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원고 투고는 여러 출판사에 동시에 한다. 원고를 투고하면 짧게는 2주, 길게는 2달 검토 기간을 거치니 한 곳에 투고하고 답변받고, 또 한 곳에 투고하는 답변받는 과정을 거치다가는 투고만 하다가 일 년, 이 년이 훌쩍 지나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원고를 보자마자 거절 메일을 보내주는 출판사도 있긴 하다. 물론, 아예 회신을 주지 않는 출판사도 있다.)
알면서도 <매일 읽겠습니다>를 투고할 때는 한 번에 한 곳에만 원고를 보내기로 했다. 출판사 한 곳에 투고해 놓고, 거절 메일이 오거나 검토 기간이 지나면, 다음 출판사에 투고하기로. 딱히 진정성을 보여줘야지, 같은 생각을 한 건 아니다. 단지 이때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게 출판사들이 보내주는 거절 메일이었을 뿐. 거절 메일을 동시다발로 받으면 심장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아 투고를 천천히 할 수밖에 없었다.
내 전략은 이랬다. 원고를 보내 놓고는 원고를 보내 놓은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관심을 기울이며 삶을 더없이 충만하게 보낸다. -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정말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메일이 오면 ‘누구한테 온 걸까?’하며 무심하게 읽어본다. - ‘출간 방향이 맞지 않아’, ‘이번 기회에는 아무래도’, ‘귀하의 귀중한 원고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죄송하게도’ 같은 문구가 보이면 얼른 메일을 닫는다. -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룰루랄라’ 다시 투고를 한다. 물론, 전략처럼 무심하고도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진 못했다.
이왕 이렇게 두려움에 떠느라 세월아 네월아 하기로 한 김에 더 여유를 부리고도 싶었다. 출판사들이 내 원고에 대한 주도권을 갖기 전에, 내 쪽에서도 출판사를 선택해 보면 어떨까?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출판한 출판사에만 투고해보면 어떨까? 내가 재미있게 읽는 책을 출판한 곳이라면 내 취향과도 잘 맞을 테고, 또 믿고 책을 맡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첫 출판사를 선택했다. 에세이 책을 정갈하게 잘 만드는 중견 출판사였다. 이 출판사에서는 원고를 보내자마자 바로 다음 날 거절 메일을 받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곳에서 나온 책을 여전히 즐겨 읽는다.
첫 투고가 단 하루만에 거절되자, 실은 등골이 살짝 오싹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정말 투고만 하다가 1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투고와 거절로 점철된 삶. 이런 삶을 1년쯤 보내다보면 내 성격은 그런대로 괜찮던 유전적 성향을 모두 잃고 환경이 만들어내는 대로 포악해질지도 몰랐다. 아니면, 피해 의식에 사로잡힌 음침한 작가 지망생으로 평생 남게 될지도.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아래와 같은 글을 읽으며 낄낄대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잃었지만 그런대로 즐겁게 살아가는, 여전한 책덕후로 살아가게 될지도.
“나는 내 첫 책의 원고를 76년 전에 마무리했다. 나는 그걸 영어권의 출판사란 출판사에는 모두 보냈다. 그들의 거절 이유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똑같았다. 그 원고가 활자화된 것은 그로부터 50년 뒤였는데, 그때는 출판사들이 내 이름으로 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출판하고자 했다. 나는 출판업자들에게 이렇게 항의한다. 그들이 내게 한 좋은 일 한 가지는 그들 없이 살 수 있도록 가르쳐 준 것이다.” - 앙드레 버나드, <악평>
위와 같이 말한 사람이 조지 버나드 쇼라는 사실에 왜 나는 마음이 포근해질까. 버나드 쇼의 원고도 거절을 당했었고, 그처럼 인기 많던 작가도 끝까지 원한을 극복하지 못해, 수십 년 전 이야기를 여전히 들먹거렸다는 사실에 왜 기분이 좋아질까. 조지 버나드 쇼는 그의 첫 원고를 영어권의 출판사란 출판사에는 모두 보냈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아직 고작 딱 한 곳에만 원고를 보낸 차였다. 그러니 등줄기를 타고 생각이 올라오네 마네 하며 앓는 소리를 하기엔 지금은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두 번째 출판사를 선택해 투고를 했다. 유독 내가 좋아할 만한 책만 주야장천 생산해내는 1인 출판사였다. 며칠 뒤에 건조한 문장이 가득한 거절 메일을 받았다. 세 번째 출판사를 선택해 투고를 했다. 출판사에선 내 원고를 검토해보겠다는 메일을 보내 주었는데, 뭐, 이런 말은 출판사들이 의례 하는 말이라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출판사가 진짜 내 원고를 검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출판사 대표님과 만나기로 한 날. 경의선 책거리 근처 카페에 앉아 대표님을 기다렸다.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오늘 내게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부터 기대하지 않기로, 혹여나 일이 잘못되더라도 실망 또한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실망은, 한국어권 출판사란 출판사엔 원고를 다 보내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으리라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카페로 들어온 대표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내가 보낸 원고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이야기 끝에 내 양쪽 귀에다가 ‘계약’이란 단어를 꽂아 주었다. 단 세 번만에 출판이 성사된 것이다. 그렇다는 건, 이번엔 거절 메일을 단 두 번밖에 받지 않았다는 말!
내 원고를 받아준 출판사는 얼마 전에 읽은 여행 에세이를 낸 1인 출판사였다. 만듦새부터 내용까지 모두 마음에 들어 출판사 이름을 기억해 둔 터였다. 그러다가 출판사 대표님이 예스 24에 올린 글을 우연히 읽었는데 내용이 참 좋았다. 출판사 대표를 하려면 다 이렇게 글을 짤 써야하는가 싶기도 했다. 책도 좋고 대표님 글도 좋으니 투고할 수밖에. 사실, 세 번째 출판사에 원고 투고를 하면서는 이전 두 곳보다 더 기대하지 않았다. 출판사 대표님이 예스 24에 쓴 글에 이런 문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출판사에는 꾸준히 원고가 들어오는데 안타깝게도 출판사가 투고 원고를 출간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러니까 난 투고 원고를 출간하는 일이 매우 드물다고 말하는 곳에다가 투고를 한 건데, 그래서 투고를 할 땐 이런 문장도 덧붙였다.
"투고 원고가 사실상 책으로 나오기 어렵다는 걸 알지만 투고합니다."
여유 부리기로 한 김에 대놓고 여유를 부려본 셈.
이번 책이 나오기 전 몇 년에 걸쳐 두 번 출간 실패를 했다. 이후 내가 너무 아무것도 몰라 자꾸 실패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출간 프로세스를 알려주는 책을 두 권 읽었다. 유용한 정보도 있긴 했지만, 내게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도리어 나는 그 책들을 읽으며 내가 출간하지 못한 건 출간하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는 사실만 알게 되었다. 작가들의 에세이에 단골로 언급되는 ‘출간 실패담’은 그들이 출간 프로세스를 몰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아직 글이 무르익지 않았거나, 무엇보다 아직 우리의 원고를 알아봐 주는 한 명을 만나지 못한 것뿐. 내가 이 원고를 쓴 이유를 깊이 공감해주는 한 사람.
<매일 읽겠습니다>가 출간되고 북 콘서트를 할 때 출판사 대표님이 이런 말을 했다.
“책에 관해 말하는 이 원고가 사람들에게 꼭 책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책을 만드는 사람이지만 저 역시 꼭 책을 읽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책은 부담을 느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즐기면 되는 대상이니까요. 원고에선 그저 글쓴이가 얼마나 책을 좋아하는지, 책을 읽는 시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가 여실히 드러날 뿐이었어요. 저는 그게 설득력이 있더라고요.”
독서 에세이를 쓰면서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책을 만들면서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만난 것.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쓴 글을 역시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읽고 즐겼던 것. 이번 원고 투고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바로 이 만남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