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오랜만에 친구 두 명을 만났다.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와 (재미있게도) 같은 회사 같은 부서를 다니다가 차례대로 그만둔, 남다른(끈질긴?) 인연으로 이어진 우리들. 그 날 우리가 모인 건 몇 개월 전 회사를 마지막으로 그만 둔 한 친구를 축하(?)해주기 위해서였다.
회사를 그만뒀다고 해서 인생이 술술 잘 풀릴 리는 없다는 것, 내용과 깊이를 달리 한 고민은 언제나처럼 우리를 압도할 것이라는 것, 누가 모를까. 실제 우리 입에서 흘러나오는 '퇴사 후 인생 스토리'는 결코 꽃길을 걷듯 아름답고 향긋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세 명 다 한 마음으로 동의한 건 있었다. 퇴사 후 이거 하난 좋아졌다. 뭐? 건강!
얼마 전에 위내시경을 했는데 아기 위처럼 깨끗하더라는 친구, 예전엔 하루에도 몇 번씩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는데 이제 그런 증상이 말끔히 사라졌다는 친구, 한 달에 몇 번씩 피부과에 돈을 때려붓던 친구(나)는 하나같이 들떠 이야기를 했다. 돈 좀 못 벌면 어떠냐, 적게 벌면 적게 쓰면 된다, 건강이 최고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
음, 그런데 이를 어쩌지. 집에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 같았다. 본의 아니게. 분위기에 취해. 속속들이 따지고 보면 사실 내 건강은 좋아진 면도 있고 나빠진 면도 있다. 피부과에는 더는 다니지 않게 됐지만 올해 내가 찾은 병원만 해도 거기랑 거기랑 또 거기가 있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고 일해야 했던 그때 얻은 병이 두 세개였다면, 내 의지대로 일어나고 일할 수 있는 지금 역시 두 세개의 병을 달고 산다는 사실. 나는 이 사실을 완전히 잊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던 것이다.
행동반경이 방, 거실, 부엌에 한정된 나날이 마음만 먹으면 일주일넘게 반복될 수 있는 생활 패턴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찾아오는 질환엔 뭐가 있을까. 비타민 D 부족에 의한 구루병? 근력 약화? 기력 약화? 가뜩이나 낯을 가리는데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면 더 낯을 가리게 되는 현상? 문득 말하기 능력이 퇴화된 것 같다는 기분? 우울감? 여기에 더해 몸과 마음의 질환이 발현되는 횟수가 늘수록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인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세상에 대한 비관? 다 맞는 거 같다. 나는 이 모든 걸 두루두루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니까. 그러니까 최근 몇 년 내 몸과 마음은 총체적으로 문제였는데..., 며칠 전엔 더더군다나 최악의 상태를 맞게 됐다.
며칠 전 점심 무렵, 갑자기 허리가 아파왔다. 앉았다가 일어나거나 일어났다가 앉는 등 자세가 바뀔 때마다 통증이 왔다. 잘 때는 몸을 뒤척일 수 없었고, 다음 날 증상은 더 심각해졌으며, 어젠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의사의 소견은 이랬다. '심각하진 않지만 마지막 디스크가 탄력을 잃었어요. 다 나으면 운동하세요. 근력 운동이 필수입니다.' 의사의 말을 들은 내 속마음은? 내 이럴 줄 알았지!
회사에 다닐 땐 어찌 됐건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해야 했고, 퇴근하면 집으로 와야 했다(어찌 됐건, 움직여야 했다). 회사 내에서도 동료와 이야기를 하려면 책상을 건너 스무 발자국은 걸어가야 했고, 윗층에 있는 동료에게 가려면 계단이라도 이용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곳이라고 해봐야 침대 옆 두 발짝 옆에 있는 책상이다. 그러니까 원하기만 하면 하루에 삼십 분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인 건데,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반복된 끝에, '누워있는 나'가 있다.
내 의지대로 살아도 되니 더없이 편안한 일상이라 할 수 있지만, 슬프게도 내 의지가 늘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를 이끌지 않는다는 데 비극은 따른다. 대체로 가장 쓸쓸한 비극은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 같다.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했다면, 내가 조금만 더 활동적인 사람이었다면, 내가 조금만 더 무라카미 하루키를 닮았더라면,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달리기를 했더라면, 나는 지금 침대에 누워 있지 않을 텐데. 결국 내가 내 몸을 이렇게 만들고 말았다. 아이구, 허리야.
허리 통증을 느끼며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누워 글을 쓰고 있자니 나에게 닥친 이 비극이 더 쓸쓸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이 기분에서 탈피하고자 나는 어렵사리 두 손으로 왼쪽 다리를 들어 침대에서 내리고, 오른쪽 다리도 내려 바로 옆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꺼내왔다. 허리 통증이 시작되고부터 죽 머릿속을 맴돌던 책인데, 이참에 밑줄 친 부분만 다시 읽어볼 생각이었다. 제목은 <지적 생활의 즐거움>. 지은이는 필립 길버트 해머튼.
지은이 소개는 이렇게 시작된다. "'지적 생활'이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빅토리아 시대의 지성인. 귀족 출신으로서 쉽게 얻을 수 있었던 부와 명예를 뒤로 하고, 평생 사상표현의 자유를 추구해왔다." '지적 생활'이란 말도 처음 만든 사람이 있구나 싶은 자기소개인데, 이 말을 처음 만든 사람답게 저자는 책에서 지성은 우리의 본성이므로 본성을 억누르지 말고 즐거운 지적 생활에 너도나도 참여해보자 말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책은 시작하자마자 우리의 지성을 자극하는 대신 먼저 우리의 건강을 염려한다. 정신 운동엔 몸 운동이 필수라면서.
"생각을 하고, 뭔가를 머릿속으로 창조한다고 해서 몸이 병들 리 없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다 쓰러지고, 공부를 하다가 코피를 쏟고, 시를 쓰다 책상에 엎어져 심장마비에 걸리는 이유는 운동부족 때문이며, 즐거움이 결여된 단조로운 생활에 질려버렸기 때문이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폭식을 감행하거나, 자기 흥에 취해 시 한 편 쓰고 폭음한 탓입니다. 혹은 추운 방에서 고통을 참고 있는 육체를 자극 삼아 그 감정을 무리하게 쏟아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지적 생활을 한답시고 방안에만 틀어박혀서는 결국 건강을 망치고 만 (나 같은) 사람들이 각성할만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그 유명한 시인 워즈워스도 "산책 도중에 시를 쓴 것으로 유명"한데 당신은 무슨 대단한 시를(글을) 쓴답시고 산책도 안 하는 거냐고 묻고, 어느 유명한 기자가 "좋은 기사를 쓰는 것보다 건강한 기자의 몸을 갖추는 게 훨씬 어렵고 힘든 과정임을 알게 되"어 기차가 아닌 말을 타고 다녔다면서 우리를 차 밖으로 내몰며, 낭만주의 작가 조르주 상드는 연재소설을 쓰는 와중에도 낮 시간을 쪼개 몇 시간이고 자연을 만끽했다는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낸다.
"그녀는 가장 따사로운 시간에 밖으로 나가 자연을 감상하고, 시골 장터를 구경하면서 머리를 식히고, 육체를 단련했습니다. 낮 동안의 이 짧은 운동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상드는 남들이 술 마시고, 친구들과 만나 파티를 즐기는 저녁 시간에 홀로 서재에 틀어박혀 집중적으로 일했습니다. 아마도 대다수의 작가는 상드와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평소 하던 운동을 그만두고 일에 집중했겠지만, 오히려 상드는 지적 노동이 시작됨과 동시에 몸을 단련시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한층 더 몸 상태가 건강하게 유지되어야 했기에 바쁜 시간을 쪼개 개인적인 시간을 만들고, 그 시간에 다른 모든 활동과 만남을 포기한 채 육체를 가다듬은 것입니다."
햇빛 따사로운 날 거리로 나가 이 나무 저 나무 바라보기도 하고, 오늘은 뭐 살 게 있나 시장 구경에 나섰던 조르주 상드의 오후 일과를 상상해보니 정말이지 조르주 상드는 다른 병은 몰라도 허리 병으로는 고생하진 않았을 것 같다. 게으르고 바보 같은 나는 결국 내 몸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지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허리가 다 나으면 이번에는 꼭 열심히 운동을 해보자고. 미세먼지 때문에 산책하지 못하겠다면 집에서 스트레칭이라도 해보자고. 어깨, 팔, 허리, 허벅지, 종아리 근육도 단련해보자고. 죽치고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는 그 자체로 건강을 해치는 행위라는 걸 명심하고 또 명심하자고. 계속 글을 쓰고 싶으면 계속 움직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