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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너블 티처조 Apr 09. 2020

026 배드민턴 치다가 영어강사가 돼버렸다 [1부]

2009년 2월 내가 영어로 말할 수 있는 말은 '아임 프롬 코리아'가 전부였다. 조기 영어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어학연수를 다녀오지도 않았다. 남들처럼 디즈니 영화에 매료되지도 않았고 팝송 가사를 달달 외우지도 않았다. 영어에 관해서라면 순수 그 자체였다. 내 영어는 순수했다.



2009년 7월 휴학을 신청했다. 수업 시간에 영어를 접할 수 없으니 쉴 수밖에 없었다. 24시간 내내 영어로 듣고 영어로 말하고 싶었다. 토익 학원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듣기와 말하기 실력을 늘려주는 곳을 찾아 헤맸다. 강남역 7번 출구에 있는 이익훈 어학원 수업을 등록했다. 새벽 6시 20분 수업이었다. 수강생은 많아야 5명일 거라 예상했다.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 수업은 200명이 동시에 듣고 있었다.



골프에 중독된 사람은 우산만 들면 스윙 자세를 잡는다. 당구에 빠진 사람은 버스에 사람이 탈 때마다 쓰리쿠션으로 그 사람을 출구로 보낸다. 나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영어에 홀린 나는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영어를 보기 위해 천장에 영어 문구를 붙였다. 설거지와 빨래를 할 때는 귀에 이어폰을 꽂아 영어 뉴스가 흐르게 했다. 스마트폰 언어 설정도 영어로 바꾸고 노트북 언어 설정도 영어로 바꿨다. 편의점에 가는 길에는 영어로 중얼거렸고 운동장을 산책하는 길에는 영어로 리듬을 탔다. 2009년 7월부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 4월까지, 이 모든 습관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삶이 곧 영어다.



이익훈 어학원 소속 스타 강사님이 자기 학원을 차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평범한 영어 수업이 아닌 영어 강사를 양성하는 수업이었다. 당시 20대 초반 휴학생이었던 내게 끌리는 수업은 아니었다. 나는 배드민턴을 전공한 체대생이었고 영어강사의 꿈은 없었다. 하지만 영어를 잘하고 싶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등록했다. 정원은 100명이었다. 100명 중 내 나이는 뒤에서 3번째였다. 내 밑에 고등학생 2명이 있었고 나는 그다음이었다. 하루 12시간 이상을 학원에 머물렀다. 영어도 배우고 티칭도 배웠다. 한두 명씩 출강을 나갔다. 2009년 12월 겨울, 8명이 동시에 시강을 봤는데 나만 합격했다. 그달에 중앙대학교 서울 흑석캠퍼스로 청취 수업 출강을 나갔다.



첫 달 수강생은 5명이었다. 다음 달에 10명으로 늘었고 다다음 달에는 20명으로 늘었다. 학생 한 명 한 명 이름을 외웠고 편지를 써줬다. 결정적으로 햄버거도 사줬다. 수강생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깨어있는 시간 내내 수업 준비를 했다. 새벽 7시 30분 수업이었는데 늘 6시 30분까지 강의실에 도착했다. 6개월간 그랬다. 30분 동안 가상 수업을 했고 남은 20분 동안 자신에게 셀프 피드백을 줬다. 남은 10분 동안 학생을 맞이했다. 영어강사 데뷔 6개월을 마치고 본원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수강생 인원은 50명이었다.



2011년 1월 강남 무대에서 영어 강의를 시작했다. 적게는 20명 많게는 200명이 듣는 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나를 보고 오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그게 팩트다. 95%는 원장님 책과 원장님 프로그램을 보고 오는 학생이었다. 그걸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나는 남 밑에서 일하면서도 나를 위해서 일할 수 있다고 믿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나를 위해 새벽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했다. 하루에 6시를 두 번 겪으면서 일했다. 그러면서 실력도 늘고 인기도 늘었다. 음료수도 받고 김치도 받았다. 나를 보고 수업을 듣는 학생이 20%가 생겼다. 그렇게 풀타임과 파트타임을 오가며 2017년까지 강의를 이어갔다. 내 영어 강의 실력 8할은 이곳에서 완성됐다. 박코치 어학원이다. 연락은 하지 않지만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는다.



박코치 어학원 수업 장면


https://learnabl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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