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면

너와 얘기하고 싶어

by 황보름

보통 상상하던 일도 현실화하기 어려운 법인데 넌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을 현실화했구나! 너가 성당엘 다니게 되다니!


너가 처음에 "나 성당에 다니려고 한다"고 말했을 때, 미안하다 친구야, 난 사실 오래 못 가리라 예상했어. 조금은 충동적인 행동이 아닐까 생각했거든. 더군다나 그즈음 너는 니체에 깊이 경도된 상태이기도 했잖아. 니체는 우리에게 외쳤지. 신은 죽었다!


신은 죽었다고 말하는 니체는 머리에 품고 하나님은 가슴에 품으려던 너의 행보가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었지만, 넌 그 행보를 무려 1년 6개월가량 지속됐어. 그리고 이젠 세상에 태어나 두 개의 이름을 부여받게 되었네. 은정이 이자 미카엘라여. 어찌 됐건 원하던 일을 이루어내 축하해.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니체와 하나님을 함께 품는 게 불가능한 일만도 아닌 것 같아. 하나님을 믿는 게 무슨 뜻인가를 한번 생각해본다면 말이야.


정말, 난 이게 늘 궁금했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뭘까?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뜻일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뜻일까. 그런데 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 여기기만 하면 되는 걸까. 아니면 따르기도 해야 하는 걸까.


마침 오늘 길을 걷다가 나조차도 별로 생각 안 하는 나의 구원을 바라는 종교인들을 만났어. 말끔하게 빼 입은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지하철 역 앞에서 온화한 표정과 목소리로 내게 말했지. "교회 오셔서 구원받으세요."


머릿속에 또 뭉게구름이 몽글몽글 피어올랐어. 저 사람들의 말은 교회에 가서 한 한 시간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일까. 아니면 교회에 다니면 저절로 신심이 생기게 돼 구원을 받게 되는 걸까. 구원이라는 건 천당에 가는 걸 말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천당은 뭐고, 지옥은 뭐지? 지금의 교회가 말하는 지옥의 이미지는 단테의 <신곡>에서 많은 부분 따온 거라는데, 그럼 교회는 신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상상력에 의지하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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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떠올리면 무턱대고 솟아오르던 이런 질문들. 실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답을 지금은 갖고있긴 해. 내 답은 피에르 신부님으로부터 나왔어. 예전에 한참 종교에 비판적인 자세를 취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피에르 신부님의 <단순한 기쁨>이란 책을 읽고 더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달까.


<단순한 기쁨>에서 신부님은 말씀하셨어. “유일한 신성모독은 사랑에 대한 모독뿐”이라고 말이야. 신성 모독은 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데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메시지대로 살지 않는 걸 말한다는 거야. 신부님은 말했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신자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우리가 또는 그들 스스로 비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간에 근본적인 구분이 없다고 확신한다. '자신을 숭배하는 자'와 '타인과 공감하는 자' 사이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과 타인들을 고통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 사이의 구분이 있을 뿐이며,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길 거부하는 사람들 간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정말 멋진 말이지 않아? 자신을 신자라 칭하면서도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은 비신자이며, 자신을 비신자라 생각하면서도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은 신자라는 거잖아. 일주일에 한번 교회, 성당에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난 생각했어. 지금 우리 곁의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다면 그 고통에 자기 자신을 참여시키는 게 교회나 성당에 참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이야. 적어도 본인을 신자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불가지론자인 나이지만 피에르 신부님이 말하는 신자로 살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하게 됐어. 타인과 더 많이 공감하려 노력하고, 타인의 고통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는 사람이어야겠다고 말이야.


그러니 너가 타인과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니체를 품으며 하나님을 품어도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 돼버리는 것 아니겠어? 하나님이라면 네게 니체를 따르지 말라고 말하지 않을 것 같아. 하나님이라면 네게 더 많이 사랑하라고 말하겠지.




어렸을 때 잠깐 성당엘 다녔던 것 때문에, 내게도 렐리아란 세례명이 있기 때문에, 난 줄곧 종교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 그리고 종교란 결국 삶의 의미를 묻는 거란 생각에 더 관심이 갖었고 말이야.


요즘엔 이런 생각도 해. 만약 누군가에게 종교가 삶의 의미 차원이 아니라 생존의 차원에서 필요한 무엇이라면, 맹목적이어도 좋으니, 종교를 믿었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종교를 믿어서 위로를 얻고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면 믿는 게 낫겠다고 말이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밥이나 집뿐만이 아니잖아. 위안이고 위로지. 그런데 위안과 위로를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요즘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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