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쯤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처음으로 문장 다듬는 법을 배웠다. 그때 알게 된 사실 하나. 사실상 내가 쓴 첫 문장은 적당한 크기의 석고 덩어리일 뿐이라는 것. 그러니 첫 문장을 무척, 매우, 힘겹게 써냈다고 하여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는 사실! 첫 문장을 쓰고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옆에 놓인 칼을 들고 석고를 정성껏 다듬는 일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나는 무딘 칼로 땀을 흘리며 조각을 해나가야 했다. 몇 시간에 걸쳐 겨우 완성한 석고의 모습은 어딘가 어설프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매번 완성했다는 성취감은 있었다.
문장을 다듬는다는 의미는 '하지 말라는 건 안 하기' 정도로 이해됐다. 강사님이 우리에게 하지 말라고 한 건 사실 몇 개 안 됐다. 글쓰기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 만한 조언들. '것''적''의' 빼기, 수동태 쓰지 말기, 접속사 쓰지 말기, 군더더기 빼기, 괜히 허세 부린답시고 어려운 한자 쓰지 말기, 과장하기 위해 부사 쓰지 말기 정도. 앞의 조언들 앞에는 '되도록'이 붙는다는 것도 알았다. '것''적''의'나 접속사 등을 사용해야 할 때도 물론 있으므로, ‘되도록’ 사용하지 말기.
6개월 동안 강의를 들은 후엔 강의에서 배운 게 전부가 아닐 거란 생각에 책도 여러 권 사서 읽었다. 한국에서 글 깨나 쓴다는 사람 치고 이분에게 혼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이수열, 이오덕 선생의 책부터 고종석을 지나 김정선까지. 우리가 잘못된 문장을 쓰는 원인에 잘못된 번역이 있다는 사실을 알곤 번역가들을 대상으로 한 책도 읽었다. 맞춤법, 띄어쓰기를 다루거나 기본 문법을 다룬 책도. 짜잔, 그렇게 해서 탄생한 내 문장이 요정도다.
아마 책을 사서 읽지 않았다면 아래 문장이 잘못된 문장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 그날 우리는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내가 읽은 책들에서는 이런 문장에 가차 없이 빨간펜을 그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고쳐 놓았다.
- 그날 우리는 모임을 했다.
또는
- 그날 우리는 모였다.
또는
- 그날 우리는 만났다.
'~을 갖는다'라는 말이 잘못된 영어 번역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have, take, get 등을 직역하다 보니 만들어진 문장 형태라고. 이 사실을 알고부터는 '그 사람은 좋은 생각을 가진 듯하다'라고 쓰고 싶으면 '그 사람은 좋은 생각을 하는 듯하다'라고 썼다. 일반 독자가 보기엔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문장들도 속속들이 알고 보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문장들이라는 걸 알고 나자 문장에 더 흥미가 생겼다. 이맘때쯤부터 나는 막연히 잘 다듬은 문장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물론 이렇게 말할 사람도 많을 듯싶다.
"문장만 깔끔하면 뭐해, 그 문장이 담고 있는 내용이 상투적이고 고루하면 말짱 꽝이지."
나 역시 이 생각에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동의한다. 그러니 잘 다듬어진 문장에 좋은 내용을 담아내야 하겠지.
또 이렇게 생각할 사람도 있을 듯하다.
“잘 다듬은 문장을 쓰고 싶다는 사람이 쓴 문장치곤 너무 별로인데?”
나 역시 이 생각에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동의한다. 그러니, 계속 연마할 수밖에.
수업에서 들은 '하지 말란 몇 가지'도 늘 잊어버리곤 하는 내가 그 많은 책에서 읽은 내용을 다 기억해 문장에 고스란히 투영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걸 알긴 한다. 분명 이 글을 다 쓰고 나서 퇴고를 몇 번이나 해도 여전히 잘못된 문장들은 남아 있을 테다. 그렇다고 지금껏 책에서 읽은 내용들이 모조리 쓸모없어 지진 않았다. 몇 시간쯤 문장과 씨름을 하다 보면 기억의 저편에서 하나, 둘씩 '이것도 고치고 저것도 고쳐'하는 속삭임이 들려오곤 하니까. 그러면 나는 속삭임의 노예가 되어 문장을 수정하는 기계가 된다. 이럴 때만큼은 나는 임무를 정확히 수행하는 기계가 된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그저 내가 더 정확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끝없이 들려오는 속삭임은 내게 위로의 말이다. 내 글에서 더 고칠 게 있다는 말은, 내 글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니까. 나는 가끔 내 글이 좋아질 수 있다면 내 안의 뭐라도 팔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사실 내 글이 좋아지게 하기 위해 뭘 팔 필요는 없다. 그저, 긴 호흡으로 문장을 들여다보다보면 문장은 서서히 좋아지게 마련이니까.
생각을 잘 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쓴다는 윌리엄 진서의 말은 맞다. 나는 여기에 더해 생각을 잘 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 생각을 매끈한 석고상 같은 문장에 담고 싶다. 난다 긴다 하는 교정교열자가 와서 "흠, 이 문장은 괜찮군"하며 엄지 척하게 만드는 문장. 이런 문장을 쓰게 된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그리고, 그렇게 쓰인 문장이 좋은 생각을 담고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먼 훗날 다가올 행복을 위해, 자 오늘도 문장을 보고 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