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지인이 베스트셀러 작가다. 독특한 이력에 잘 다듬어진 글 솜씨로 책이 나오기 전부터 페이스북 스타였다고 한다. 예전에 그의 책을 읽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궁금했던 건 그의 하루 취침 시간이었다. 도통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하던데 언제 책을 쓴 걸까. 여기저기에 칼럼도 쓰던데 잠을 자기는 하는 걸까.
지난 연말, 여러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바로 이 베스트셀러 작가를 만났다. '송년회' 겸 '지인이 신문 칼럼에 입성한 기념' 겸 '내 책 출간 기념' 겸해서 모인 자리라 나도 가끔은 이런저런 질문을 받았고, 이런저런 대답을 했다. 다른 지인들이야 그간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 아는 터라 질의응답 과정이 힘겹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베스트셀러 작가가 맞은편에서 이렇게 물어왔을 때는, 정말이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이었다.
"전업작가이신 거예요?"
"아..."
"글만 쓰신다고 하기예요."
"꿈이에요. 글 쓰며 사는 거."
"책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잖아요."
"그쵸."
"..."
"그런데 좋으시겠어요. 첫 책부터 베스트셀러였죠?"
"네, 그렇긴 했죠."
대화 주제를 슬쩍 돌려놓고 얼른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나는 아직 내가 작가인지도 모르겠는데, 전업작가라... 이럴 땐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어쨌든 그가 왜 전업작가라는 말을 쓰며 호기심 가득한(아니 어쩌면 의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대화가 오가긴 했으니까.
점심 식사 자리. 나 포함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이미 출간 경험이 있었고, 나는 곧 첫 책을 출간할 시점이었다. 나도 서평을 쓴 책을 낸 적 있는, 지금껏 두 권의 책을 낸 A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다른 일은 안 하시는 거예요?"
"음..., 네. 대책 없어 보이죠?"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요. 책으로는 돈 못 벌잖아요."
"알죠."
"그럼 어떻게...?"
"우선은 벌어놓은 돈 까먹고 있는 중이에요."
"그게 가능해요?"
"제가 지난 몇 년 살아보고 깨달은 것 하나가 이거예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지더라. 예전에 돈 벌 때는 돈을 쓰며 살았고, 지금은 돈을 최대한 안 쓰며 살뿐이에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내게 시간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시간 동안엔 돈을 벌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며 살고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글쓰기 책 중에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책이 있거든요.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해요. “여러분에게 안정된 삶의 방식을 가지려고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당부하고 싶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시작할 때 이미 당신은 끝까지 그 일을 따라갈 깊은 안정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액수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평생 안정될 거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말을 듣고 생각했어요. 그래, 어쩌면 나는 어느 면에선 지금 꽤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그러니 너무 쫄지 말자.”
이렇게 대답했으면 좋았겠지만 사실 그 자리에선 어리바리하게 음음 거리며 아무말을 내뱉다가 말을 마무리했다. 그러자 내게 질문을 던진 A보다 나에 관해 잘 아는 B가 사람마다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다 다르더라는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는 밥을 먹는 동안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핫’한 삶의 방식이 된 미니멀리즘에 관해 이야기했다.
A의 반응도 그렇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응도 그렇고, 사람들의 반응이 이해는 간다. 궁금한 점이 뭔지는 알겠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추측 가능하다. 그렇기에 나도 마땅한 대답을 못 찾는 걸 테다. 나 역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암울한 미래가 반 발짝 앞에서 나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건 아닌지, 상상 가능한, 그리고 실제로도 가능한 근미래의 우울한 상황을 몇 번씩 곱씹으며 추운 밤을 보내곤 하니까.
하지만 내가 그런 밤을 수도 없이 보낸다고 하여 사람들에게 나의 걱정과 불안을 구구절절 토로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삶의 방식의 장점과 단점을 상대의 호기심을 풀어주기 위해 일목요연하게 나열하고 싶지도 않다. 사실, 글을 써선 먹고살 수 없다는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내가 할 말이란 없고, 나를 걱정하는 또 다른 작가에게도 내가 할 말이란 없는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 내 삶의 방식에 관해 말하고 싶어서 이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니니까.
진실은 이것이다. 아침이 다시 찾아왔을 때 다시금 지금의 삶의 방식을 고수할 수 있는 건, 당연히 아직은 그럴 수 있어서다. 벌어놓은 돈을 다 까먹으면 이런 고민도 다 부질없을 테니까. 또한, 과거를 기억하고 있어서다. 통장에 돈이 쌓여가는 것과는 별개로 늘 불만족스러웠던 하루하루. 몇 년째 일을 하고는 있지만 결코 내 것이 되지 못한 일. 회사를 그만두자 대학 4년에 회사 생활 7년의 시간이 하루아침에 폐지처럼 쓸모없어져 버렸던 일. 성장이 없던 삶, 성취감이 없던 삶, 즐겁지 않던 삶, 행복하지 않던 삶, 이런 삶이 어떤 삶인지 알고 있어서다.
내가 조금은 미친 걸 수도 있지만, 바보가 된 걸 수도 있지만, 가끔 나는 내 삶이 그런대로 괜찮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일을 하고는 있지만 그 일을 좋아하지 않던 과거의 나보다는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서툰 문장 하나를 겨우 써 놓고 하루 종일 고민을 거듭하고, 반복되는 단어를 피하기 위해 유의어를 뒤지고, 그렇게 며칠에 걸쳐 겨우 읽을만한 글 하나를 만들어내는 나지만,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참 좋으니까.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고 있으니까.
나는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걱정에 걱정을 거듭하다가도 어느새 다음에는 무슨 글을 쓸지에 관한 생각에 빠지곤 한다. 물론 이 고민에 빠질 땐 매우 간편하게도 다른 걱정들은 모조리 잊어버린다. 그러다 책에서 이런 구절, "관건은 관심 가는 것을 꼭 붙들고 결실을 맺을 때까지 매달리는 겁니다"(움베르토 에코),을 만나면 역시 내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니었다고 기뻐하며 지금 가고 있는 길을 '계속 고수하겠어!' 다짐하기까지 한다.
물론, 지금 가고 있는 길을 계속 고수하기 위해 나는 반성도 잘 한다. 아무리 내 마음에 쏙 드는 길을 가고 있는 중이어도 그 길을 걷는 '나'가 게으르고 나태하면 길을 걷는 의미가 없을 테니까.
그러니 이젠 반성을 좀 해볼까. 얼마 전에 보니 날 호기심(의심) 어리게 바라보던 베스트셀러 작가가 세 번째 책을 냈더라. 주워들은 이야기와 본인이 여러 군데에 올린 글을 종합하건대 글을 향한 그의 사랑은 꽤 오래돼 보인다. 문학 소년이었지만 배고픈 문학의 길을 걸을 순 없었다고. 하지만 글을 포기할 수 없어 일을 하는 틈틈이 블로그에 매일같이 글을 썼단다. 그 결과가 페이스북 스타를, 베스트셀러 작가를, 유명 작가를 만들었다는 멋진 이야기.
그의 삶과 수많은 작가들의 삶이 증명해 보인 사실 한 가지는 이것일 테다. 너무나 당연히도 일을 하든, 안 하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 그 사람이 글쓰기를 좋아하기만 한다면. 지금 치열하게 글을 쓰고 있다면. 그러니 매일마다 내가 나에게 물어야 할 건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가 아니라 이런 질문 아닐까. ‘나는 지금 치열하게 글을 쓰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작가가 되고 싶은 당신은? 지금 치열하고 글을 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