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에세이 두 권을 이틀에 걸쳐 연달아 읽었다. 두 책 다 작가들이 몇 년에 걸쳐 잡지나 매체 이곳 저곳에 실었던 글을 엮은 책이었다. 그렇다보니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따로 있지 않았는데, 소재 하나는 분명했다. 바로, 책 속 화자인 '나'였다. 모든 책은 '나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책마다 그 정도는 다르다. 그래서 어떤 책을 읽으면 '그것에 대해 조금 알게 된 것 같아' 하는 생각이 드는 반면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사람에 대해 조금 알게 된 것 같아'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번에 읽은 두 책은 후자에 해당했다. 특히 두 번째 읽은 책 B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저자 자신이 솔직하게 드러났다.
글에서 나를 얼마만큼 드러내야 할지는 글을 쓸 때 마다 고민이 된다. 나를 드러내는 것에도 기술이 필요하겠지만, 기술 이전에 '어디까지'여야하는지가 고민인 것이다. 작년에 정여울 작가 북토크에 다녀왔는데, 그때 그녀는 말했다. 글에서 나를 더 드러낼수록 독자들이 더 많이 공감을 해줬다고. 그래서 글을 쓸 때면 가급적 나를 더 드러내려 한다는 게 정여울 작가의 말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녀처럼 책을 많이 내고 또 글을 많이 쓰는 작가들도 자기를 얼마만큼 드러내야 할지 여전히 고민을 하고 있구나, 하고.
얼마 전에 읽은 김중혁 소설가의 책 <무엇이든 쓰게 된다>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실려 있었다. 소설가는 말했다.
"분노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싶은 것도 나의 마음이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그걸 다듬고 싶은 것도 나의 마음이다. 분노를 가감없이 드러낸다면, 솔직하다면, 무조건 좋은 글이 되는 것일까. 아니, 너무 많이 다듬게 되면 내 생각을 정확히 전달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끊임없는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해야 한다."
아마도 내가 이틀간 읽은 두 책도 끊임없는 질문에 각기 대답을 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실제, 책 B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과연 나의 사생활을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고민한 끝에 용기를 내면서 글을 썼다고 말했다. 저자가 용기를 낸 결과는 매우 만족스런 보답을 받은 듯했다. 책에 생생하게 드러난 저자의 경험과 생각들은 많은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나는 언젠가 어느 편집자가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스트로 이 저자를 꼽은 걸 본 적도 있다. 솔직함, 그리고 그에 필요한 용기. 이 두 가지가 에세이스트의 미덕인 것은 분명 맞다.
책 A와 B를 읽으며 그래서 고민이 더 깊어졌다. 자꾸 나와 그들을 비교하게 됐다. 이 저자들은 이런 것까지 말하는데 나도 이런 것까지 말해야 하나. 이 저자들은 자기 인생에선 이런 일도 일어났었다고까지 말했는데 나도 그런 일을 찾아서 말해야 하나. 이 저자들은 이런 감정까지 털어 놓았는데 나도 마음 속 깊이 감춰 두었던 그 감정을 꺼내 놓아야 하나. 그래야 공감받을 수 있을까. 그래야 사랑받는 에세이스트가 되는 걸까.
고민이 이어지던 끝에 나는 에세이 C를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흘러가는 글에 흡인력이 있었다. C의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충분히 다듬은 끝에 정돈된 문장으로 옮겨 적고 있었다. 나는 C가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가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인지는 알 수 있었다. 책 C는 책 A와 B에 비해 많은 호응을 받은 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책 C를 읽을 때 더 편안함을 느꼈고 더 즐거웠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덮으며 그간 해오던 고민을 정리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 솔직해야 하고, 무엇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는, 사람마다 달리 판단하면 될 일일 것이었다. 어떤 책이 읽는 사람이 놀랄 정도로 솔직한 내용을 털어 놓아 호응을 얻었다고 해서 나 역시 따라할 필요는 없는 것이기도 했다. 에세이스트에게 솔직함과 용기는 필요하지만, 분명 나에게 맞는 솔직함과 용기가 있을 테니까. 그들처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처럼 말하기. 책 A도, 책 B도, 책 C도 모두 자기처럼 말한 결과일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