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 <매일 읽겠습니다>에 언급된 책은 총 140권이다. '요즘 무슨 책 읽어요?' 꼭지에서처럼 지인들이 추천한 책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몇 권 뺀다 쳐도, 얼추 내가 읽고 인용한 책만 100권은 훌쩍 넘는 셈이다. 그간 읽은 책을 인용한 경우가 더 많지만, 때로는 '자료 조사차' 그때그때 읽기도 했다. 그리고 '자료 조사차' 책을 읽을 때면 긴장이 스르륵 풀려 '글 쓰는 건 너무 어려우니 책이나 계속 읽었으면 좋겠다'는 유혹에 수시로 빠져들었다.
글을 쓰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글을 쓰기가 싫어 딴짓을 해 본 적 있는 사람의 수는 얼마나 될까. 얼추 전 세계 '작가 지망생 + 작가'의 수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글과 너무 동떨어진 딴짓을 하기엔 마음이 불편하니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 딴짓'을 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이 역시 얼추 전 세계 '작가 지망생 + 작가'의 수와 비슷하지 않을까.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 딴짓'을 하면서는 죄책감이 결코 느껴지지 않기에 실은 그닥 딴짓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딴짓을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자료 조사.
자료 조사가 글에서 도망칠 꽤 유용한 핑곗거리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일찍이 눈치챘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던 때, 나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글을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책상에 앉기 싫어 어제 저녁에도 한 샤워를 오늘 아침에 한 번 더 하고, 책장에 잘 꽂혀 있던 책들의 위치를 괜히 요리조리 바꾸고, 만들어 먹지도 않을 요리 레시피를 진지하게 탐구하고, 심부름을 자처해 집 앞 가게에 가고. 글쓰기만 아니면 뭐든 다 할 준비가 된 듯 행동하는 내가 어찌나 웃기면서도 황당하던지.
그렇게 이 핑계 저 핑계 다 대가며 글을 미루고 있던 그 날 아침, 나는 꼭 읽어야 할 책을 생각해내곤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의 정독. 어차피 해야 할 일을 하는 마음은 어찌나 편안하던지. 글을 쓰는 대신 책을 읽는 마음이 어찌나 당당하던지. 나는 어느덧 마음의 소리로 내게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당장 글을 쓰지 않아도 돼서. 자료 조사차 열심히 책을 읽어보자꾸나.'
책을 쓰려면 자료 조사는 꼭 해야 하므로 자료 조사를 하며 양심의 가책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자료 조사라는 게 칼같이 정확하게 '딱 여기까지만 하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마치 영원히 자료 조사만 할 것처럼 자료 조사에만 몰두할 수도 있었다. 또 내가 아무리 철두철미하게 조사를 한다고 해도 어차피 다치바나 다카시보단 철저하진 못할 테니 '더 철저해지잔 마음'으로 최대한 글쓰기를 미룰 수도 있었다. 아, 이토록 달콤한 자료조사라니.
나는 곧 이런 달콤함은 나만 맛보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바버라 애버크롬비의 <작가의 시작>에서 한 꼭지의 제목은 '자료 조사의 덫'. 이 글에서 바버라는 작가들이 자료 조사를 하며 느끼는 달콤함 그 이면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그녀는 자료 조사에 뒤따르는 기분을 무려 황홀함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글을 위한 자료 조사는 때로는 커다란 재미가 되며 때로는 아늑한 덫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 나는 한 달 동안 알래스카를 조사하며 행복에 겨운 나날을 보낸 적이 있다. (중략) 약 한 달 동안 행복하게 메모를 하며 실제로 글을 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몹시 신이 났다. (중략) 조사에 중독된 사람들에게는 도서관과 인터넷이 마약밀매업소처럼 황홀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정말 힘들고 성가시고 짜증나는 일은 바로 머릿속에서 글을 짜내는 일이다."
나는 벌써 몇 년간 아침에 일어나면 졸리면 하품을 하듯 너무나 당연하단 듯이 글을 쓰려 책상에 앉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글이 자주 쓰기 싫다. 그럴 때면 평소보다 더 벼려진 집중력을 발휘하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글자와 영상에 온 정신을 쏟으면서도 '좋은 책을 쓰려면 풍부한 자료 조사가 필수지.' 하고 생각하며 마음의 안정을 꾀하는 건 당연한 일. 다음 책을 얼른 쓰고 싶지만, 최대한 미루고 싶기도 했던 오늘. 나는 오늘도 '자료 조사차' 책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