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바라보는 시선을 180도 바꿔준 인생 영어 3문장
내 주변에는 영어 고수들이 많다. 함께 수업한 예전 학생들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지인들도 있다. 모두 영어를 우리말만큼 편하게 구사하는 실력자들이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들은 말과 글에서 어려운 영어 단어를 쓰지 않는다. 아예 쓰지 않는다기보다 '필요할 때만' 쓴다. 그 단어를 대체할 표현이 마땅치 않거나, 그런 맥락에서는 반드시 써야 하는 어려운 단어가 있을 때만 쓴다.
하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쉬운 영어'를 구사한다. 쉽게 말하고 쉽게 쓰며, 듣는 이도 그들의 말을 쉽게 이해한다. 'English is all about communication'을 매 순간 대화에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도 처음에는 그랬을까? 어려운 어휘의 유혹에 빠진 적이 없을까?
내가 관찰한 결과, 해외에서 어릴 적부터 공부한 교포나 유학생을 제외하고는 다들 어려운 단어에 열광했던 경험이 있었다. 영어 뉴스를 보며 시사 영어를 익히고, 영자 신문을 보며 고급 어휘를 익힐 때, 그때 영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홀리게 된다.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유는, 나도 그런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 잡지를 읽으며 감동했고 타임즈를 읽으며 콧대를 높였다. 남이 모르는 영어를 내가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했던 적도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들과 나는 모두 '쉬운 영어'로 돌아왔다.
쉬운 영어는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쉬운 영어는 '쉬운'이란 탈을 쓴 어려운 영어다. 막상 눈으로는 쉽게 이해되는데, 내가 그 말을 실제로 쓰려고 하면 떠오르지 않는다. 무작정 외워도 안 되고 무턱대고 베껴 써도 안 된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어려운 단어에 기대고 싶어진다. 무거운 단어로 도망가고 싶어진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어떤 영어가 '쉬운 영어'일까?
쉬운 단어를 폭발적으로 경험한 '어느 하루'를 소개한다.
호주 멜버른에서 머무르던 어느 날. 스리랑카 친구와 하이킹을 갔다. 시티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큼직한 산이었다. 초입에 들어가자마자 식수대가 보였다. 목을 축이고 본격 산행에 돌입했다. 2시간 정도 산을 타던 중 다른 식수대를 목격했다. 그 앞에 작은 표지판이 보였다. 빨간색 글씨로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다.
① This water is not drinkable.
아, 여기 물은 마실 수 없는 물이구나. 원어민은 마실 수 없는 물을 'drinkable'이란 단어로 쉽게 표현한다. 눈으로 보면 쉽지만 내가 그 상황에서 저렇게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고 물어보면,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할 것 같다. 내 영어 내공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결코 입에 붙어있는 말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말이 아니었다.
산행을 마치고 근처 로컬 마켓에 장을 보러 갔다. 숙소에 과일이 떨어져 집에 들어가는 길에 들러 사 가려고 했다. 시장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넘었다. 멜버른에 있는 로컬 카페와 시장은 이른 새벽부터 문을 열어 오후 4시면 문을 닫는다. 도착하니 과일이 몇 개 남지 않았다. 일부 과일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내일 아침만 해결하면 되니, 상태가 안 좋은 과일을 손으로 집으며, 그나마 괜찮을 과일을 고르던 순간, 가게 주인이 말을 툭 던졌다.
② They're not sellable.
아, 이 과일은 판매하지 않는구나. 원어민은 판다/안 판다는 말을 'sellable'로 쉽게 표현한다. 앞에 'not'만 붙이면 땡이다. 이런저런 설명 없이 그 과일을 판매하지 않으니 다른 과일을 보라고 전한 메시지다. 조금씩 '-able'에 감이 생기면서 쉽게 표현하는 영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짧고 간단하고 명확한 영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긴 산행 때문에 발바닥에 피로가 몰려왔다. 하이킹 가방은 어깨를 짓누른다. 양손에는 과일과 각종 음식들이 한가득이다. 시티 중심을 통과하던 중 기타 하나를 들고 '버스킹'을 하는 청년을 발견했다. 발바닥도 쑤시고 짐도 무거워서 바닥에 털썩 앉아 연주를 구경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연주 실력이었다.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기타 가방에 넣어버렸다. 이제 마지막 곡을 연주한다길래 기왕 들은 거 마지막까지 듣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지막 공연은 관객이 원하는 곡을 들려준다고 했다. 신청곡을 받았다. 관객 한 명이 손을 들어 큰 소리로 요청했다. 그 청년은 곡 제목을 듣자마자 아이패드로 악보를 검색한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③ That looks doable.
아, 연주할 수 있다는 말이구나. 원어민은 어떤 과제를 '할 수 있다/없다'라고 말할 때 'doable'로 쉽게 표현한다. 한다는 'do'에 할 수 있다는 '-able'을 합쳐 'doable'을 탄생시켰다. 영어는 이렇게 쉬운 단어를 조합해서 얼마든지 다양한 표현을 구사할 수 있다. 이후에도 '-able'를 활용해 수십수백 가지 문장을 조합하는 걸 경험했다. 그때부터 원어민이 쓰는 영어를 꼼꼼하게 관찰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언어습관을 흉내 내며 최대한 쉽게 표현하려는 태도가 생겼다.
영어는 적은 수의 단어를 가지고 '교환'해서 쓰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영어는 누가 더 시사 단어를 많이 알고, 누가 더 고급 어휘를 많이 알고, 누가 더 어려운 구조를 많이 알고 있는지를 묻는 게임이 아니다. 영어는 소통이고, 소통은 상대방이 듣기 편하게 말하는 방식이 핵심이다. 언어는 예술이기 이전에 기술이다. 기술은 누구나 배울 수 있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야 기술이다. 영어를 쉽게 말해보자. 그럼 영어 자체가 쉬워진다.
참고로 러너블(learnable)도 그날의 경험을 통해 탄생했다.
배우다 'learn'과 할 수 있다 'able'을 조합해서, 배울 수 있는 'learnable.'
English is a learnable skill.
이 칼럼을 쓴 러너블 영어강사 티처조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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