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얼>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세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혼자만의 의식'. 리추얼(ritual)에는 '종교상의 의식 절차', 또는 '항상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이라는 뜻이 있는데, 부제에서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듯 이 책 제목 '리추얼'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매일마다 치르는 의식, 그러니까 일상의 의식이란 뜻이다.
예전에 한 번 읽은 책인데 요 며칠 계속 떠오르는 통에 다시 펼쳐봤다. 나 역시 나만의 작은 의식을 치르며 매일을 보내고 있는데, 그 하루가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터라 짜증이 머리끝까지 났기 때문이다. 지루함과 답답함의 이중고. 그래서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도 싶지만, 떠나고 싶을 때마다 매번 어찌 떠날까. 상황이 이러할지니 책에 나오는 '그들'이 (나처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들여다본다면 다시금 지금 이 곳에 발을 단단히 디디고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은 '그들', 그러니까 작가를 주축으로 한 예술가들의 매일의 의식(daily ritual)을 다루고 있다. 예술가들은 언제 일어나, 언제 밥을 먹고, 언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며, 언제 잘까. 책에 나온 예술가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지루하게 반복되는 의식 속으로 자신의 하루를 밀어 넣고 있었다. 마치 핑계란 내 사전에 없다는 듯이 그들은 거의 무의식적인 행동 패턴을 따르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들 역시 끊임없는 작업에 질려 시시때때로 일탈을 꿈꾸었겠지만(분명 꾸었을 것이다!), 그보단 내일도 오늘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시간만큼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몇 몇의 하루 일과는 이랬다.
먼저, 토마스 만이다. 그는 아침 8시에 잠에서 깼다. 침대에서 나오자마자 아내와 커피를 마셨고 이어 목욕을 했다. 그러고는 8시 30분에 아내와 아침을 먹고 나서 정각 9시가 되면 서재로 들어가 12시가 될 때까지 "엄청난 압박"을 받아가며 일했다. 그가 서재에 있을 땐 그 어떤 방해도 용납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침 9시부터 정오 사이에는 "아이들도 쥐 죽은 듯 지내야 했다."
찰스 디킨스도 비슷했다. 그는 아침 7시에 일어나 8시에 아침을 먹었고, 9시에 서재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토마스 만보다 두 시간을 더 일해 오후 2시까지 글을 썼다. 그는 일을 할 때 그 어떤 소음도 허락하지 않았기에 그의 서재엔 덧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디킨스의 장남 말에 따르면 "시청 공무원도 아버지보다는 규칙적이거나 꼼꼼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일상은 조금 더 세분화되어 있었다. 그는 우선 앞의 두 사람과는 달리 밤에 일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저녁 6시에 저녁을 먹고 우선 잠을 잤다. 잠을 자다가 밤 10시에 일어나 일을 시작해 내리 7시간을 일했다. 아침 8시에 1시간 30분을 자고 일어나 9시 30분부터 또 4시간 일했다. 발자크는 이런 생활 패턴이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일을 하다 죽든 다른 짓을 하다 죽든 나에게는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마크 트웨인는 아침을 푸짐하고 먹고 서재로 들어가 오후 5시까지 죽은 듯이 일했고, 톨스토이 역시 아침 9시에 일어나 삶은 달 걀 두 개를 먹은 뒤 오후 5시까지 일을 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아침 10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1시까지 했다. 오후 시간엔 친구를 만나는 등 즐기다가 다시 5시부터 9시까지 일했다. 늘 서서 글을 쓰던 헤밍웨이는 햇살을 받으며 아침 5시 30분쯤 눈을 뜨고는 정오까지 일을 했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일을 그만뒀는데 정오 이후의 시간 동안 그는 "다음 날 다시 글을 쓸 때까지 살아남으려" 노력했다.
어떤 작가들은 자기만의 리추얼을 찾기 위해 시간을 이리저리 옮겨보기도 했다. 실비아 플러스는 결국 새벽 5시에 일어나 일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헨리 밀러는 오후에도 써보고 새벽에도 써보고 하다가 결국 아침에 정신 바짝 차리고 두세 시간만 일해도 충분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는 "창조적인 리듬을 만들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시간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니 모리슨은 원래는 틈틈이 글을 쓰는 패턴이었다가 저녁, 아침 시간을 거쳐 나중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작업을 했다. 모리슨은 새벽에 일어날 때마다 "햇살이 창문에 스며드는 걸 지켜"봤다.
이렇듯 작가들의 하루 일과를 훔쳐보고 있다 보면 내 안의 이중고는 어느새 기세가 꺾인다. 지루해서, 답답해서 힘들어하는 대신 나의 하루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음이 된다. 흔히들 작가는 고독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작가들이 견뎌내야 할 건 고독보다는 그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재미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내 하루도 단순하다. 글을 몇 시간 쓰고 나서는 나머지 시간엔 주로 책을 읽거나 이러저러한 취미생활을 하거나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며 보낸다. 요즘엔 글을 쓰기 가장 좋은 시간을 찾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원래는 아침 10시에 글을 쓰기 시작해 1시쯤 점심을 먹고 오후 네다섯 시까지 글을 쓰곤 했다. 그런데 요즘엔 9시에 글을 쓰기 시작해 12시에 끝내는 식으로 바뀌었다. 글감이 없어도 9시부터 12시까지의 오전 시간은 어찌 됐건 글을 쓰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있다.
9시부터 12시까지로 시간을 정한 건, 이때가 가장 글이 잘 써지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12시가 넘으면 머리가 오전만큼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집중력도 약간 떨어지는 것 같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12시 이후 시간엔 마냥 놀고 있는 건 아니다. 역시나 글을 쓰려 노력한다. 다만, 아침보다 조금은 느슨한 상태로.
이렇게 글 씁네, 수정합네 하며 네시까지 책상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이 되면 이런 생각을 한다. "뭔가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한 것 같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역시 아무 것도 안 하진 않았다. 비록 완성은 못했을지라도 내가 몇 시간동안 책상에 앉아 있었던 건 하늘도 알고 우주도 아는 사실이니까. 이렇듯 나의 저녁 시간은 오늘 하루를 뒤돌아보고 반성할 건 반성하면서 끝내는 다독이는 것으로 끝이 난다. 거의 매일, 이런 식으로 일을 하고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