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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Dec 09. 2016

'희망이 없어도 저항하는' 첫 세대

너와 얘기하고 싶어

다시는 우리 인류 역사에 홀로코스트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홀로코스트가 자행되고 수백만의 유대인이 존엄을 보장받지 못한 채 죽어간 후, 인류는 그간 칭송해 마지않던 '이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어. 300년 남짓한 '이성의 역사'가 결과적으로 보여준 건, '인간이 얼마만큼 잔혹하고 어리석어질 수 있는가' 였으니까.


'신의 명령'이 아닌 '이성의 명령'으로 행동하는 것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다고 철학했던 사상가들은 너무 느슨하게 사색했던 건지도 몰라. 본인들의 그런 철학적 사유가 우리를 이토록 오만하게 만들 줄 그들은 알았을까. 어느 진화론자가 말하듯, 인간의 지능이 이렇듯 발달한 건, 그저 갖은 꾀를 부리다 보니 자연스레 이렇게 된 것뿐인데 우리는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


어제 어느 칼럼을 봤는데, 그 칼럼니스트가 이렇게 말하더라. 지금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상황은 구한말 상황보다 더 안 좋다고 말이야. 망국은 결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눈 앞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고. 며칠 전에는 경제 관련 기사도 하나 봤어. 지금 우리나라 경제가 98년 IMF 시절보다 더 나쁘다고 기사는 말했어. 어느 세계적인 경제 석학은 한국의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면서, 한국 정부가 지난 1년간 허송세월을 보냈다고 말했어.


지난 두 번의 청문회를 지켜보며 나는 처음과 끝은 결국은 만나게 되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어. 속임수라는 꾀가 이룩해 놓은 인간의 높은 지능이 다시금 꾀를 부리고 있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거대 기업의 부사장은 청문회 내내 우리를 조롱했어. 뻔히 보이는 사과를 수도 없이 해대는 그의 '얕은 듯 보이지만 악랄한' 수법은 지능이 있기에 가능한 계략이었어.


40년 넘게 절대 권력 옆 자리에서 갖은 콩고물을 긁어먹은 한 늙은 정치인도 마찬가지였어.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싶게 그 늙은 자는 14시간 동안 같은 말만 되풀이했어. 대단한 정신력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 사람 자체에게서 인간 혐오를 느꼈어. 그의 별명인 '김똘똘'답게, 그는 '똘똘하게' 대처했어. 단호한 표정처럼 단호한 꾀가 그의 안에서 그를 열심히 북돋는 듯했어.


높은 지능을 지닌 우리 인간들 중 일부는 위의 두 사람처럼 지능을 다시 꾀로 돌려놓았어. 속임수로 힘과 권력을 얻고, 속임수로 그 힘과 권력을 공고히 했어. 그리고 그 일부를 제외한 우리들 역시 지능을 지니고 있지. 마음만 먹는다면, 악인이 되어야겠다고 눈물을 머금고 나아간다면, 우리 역시 얼마든 속임수를 부리며 살아갈 수 있겠지.


지난주인가. 어느 글을 봤어. 글에선 대한민국의 2, 30대 앞에 놓인 '희망 없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어.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출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미로에 들어선 것과 같은 상황이 되어버린 사람들. 우리 세대는, 삶의 거친 굴레에서 벗어나려 아무리 발버둥처도 쉽사리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린 세대야.


글에서 글쓴이는 꽤 슬픈 어조로 계속 말을 이어갔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했어. 우리는 다른 의미에서 또 첫 세대가 될 것이라고. '희망이 없어도 저항하는' 첫 세대. '희망 따윈 없어도 저항할 수 있는' 첫 세대. 그러니까 이 말은, 비록 내 삶엔 희망이 없지만, 우리 다음 세대엔 희망을 주고 싶어 하는 첫 세대라는 말이었어.


우리는 꾀를 선택하지 않았어. 우리는 사랑을 선택했어. 지능의 끝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능의 끝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한 거야. '더 높은 지능'이 아니라 '더 나아간 지능'.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영원의 관점에서도 생각해 봤어. 우리는 다음 인류의 첫 줄에 서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나치가 한창 유대인 학살을 하고 있을 때, 발터 벤야민은 나치를 피해 망명을 하다 자살을 해. 그의 그 망명길을 그린 제이 파리니의 <벤야민의 마지막 횡단>에서 벤야민은 자살을 하기 전 한 아이에게 이렇게 말을 해.


"이 세상은 항상 폐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작은 기회가 있어. 만약 우리가 아주, 아주 열심히 노력한다면, 우리는 선을 상상할 수 있을 거야. 우리는 파손된 것을 복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낼 수 있어. 조금씩, 조금씩."


본인은 자살을 하고 말 거지만, 아이에겐 작은 희망이라도 주고 싶었던 벤야민의 마음에 울컥 눈물이 났던 부분이었어. 확신에 찬 말이라기 보단, 꼭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담긴 말이었어. 그래서 더 믿고 싶은 말이기도 했어. "아주, 아주 열심히 노력한다면", "조금씩, 조금씩" 이 세상은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난 정말 믿고 싶었어. 꾀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누르고, 더 앞으로 나아가려 우리 모두 다 같이 노력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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