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디 Nov 24. 2021

아름다움과 접근성이 공존할 수 있을까?

aesthetics accessibility Paradox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데 있어 아름다움(aesthetics)과 접근성(accessibility)은 오래된 논쟁거리다.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은 접근성이 높아지면 시각적 매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높은 접근성은 정말로 미학을 희생시킬까? 이번 글에서는 크게 다음과 같은 주제들을 다뤄보았다.

과거 해외의 어느 사이트에서 벌어진 아름다움과 접근성에 관한 논쟁 살펴보기

WCAG 2.1  접근성 가이드와 정상 시각에 대한 고민

신한은행의 시니어용 ATM 뉴스와 주 고객인 어머니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음성 파일 있음)

심미적 사용성 효과와 아름다움의 효용성


아름다움과 접근성에 관한 흥미로운 논쟁

과거 접근성과 아름다움에 관한 흥미로운 논쟁이 'uxmovement.com'이라는 해외 사이트에서 벌어진 적이 있다. 한 디자이너가 접근성이 높은 인터페이스는 시각이 불편한 사람 눈에는 좋지만 '정상 시각'인 사람에게는 미학적으로 가혹하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아래 링크에 접속해 하단의 댓글란을 보면 정말 다양한 입장들이 피 튀기는 각축전을 벌인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해당 글에 대한 다양한 반박글이 쓰이며 건강한(?) 논쟁이 벌어진 기억이 난다.


논쟁의 시작이 된 아티클


해당 디자이너의 논쟁적 주장을 쫓기 전에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WCAG) 2.1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는 WC3라는 웹을 위한 표준을 개발하고 장려하는 조직이 장애가 있는 사용자가 웹 콘텐츠를 사용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침 및 성능 기준에 대해 마련해놓은 가이드라인이다. 참고로 접근성 지침은 시력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위해 전경색과 배경색의 명암비를 4.5:1 이상으로 추천하고 있다. 이는 WCAG 대비 검사기 같은 웹 도구를 통해 자신이 만들고 있는 페이지를 손쉽게 측정할 수 있으며 A(최저), AA(중간), AAA(최고) 같은 채점 표를 제공한다. 즉, 내가 만든 페이지가 A등급이라면 접근성에 대해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논쟁의 불씨를 지핀 디자이너의 주장으로 돌아와 보자. 디자이너는 접근성과 아름다움의 문제에서 다음과 같은 균형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글쓴이가 제시한 솔루션 (출처: uxmovement.com)

 

글쓴이에 따르면 세 가지 예시중 가장 왼쪽에 있는 디자인은 적합성 표 기준으로 'AAA'등급이다. 가장 접근성이 좋지만 '정상 시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시각적 매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우측에 있는 디자인은 'A'등급으로 접근성이 좋지는 않지만 정상 시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가장 미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간에 있는 디자인은 'AA'등급으로 접근성도 어느 정도 충족하며 미적이라 다수를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디자이너는 명암비를 줄여 접근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가급적 중간 정도(AA)에 맞춰 디자인을 하자는 것이다. 위 예시만 놓고 봤을 때는 어느 정도 디자이너의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예시로 쓰인 세 이미지가 글쓴이의 주장을 적극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인상을 떨치기는 힘들다. 그리고 이내 다음과 같은 의문점들이 생겼다.

‘정상 시각’의 범주를 어디부터 설정해야 할까?

대다수의 정상 시각인 사람들은 낮은 색상 대비에서  아름다움을 느낄까?

(글쓴이 같은) 디자이너들이 느끼는 아름다움에 편향은 없을까?

WCAG 채점표가 모든 시각적 접근성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정상적인 시각에 관하여

해당 아티클을 읽고 '정상적인 시각'이라는 말에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정상’이라는 단어에는 기준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비정상임을 암시하는 다소 폭력적인 뉘앙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글쓴이가 말하는 정상 시각의 범위란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해당 링크에 의하면 전체 미국인 13%가 시력에 갖가지 장애가 있고, 75%에 해당하는 사람이 안경이나 콘택트렌즈 같은 시력 교정 장치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당장 내 주변에도 시력이 나보다 좋지만 빨간색과 녹색의 구별이 약간 힘든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AAA 등급을 받았지만 색이 화려한 웹 페이지에서 가끔 가독성의 힘듦을 느낀다. 하지만 그 친구의 직업은 놀랍게도 그래픽 디자이너다. 내 경우도 안구에 날파리 같은 게 떠다니는 비문증이 심해 낮에 하늘을 보기가 두렵다. 몸이 피곤한 날은 더 심해져 일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처럼 나와 내 친구도 일상에서 시각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지만 비정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실명처럼 시력에 대한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사람이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정상 범주에서 시력에 관한 갖가지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때문에 '정상 시각'인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접근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글쓴이의 시각에 여러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WCAG 2.1 지침 역시 가장 높은 AAA 등급이 "모든 시각 장애가 있는 사용자를 위한 등급"이 아니라 언어를 인지하는 학습 능력이 떨어지거나 장애가 조합된 형태에 있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쓰여있다. 즉, AAA등급에 맞게 페이지를 디자인하더라도 모든 장애나 어려움에 대한 완벽한 접근성을 마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접근성이란 태생적으로 완벽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한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되고 이는 미적인 측면과는 별개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름다움과 개인적인 취향

글쓴이는 ‘정상 시각’을 가진 사람은 제일 우측 디자인을 가장 아름답다고 여길 것이라 주장한다. 문득 내 주변 사람들은 이 세 가지 디자인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메신저와 문자를 통해 지인 몇 명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질문은 "세 디자인 중 어떤 게 가장 예뻐 보이느냐"였다. 접근성에 대한 부분은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먼저 60대인 엄마(60대 치고 시력이 매우 좋으시다)에게 묻자 가장 왼쪽의 디자인이 제일 좋다고 답하셨다. 이유는 단순했다. 눈에 선명하게 들어와서였다. 사실 엄마는 접근성이 높은 디자인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연령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답을 예측할 수 있었다. 다만 엄마가 말한 선명함이 미학적인 것에 가까운지 접근성에 가까운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이후 통화로 직접 물어보니 엄마의 판단 기준에 두 가치는 이미 복잡하게 섞여 있는 상태 같았다.

    20대 지인 둘(여성)에게 묻자 중간 버전(AA)이 가장 예쁘다고 답했다. 이중 한 분은 미적인 것에 대한 질문이었지만 “사용하기 편할 것 같아 선택했다”라고 답변했다. 40대 형에게 묻자 가장 우측(A등급)이 예쁘다고 답했다.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인데 시각적으로 부드러운 게 좋다는 것이었다.

세 가지 디자인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인 지인들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물어본 건 아니지만 소수의 지인들에게 돌아온 답변만으로도 개개인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지점이 자잘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논쟁이 있었던 아티클 댓글 중에는 가장 왼쪽 디자인(AAA)에서 시각적 매력 또한 가장 크게 느낀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큰 색상 대비가 자신들의 미적 취향을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추측으로 업계 디자이너 동료들에게 물어보면 중간 디자인이 가장 아름답다는 답변이 많이 나올 것 같긴 하다. 나 역시 처음 봤을 때 중간 디자인이 가장 예쁘다고 느꼈다. 그렇게 느낀 이유에 대해 두 가지 정도로 추측해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다년간 매일 접한 Dribbble이나 behance 같은 사이트들이 나의 미적 기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글쓴이도 혹시?). 두 번째는 내가 속했던 팀에 있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의사결정 시 선호할만한 적절한 미적 기준이 내면화돼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서비스를 사용할 실제 사용자는 훈련된 미적 기준(취향)과는 무관할 가능성이 높은데도 말이다.



신한은행 시니어용 ATM에 대한 엄마와의 짧은 대화

논점을 바꿔 신한은행이 국내 금융권 최초로 시니어 고객 맞춤형 ATM 서비스​ 개시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해당 기사를 읽고 접근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 같아 내심 기뻤다.


신한은행이 서비스하는 시니어용 ATM 인터페이스


해당 ATM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기존 대비 70% 수준인 초당 4음절 가량으로 속도를 줄인 느린 말 안내 사용

큰 글씨와 쉬운 금융 용어 사용

더 큰 색상 대비를 통한 가독성 강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는 신한은행의 해당 디자인에 대한 반응이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그런데 문득 젊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 ATM을 직접 사용할 60대 즉, 엄마 세대가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엄마에게 ATM 사진을 보여드리고 궁금한 여러 가지를 직접 전화로 물어보기로 했다.


중복되는 글자 '돈'은 빼면 안 돼?

ATM 사진을 본 엄마에게 처음 돌아온 답변은 디자인은 심플하고 좋은데 왜 '돈'자가 계속 반복되냐는(돈 찾기, 돈 넣기, 돈 보내기) 것이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어차피 돈과 관련된 업무를 ATM에서 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아래 mp3는 엄마랑 해당 주제로 대화한 녹음 파일이다(끝날 때 웃음소리 주의).


과도한 풀어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현재 엄마가 속한 기성세대는 한자에 더 익숙할 수 있다. 엄마는 사진을 처음 보고 ‘돈 넣기’가 조금 헷갈린다고 말했다. 한자 세대인 엄마는 '입금'이나 '출금'이라는 단어에 평생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돈 넣기'가 아무리 시니어를 대상으로 쉽게 풀어쓴 것이라 해도 여기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또 필요하다고 말했다.


엄마는 아이콘보다 글자가 좋다.

문득 엄마 핸드폰에 깔려 있는 쿠팡 앱의 아이콘이 이해가 가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엄마에게 탭 바 아이콘에 대해 물으니 역시나 이해가 잘 안 간다고 답변하셨다. 엄마는 이처럼 디지털 문법이 익숙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어려움이 단순히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심리적 박탈감으로 이어진다고 답했다. 만약 화살표 아이콘을 ‘뒤로 가기’같이 글자 형태로 디자인한다면 훨씬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엄마가 앱에서 제일 어려운 건...

엄마는 프로덕트의 쉬운 UX 이전에 아이콘이나 버튼 같은 디지털 문법 자체가 더 큰 거부감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이는 폰트 크기를 키우고 명시도를 높여 AAA 등급을 받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듯하다. 엄마가 쿠팡이나 배민을 자유롭게 쓰기 위해서는 텍스트+보이스 인터랙션이 섞인 다른 차원의 경험 설계와 함께 기초적인 디지털 문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할 것 같았다.



아름다움이 접근성과 분리되는 개념일까?

엄마의 어려움을 뒤로하고 ‘아름다움과 접근성은 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최초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나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알아본 바로 애초에 아름다움과 접근성은 동등한 레벨이 아니기 때문이다. 레벨이 다른 대립구도는 종종 잘못된 동등성을 만들어낸다.

    두 개념이 공존하는 멋진 예시로 RX바가 있다. 제품 겉면은 기존 프로틴 바들의 복잡한 정보와 커다란 로고 대신 달걀흰자 3개, 아몬드 6개, 캣슈 4개 같이 꼭 필요한 정보로만 디자인되어있다. 이를 통해 RX바는 첨가물이 섞이지 않은 건강한 프로틴 바를 구매하려는 소비자의 니즈와 함께 미학적 성취도 이뤘고, 높은 매출로도 연결될 수 있었다.


꼭 필요한 정보만으로 구성된 RX바


사용자 경험 설계 시 아름다움은 생각보다 사용성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사용자는 인터페이스를 대할 때 심미적인 디자인을 '더 사용하기 쉬운 것'으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1995년 히타치 디자인 센터{Hitachi Design Center}의 연구원 쿠로스 마사키, 카시무라 카오리는 아름다움과 사용성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둘은 실험 참가자 252명에게 26종류로 디자인된 현금 자동입출금기{ATM} 인터페이스를 테스트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에게 각 디자인의 사용성과 미적 매력을 평가하도록 요청했다. 그 결과 시각적 매력이 있는 인터페이스가 곧 높은 사용성으로 연결되는 심리적 패턴이 다수 포착됐다.(예제는 결과의 일부)


출처: 쿠로스와 카시무라의 연구 일부, 1995


이처럼 아름다운 것이 꼭 사용하기 쉬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외형은 사용성에 심리적 영향을 끼친다. 심리학자 앨리스 아이젠은 실험을 통해 시각적으로 행복한 상태에 놓이면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창조적 사고가 촉진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심미적 제품을 보고 문제 해결 능력이 활성화된 사용자가 ‘아 저 제품은 사용하기 쉽겠네’라고 어림짐작하는 것이다.

디자인이 아름다우면 긍정적인 감정 반응이 일어날 뿐 아니라, 인지 능력이 향상되고 사용하기 편하다는 인식이 커진다. 다시 말해 보기 좋은 디자인은 인간의 뇌에 반응을 일으켜 사용성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러한 현상을 심미적 사용성 효과{aesthetic-usability effect}라고 말한다. - "UX/UI의 10가지 심리학 법칙 중"


심리학자 안드레아스 존데레거는 2010년 이와 관련 있는 연구를 진행했다. 60명의 청소년에게 기능은 같지만 시각적 호감도 면에서 차이가 나는 두 종류{A type/B type}의 핸드폰을 사용하게 해 특정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현재 관점에서는 A type의 시각적 매력 역시 떨어지는 편이지만 당시에는 괜찮은 수준임을 감안하자). 측정 결과 실험자 대부분 디자인이 뛰어난 A type 임무 수행의 질이 B에 비해 훨씬 높게 나왔다. 해당 실험을 통해 시각적 매력도는 작업에 드는 총 시간 비용을 줄이며, 설사 사용성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관대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실험에 사용된 2가지 모바일 디자인


지금까지 아름다움과 접근성에 관한 다양한 측면을 탐색해보았다. 글 부제에 패러독스라고 쓴 것처럼 이는 여전히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며, 명확한 답을 제시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님을 밝힌다.



'아름다움과 접근성이 공존할 수 있을까?'(끝)


[참고자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