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쫌 너무한 더위다. 기대치를 훌쩍 넘기는 더위 때문에 며칠째 기진맥진하고 있어. 밤 10시가 넘어 이제는 좀 괜찮아졌겠지 하며 거실 창을 열었는데, 여전히 그대로야. 오후의 뜨거운 공기가 여전히 창밖에 그대로 있는 거야. 날씨가 더워서 버겁긴 또 처음인 것 같아. 끝이 나야하는데 끝이 나지 않으니 다 내려놓게 돼. 나도 모르겠다, 하며 며칠째 조카랑 놀고만 있다.
이런 더위를 언제 또 경험했었나, 하고 생각하는데 싱가포르를 여행했던 때가 생각났어. 십 년도 더 된 일이야. 필리핀 이후, 언니와 언니 친구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떠났던 두번째 해외 여행이었어. 3박 4일 일정이었는데, 이상하게 싱가포르만은 갔다 와도 왠지 갔다 온 것 같지가 않았어. 마치 한 번도 싱가포르에 가지 않았던 사람처럼 싱가포르 자체를 금방 잊어버렸던 것 같아. 너도 내가 싱가포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거의 듣지 못했지?
유독 여행 중 싱가포르 여행만 기억에서 흐릿해졌었어. 누가 물어보거나 또 너처럼 싱가포르에 갔다 온 사람을 만나면 그제야 '아, 맞다, 나도 싱가포르 갔다 왔었지' 하는 정도로 겨우 기억해 내곤 했지. 왜 그럴까, 하고 가끔 생각하기도 했는데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넘겨버렸었거든. 그런데 요 며칠 더위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보니 '더위 때문이었구나!'하고 알게 되었어.
싱가포르를 여행하는 3박 4일 동안 난 더위에 완전 지쳐버렸어. 여러 곳을 많이 돌아다니긴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은 이유는, 그곳을 가기 위해 매번 끔찍하리만치 뜨거운 더위를 지나가야 했거든. 그 더위를 지나 어느 장소에 도착하면 '아, 이제야 안 덥겠다'는 생각만 하게 되는 거야. 그 장소에 도착해서 기쁘다기보다, 이젠 안 덥겠다고 생각하니 기뻤어. 그걸 몇 번 반복하니 다 귀찮아졌던 것 같아. 어딜 가는 것도, 뭘 먹는 것도.
그렇게 4일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뒤엔 언제나처럼 나 혼자 쿵짝거리며 이런저런 질문을 주고 받았겠지. 이런 식으로.
-싱가포르 여행은 어땠어?
-더웠어.
-여행을 갔다 왔는데 더웠다고만 말하면 어떻게?
-그런데 정말 너무 덥기만 했는 걸.
싱가포르 여행을 추억하려 할 때마다 난 더위를 생각하게 됐고, 어느 여행을 더웠던 여행이라고만 기억하는 건 영 재미없기도 하고, 또 의미 없다고도 생각돼서 난 싱가포르를 여행했던 기억을 자연스레 지우게 됐던 것 같아. 재미없고 의미 없다 여겨지는 것들은 의례 우리들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곤 하잖아.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면 '더웠던 여행'이란 표현은 전혀 의미 없지 않아. 오히려 너무 의미가 짱짱해. 우리 삶의 형태와 색을 결정짓는 것에 '더위' 또는 '추위' 보다 더 강력한 건 없을 테니까. 더운 나라에 사는 사람과 추운 나라에 사는 사람은 DNA가 100퍼센트 같더라도 결코 같은 삶을 살 수 없어. 더우니까 하게 되는 행동과 추우니까 하게 되는 행동이 다르고, 더우니까 하게 되는 생각과 추우니까 하게 되는 생각이 다르니까 말이야.
첫 해외 여행지였던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을 때가 기억나. 그때의 경험은 꽤 강력했어. 냄새까지 기억날 정도로. 그 냄새엔 온도도 스며들어 있었어. 만약 내가 온도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해도 냄새만으로 내가 꽤 더운 나라에 도착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었을 거야.
마닐라 공항에 도착한 뒤 여행사에서 준비한 대형버스에 올랐어. 한국 사람들만 가득했던 버스에서 창 밖을 보는데 짙은 피부색의 마른 필리핀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했어. 어린아이들은 구걸을 하거나, 작고 허술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고, 어른들은 대충 누워 있거나, 아니면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집요하게 쳐다보고 있었어. 왠지 그 사람들이 조금 무서웠어. 그래서 그때 난 내가 고속버스 안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엄청 다행스러웠던 것 같아.
고속버스를 타고 한 한인식당에 가서 김치찌개를 먹는데, 앞에 앉은 입담 좋은 가이드분이 필리핀의 요모조모를 실감 나게 이야기해줬어. 그런데 그 이야기 속 필리핀 사람들은 다른 모든 좋은 기질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게으른 사람으로 정리됐어. 그들의 그런 모습에 한국인들은 울화통을 터트리게 된다고.
외국에 살면 애국자가 된다고들 하지. 역시나 가이드 분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끝맺었어. 한국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건 부지런한 한국인들 덕이고, 필리핀이 이렇게 못 살 게 된 건 게으른 필리핀인 때문이라고. 흐응, 너무 단순해서 따분한 결론이지만, 쉽게 이이를 제기할 수 없어서, 반복적으로 애용되는 결론이지.
그런데 이젠 이렇듯 억지로 한 나라의 국민들을 추켜세우고, 다른 나라의 국민들을 바닥에 내동댕이 치는 듯한 결론은 그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아. 그 두꺼운 <총, 균, 쇠>에서 주장하는 말이 이거잖아. 지금 우리의 상황이 좋든 나쁘든 그건 우리가 잘나거나 못나서가 아니라 그저 '우연히' 이렇게 된 것뿐이라고. 그러니 백인이라고 해서 뻐길 것도 없고, 흑인이라고 해서 기죽을 필요도 없다고.
인종 문제뿐만이겠어? 한 개인의 잠재력보단 그 개인이 자라나는 토양이 개인의 성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잖아. 그 개인이 자라난 나라의 계절 변화나, 제도, 동네 분위기, 부모의 인격 등등 같은 토양 말이야.
날도 더운 날 이런 뜬금없는 이야기를 네게 털어놓는 이유는, 더위가 가시기 전까지 난 토양 탓이나 하고 있고 싶거든. 너무 더우니까 의지력이 5분 단위로 생겼다 사라져. 이러면 안 된다, 하고 생각하면서도 마냥 시원한 방바닥으로 파고들고만 싶어. 이렇게 계속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나중에 지금을 돌아볼 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것 같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마치, 싱가포르 여행이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그런데 사실은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어디 있겠어. '더워서 그랬어, 더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이 말보다 더 강력한 말이 가능할 것 같니?
최근 며칠 동안은, 나를 특징짓던 그 어떤 것들보다 더위가 더 막강한 힘으로 나를 제어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야. 그런데 그게 사실, 생각보다 그리 나쁘진 않네. 괜한 의지, 괜한 욕심 안 부리게 돼서 좋기도 해. 그래서 난 더위 탓이나 하며 더 놀아볼까 해. 그런데 이거, 정말, 너무 더운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