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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너블 티처조 Apr 10. 2020

027 국내파 10년차 영어강사, 호주 워홀...?

2017년 11월 1일, 10년 차 영어강사인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들고 호주로 떠났다. 호주 대도시인 시드니, 브리즈번, 멜버른, 퍼스 중 멜버른을 선택했다. 시드니는 대도시이고 브리즈번은 휴양지이며 퍼스는 유일하게 서쪽에 위치했다. 대도시와 휴양지 중간쯤 자리한 멜버른을 골랐다. 교육과 예술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도시이기도 했다.



호주 멜버른 도클랜드 야경



처음에는 영어를 가르칠 목적으로 떠나진 않았다. 명색이 영어강사인데 영어권 국가에 가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 좀 갑갑했다. 영화 속 영어와 실생활 영어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했다. 또한 학원에는 유학을 위해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이 많았는데 그들을 도와줄 경험을 얻고 싶기도 했다. 결국 나를 위해 학생을 위해 워홀을 결정했다. 강사 시선으로 호주를 관찰했고 학생 입장에서 호주를 체험했다.



사방이 온통 영어였다. 엘리베이터 버튼도 영어였고 공원 안내판도 영어였다. 도서관에 비치된 책도 영어였고 도서관 사서 입에서 나오는 단어도 영어였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 입에서 나온 말도 영어였고 침대에 누워 한밤중에 꾼 꿈도 영어였다. 이 영어로 된 세계를 내 눈에만 담기엔 아쉬웠다. 한국으로 가져가 학생과 공유하고 싶었다. 스마트폰을 켜고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약 1,000장을 모았다.





첫 두 달 동안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일부러 피했다. 영어로 서빙하는 고깃집에도 지원했고 영어로 응대하는 가라오케에도 지원했다. 한국인 사장과 면접을 봤는데 영어강사 경력이 부담스럽다며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했다. 호주 매니저와 인터뷰를 봤는데 서비스 업종 경력이 없다며 다른 곳을 지원하라고 했다. 순식간에 낙동강 오리알 영어강사로 전락했다. 밑져야 본전 격으로 멜버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영어를 가르친다는 글을 올렸다. 물론 무료였다. 무료 특강을 30회 진행한 뒤 개인 레슨 신청을 받았다. 무료 특강에서 만난 학생은 300명이 넘었고 개인 레슨을 통해 영어를 가르친 학생은 50명이 넘었다.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도서관 무료 특강



영어권 국가에서 한국인에게 영어를 배우려는 학생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 나이대도 다양했고 직업군도 다양했다. 10대 후반 부모님 지원을 받고 유학 온 학생부터, 50대 초반 두 번째 인생을 설계하는 마트 직원까지. 20대 초반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탈탈 털어 로드 트립을 하는 남성부터, 30대 초반 한국 회사 생활에 염증을 느껴 워홀 막차를 탄 여성까지. 그들 모두 영어가 절실했지만 영어를 잘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그들을 판단했다. 영어권 국가에 오면서 영어 한마디 익히지 않고 오다니! 하지만 개인사를 듣고 나서 판단을 거두었다. 오히려 영어 강사란 일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돕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오전에는 멜버른 도서관 다섯 군데를 전전하며 수업 자료를 만들었다. 오후에는 도심 속 대학교 캠퍼스 편의시설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휴일에는 시티를 벗어나 도시 외곽을 여행하며 영어 자료를 채집했다. 매일 만들고 가끔 가르치고 자주 모았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입고 있던 영어강사 옷을 벗어 버렸다. 다양한 학생과 호흡했고 다양한 영어를 마주했다. 2018년 11월 1일, 정확히 365일간 호주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출국했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입국했다.



호주 멜버른 도클랜드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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