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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Dec 27. 2016

참 다행이다, 이런 삶을 살고 있으니!

너와 얘기하고 싶어

너한테 말한 적 있나? 어렸을 때 내가 여행하기를 아주 싫어했다는 것 말이야. 이유도 말한 적 있나? 과민성 대장증후군 때문이었지. 이상하게 여행을 시작했다 하면 화장실에 그렇게 가고 싶더라. 고속도로에서 차가 꽉 막혀 있는데 배가 슬슬 아파올 때의 두려움! 이 무시무시한 두려움을 경험해봤니? 정말 이 경험 몇 번 하니까 여행이고 뭐고 부모님이 제발 날 좀 가만 내버려두길 바라게 됐어.


하지만 어린애가 무슨 힘이 있어. 부모님이 가자고 하면 따라나설 수밖에. 그때나 지금이나 집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아빠는 주말마다 우리를 차에 태우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는데, 난 그때마다 짜증이 났어. 나의 이 짜증은 결코 숨겨지지 않아 그때 찍은 사진에 다 드러나 있어.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속 내 표정은 대부분 다 부루퉁하거든.


그래서 나름대로 내 무의식이 개발한 치료제는 잠 이었던가봐. 차에 타면 배가 아프니깐, 에라이 모르겠다 하며 아예 자 버리는 거야. 두 시간 멀리 있는 여행지든, 다섯 시간 멀리 있는 여행지든, 난 차만 탔다 하면 자기 시작해서 도착하면 깨어났어. 엄마, 아빠는 그런 나를 '병든 병아리'라 불렀지. 그 결과로, 난 내가 어디를 여행했는지 거의 기억을 못해. 다 귀찮은데 내가 무릉도원에 와 있는지, 유토피아에 와 있는지 알게 뭐겠어.


다행히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중학교에 들어갈 때쯤 없어진 것 같아. 하지만 그러고도 그 후 몇 번 다른 병을 얻었지. 한 번은 위가 아파 몇 년간 고생도 했고. 너도 기억나지? 나 대학교 다닐 때, 위 아파서 뭘 제대로 먹지도 못했잖아. 그러다가 살이 쏙 빠져서 워너비 몸매로 거듭나기도 했었고.


그리고 또 몇 년 후, 이번에는 조금 무서운 병에 걸렸지. 이땐 너한테도 말 안 했던 것 같아. 누구한테 말하기조차 싫은, 그런 병이었거든. 지금 와서 보면 오진이었던 것 같은데(내가 오진이라 확신하게 된 이유는 미드 <하우스> 때문이야. 드라마에서 보니까 그 대단하다는 하우스도 오진을 참 많이 하드라), 여튼 한 1년 반 동안 매일 약 먹는라 정말 고생했었어. 회사에서 일하다가 팀장님에게 허락 맡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가서는 엄마가 미리 와서 예약해 놓은 덕에 얼른 진찰받고 나는 다시 회사로 돌아오고 엄마는 약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꽤 오래 했지.


건강해진 후(사실 약을 먹을 때도 아프거나 그렇진 않았으니까, 내 나름대로 오진이라 판단하고 약을 끊은 후) 엄마가 말하길, 그때 엄마가 자주 울었다네. 나보다 먼저 병원에 도착해 예약하면서 울다가 내가 올 때쯤 되면은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었대. 그런데 나는 정작 울지는 않았어. 대신, 딴마음을 먹었지. 이 병이 계속 진행돼 끔찍한 사태가 발생할 것 같으면 내가 먼저 죽자, 뭐 그런.


실제로 죽을병에 걸린 사람들은 자살을 하지 않는다더라. 암 환자 중에 자살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하지만 그때 난 나의 생살여탈권을 내가 쥐고 싶었던 것 같아. 내 삶의 모습이 내 기대치에 현저히 부합하지 않는다면, 이 삶을 구태어 붙잡고 있을 이유는 없는 거야, 하고 생각했던 거지.


물론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내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난 생명을 쥐고 고민에 빠질 필요가 없었어. 다만, 그때의 그 경험이 나의 한없이 가볍던 생각에 조금의 무게를 더해준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은 해. 죽음을 떠올려 보기라도 한 첫 경험이었으니까.


뜬금없이 이런저런 아팠던 경험을 떠올린 건, 어제 했던 CT 촬영 때문이야. CT 촬영을 처음 하는 건 아닌데 조영제라는 약물은 처음 경험했어. 링거도 처음 맞아봤고. 드라마에서나 보던 하얗고 둥근 통에 시키는 대로 누워있으면 간호사가 와서 조영제를 몸속에 투여해. 투여하기 전에 이렇게 말을 하드라고.


"코로 숨 쉬지 마세요. 약 냄새가 역해서 그래요. 입을 크게 벌리고 입으로만 쉬셔야 해요. 약물이 들어가면 몸에 열이 확 날 거예요. 놀라지 마시고요. 몸 움직이지 마세요."


입을 크게 벌려 숨을 들이쉬고 있으려니 정말 순간적으로 몸이 확 달아오르더라고. 그때 이런 생각을 했지.


"내가 또 이런 경험을 다 해보는구나... 거참, 이왕 이렇게 된 거 좋게 생각하자. 뭘 좋게 생각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촬영은 금방 끝났고, 링거를 조금 더 맞다가 바늘을 뽑았어. 바늘구멍이 커서 지혈을 5분이나 해야 했고. CT 촬영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나왔고, 당분간의 내 삶은 지금 예상하고 있는 그대로 흘러가겠지. 그다지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상태로 말이야.


어제 페이스북을 보는데 페친의 페친이 이런 말을 했더라.


"저는 요즘엔 최악만 아니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올해 워낙 많은 걸 겪어놔서 그런가 봅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내 삶엔 늘 자잘한 문제가 있었고, 지금도 있어. 하지만 언제나 최악까지 가진 않았어. 그러니 다행인 거지. 이런 생각도 들더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의 삶을 산다면, 이것보다 더 다행한 일은 없을 것만 같다는.


올해의 마지막 편지에서 하고 싶은 말은 그래서 이거다. 우리, 참 다행이다, 이런 삶을 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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