 슬퍼지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게 되잖아. 여기 기웃, 저기 기웃 귀동냥을 해보지만 누구 하나 정확한 답을 알려주지도 않아. 아무도 답을 모르니까. 알더라도 진실을 말해주고 싶진 않으니까.
요즘 우린 이 고민을 참 많이 하잖아. 힘없고 빽 없고 돈 없는 우리 같은 개인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마침 떠오르는 단편소설이 하나 있어.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소용돌이 속으로의 추락>이야. 소설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와. 거기에 빨려 들어가면 죽는다고 생각하면 돼. 뱃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그 소용돌이 속으로 어느 날 한 남자가 빨려 들어가. 사람들은 당연히 그 남자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런데 그 남자가 살아 돌아온 거야. 몇 시간만에 머리가 하얗게 세서는. 사람들은 그에게 물어. 어떻게 빠져나왔냐고. 그러자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어차피 죽을 거라 생각하니까 오히려 정신이 고요해지더라는 거야. 희망을 버리자 도리어 소용돌이 그 자체에 호기심이 생기더라는 거야. 남자는 찬찬히 소용돌이를 관찰하기 시작했데. 소용돌이의 원리를, 그 심연을.
그때 남자의 머릿속엔 하나의 기억이 떠올라.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가 해안가로 떠밀려온 표류물들을 봤던 기억. 그중 유독 원통형 물건들은 부서지지 않았었어. 그래서 남자는 남자 본인도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추락하는 물건들을 관찰해. 그랬더니 정말 원통형 물건들은 추락했다가도 다시 떠오르는 거야. 남자는 이거다, 싶어 몸을 던져 원통형 물통에 자기 자신을 묶은 거지. 결과는, '생존'.
남자가 살아 돌아왔다는 건 내겐 그리 크게 감동적이지 않았어. 희망이 사라진 곳에서 생겨난 호기심과 관찰의 힘, 어떤 순간이 닥쳐와도 고요해질 줄 아는 능력의 힘, 같은 데 더 눈길이 갔어. 위엄 있는 인간이 되는 길을 알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힘은 바로 이런 데 있는 것 같았어. 여기에서 희망을 보기도 했어. 아, 마지막까지 멋진 인간일 방법이 있긴 하구나, 싶었거든.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를 건져내 줄 원통형 물건엔 뭐가 있을까. 어디에 우리를 묶어야 우리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김영하는 '감성 근육'에 우리를 묶으라고 해. 감성 근육을 키우라고.
감성 근육은 잘 느끼는 능력을 말해. 자기만의 느낌을 가지고,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능력. 잘 느끼는 것이 중요한 건 자기만의 느낌이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의견에 쉽게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야. 남에게 침범당하지 않는 나만의 내면을 지닌 사람이 된다는 거지. 김영하는 말해.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야 이 세상은 지금과는 달리 다채로운 세상이 될 테고, 그래야 조금씩 세상은 살만해지게 될 거라고.
우리가 감성 근육을 키워야 하는 건 우리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세상을 위해서이기도 하다는 거야. 그렇다면 김영하가 말하는 감성 근육을 키우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방법은? 당연히, 소설을 읽는 거겠지? 후후. 소설가이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라고 하는 건 물론 아닐 거야. 소설을 좋아하는 나 역시 김영하의 말에 동의하니까.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설뿐만 아니라 책도 거의 안 읽지. 읽더라도 마음에 이렇다 할 잔상을 남기지 않는 쉽고, 편하고, 위로가 되는 책들을 주로 읽고. 이런 책을 읽고 편안해지는 마음,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런 책들은 좋은 일을 한 거긴 해. 다만 이런 책만 읽는다면 우리의 감성 근육은 길러지지 않을 거라는 게 문제지. 아름답고 예쁘고 순한 이야기만 읽는 걸로는 말이야.
그래서 가끔은 큰 마음 먹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책들도 읽어야 할 거야. 기존의 생각과 느낌, 감정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어마무시한 책들을. 내면에 불을 던져주는 책들을.
오늘 편지는 조금 뜬금없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냥, 조금 답답해서 써봤어. 세상이 너무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그래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