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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Jul 28. 2019

[쓰기 27일] 낭만적 빗소리의 종말

[쓰기 27일] 




네덜란드에 처음 도착해서 살았던 집은 친구의 친구가 한 달간 여행으로 집을 비운다고 해서 머물렀던 곳이었다. 오래된 아파트의 맨 위층으로, 숫자는 2로 시작하지만 바닥을 1층이라 부르지 않고 0층(ground floor)이라 부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3층이었던 곳. 다른 오래된 집들과 다르지 않게, 높고 좁은 계단을 한참을 올라가야 하던 꼭대기층 집이었다. 방 한쪽에는 다락방처럼 낮게 지붕이 기울어져 있고 작은 천창이 나 있어 하늘을 볼 수 있던 구조의 집.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은 그 창문 근처에 항상 비둘기들이 앉아 구구구구국 대는 바람에 약간 무서웠다. 환기를 하려고 창문을 열어 두면 비둘기가 내 옆에 있는 것 같은 서라운드 사운드 효과가 어마어마해서. 


바깥에 나가야 할 때 비가 오는 건 싫었지만, 집에 있을 때 오는 비는 좋았다. 창문과 지붕을 통해서 비가 오는 소리가 너무 선명하게 들려서. 토독토도독 하면 작고 가벼운 비, 툭 투둑 투두두두둑 하기 시작하면 쏟아지는 장대비다. 침대에 누워 가만 빗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행복해진 기분이었다. 가끔 한국에 전화를 걸면 친구들이 빗소리와 새소리를 듣고 부러워하곤 했다. 우와, 진짜 옆에서 저런 소리가 나? 하고. 



지금 사는 집은 진짜 2층이라 우리 집 위로도 한 층이 더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지붕의 빗소리가 들려오지는 않지만, 여전히 비가 올 때 창문 옆에 있는 침대에 앉아 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잔잔한 기분이 된다. 그동안은 익숙해져서 비가 와도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폭염을 끝내줄 단비 내리는 소리가 그렇게 청명하고 좋을 수가 없다. 오랜만이다. 투두둑 툭 툭. 역시 결핍이 있어야 채워짐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건가. 


짧은 단상에 어울리지 않는 거창한 단어 '종말'은 뜬금없이 생각나서 머리에 맴돈다. 어디 책이나 영화 같은 곳에서 봤나 싶다. 그리하야 오늘의 제목은, (의식의 흐름대로) 낭만적 빗소리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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