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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Jul 27. 2019

[드로잉 27일] 오늘도 무사히

기록을 시작하고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언제 그림을 그릴까 가늠해본다. 바쁘지 않은 일상이라 시간은 많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나름 오늘 하루의 투두 리스트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지내기 때문에, 가늠을 해둬야 마음이 편하다. 시간을 정하면 되도록 그 시간에 그림을 그리려 노력한다. 또 되도록 저녁 이전에 그리려 노력한다. 저녁 이후엔 머리가 멍청해져서 대체로 뭐든 잘 못해서다.


그림 그린다 해서 바로 기록을 하진 못한다. 매일 그림을 그릴 때마다 아이디어가 샘솟고 그러는 건 아니니까. 운이 좋게 그림을 그리면서 오늘 쓸 글의 밑그림까지 그려진다면 정말 좋겠지만, 요즘엔 특히 그림을 그렸다 해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오늘도 무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라고만 쓸 수 없기에 시간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시간을 보내며 틈틈이 뭘 쓸지 고민하다 보면 결국 그 하루가 끝나기 전에 뭐라도 쓰게 된다(아직까진 그랬다.)


그림을 그리고나서 두, 세 시간쯤 지나 글을 쓴다. 그림에서 연상된 그 무엇이라도 소재로 삼을 수 으므로, 나름 자유롭게 소재를 떠올린다. 그래도 그림이라는 큰 틀에선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러다 정말이지 아무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으면 엄마 찬스를 이용한다. 엄마가 그림 그리는 이야기도 그림 이야기는 맞으니까.


오늘처럼 약속이 잡힌 날엔 나갈 준비를 하기 전에 그림을 그려둔다.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고 또 난 밤엔 바보가 되므로 아무래도 아침에 그려두는 게 좋다. 글도 자리를 옮가며 틈틈이 써둔다. 지금은 지하철 안에서 전투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지하철 안에서 만큼은 최대한 스마트폰 위로 고개를 떨구는  행위를 안 하려 하지만(지하철에서 스마트폰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은 벌써 20분째 스마트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굴고 있다. 덕분에 오늘치 글도 거의 완성돼 간다.


만화책 따라 그리는 데 흥미가 떨어져서 며칠 전부터 영화나 드라마 장면을 그리고 있다. 오늘은 한 면을 가득 채우는 무지 큰 얼굴을 그리려다가 실패했다. 인물이 짓는 슬픈 표정을 그림으로 옮겨보려 했으나, 전혀 옮겨지지 않았다. 그 그림엔 '실패'라고 적어놓고 다시 다른 그림을 그렸다. 두 인물이 카페에 앉아 있는 모습. 여자가 노트북을 하다가 머리를 굴리며 뭔가 아이디어를 내고 있고, 남자는 몸을 여자 쪽으로 조금 기울인 채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다. 카페 세팅이 참 예쁘게 돼  있었는데 그걸 십 분의 일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그림은 실패는 아니라는 생각에 오늘의 날짜 '7/27'을 적어 넣었다. 아직 도착역까지 몇 정거장 남았다. 오늘도 무사히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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