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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Jul 18. 2019

[드로잉 18일] 내가 그리고 싶은 건

지난 주말, 나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일주일 전부터 매일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인은 무언가를 매일 하는 일은 정말 멋진 일이라고 긍정적인 리액션을 해준 후 내게 물었다. 뭘 그리고 싶은 건데요?


"아, 뭘 그리고 싶으냐면요."


나는 마치 준비라도 해뒀다는 듯,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해주길 기다리기도 했다는 듯, 지인의 질문에 다다다다 대답을 했다.


"응, 그러니까요. 나는 당신을 그리고 싶어요.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당신이요.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당신이요. 어깨까지 닿은 머리, 김구 선생 스타일의 안경, 파란 체크무늬 난방, 카키색 통 큰 바지, 흰색 운동화, 에코 백을 든 당신을요. 가방에서 스케치북을 꺼내 연필로 샤샤샤샥 이런 모습의 당신을 그리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내 말은요. 그냥 내가 보고 있는 사람을 그리고 싶다는 거예요.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앞에 앉은 사람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해봐요. 이때 망설일 필요없이 당당히 스케치북을 꺼내 그림을 그리는 거죠. 그리고 이 그림을 바로 선물로 주는 거예요. 어때요? 5분? 아니면 10분? 짧은 시간 안에 마치 마술을 부리듯 그림을 그려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지 않아요?"


내 대답에 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었다. 언젠가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좋을 거라는 말도 해주었다. 지인의 말에 나 왠지 부끄러워 같이 웃었는데, 그냥, 내가 너무 애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미래를 꿈꾸며 흥분하는 꼴이란!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그래도 아주 많이 부끄러운 건 아니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 그 일을 할 때만큼은 애처럼 되는 사람. 나는 되도록 죽을 때까지 이런 사람으로 남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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