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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Dec 12. 2022

왜 브랜딩 프로세스가 통하지 않을까?

브랜딩에 관한 자투리 생각들

지난주 회사의 어떤 분께서 브랜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나한테 물어온 적이 있다. 갑자기 받은 질문이었지만 별 고민 없이 다음 두 가지라고 답했다.

차별성과 일관성이 아닐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무 기계적으로 대답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보통의 브랜드는 두 가지 가치 중 하나를 달성하기도 쉽지 않다. 차별성만 있으면 가볍고, 일관성만 있으면 브랜드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차별화된 일관성'이라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브랜드와 디지털 프로덕트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브랜딩, 시간성, 헤리티지

브랜드에 시간이 축척되면 여러모로 브랜딩에 유리하다. 샤넬, 닥터마틴, 리바이스, 코카콜라 같은 브랜드를 떠올리면 오랜 문화와 시간을 뚫고 형성된 헤리티지가 자연스레 느껴진다. 헤리티지는 곧 브랜드의 고유한 정신이자 자산이 된다. MZ 세대가 근본 브랜드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새로운 브랜드나 프로덕트는 시간성 때문에 헤리티지를 구축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애써 브랜딩에 빈티지한 로고나 색감을 입혀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새로운 브랜드들은 어떻게 의미 있는 차별화를 시도할 수 있을까? 실마리를 찾기 위해 변화하는 개인의 기호상을 쫓아보았다.

코카콜라의 브랜드 헤리티지는 병 모양만으로도 표출된다.


내 취향은 자연 발생적일까?

페이스북의 쇠퇴는 추천 친구 목록에 부모님이나 직장 선임이 뜨면서부터 시작된다. 새로운 세대는 이전 세대와 구별되는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본능적으로 원한다. 그리고 이러한 울타리 본능 이면에는 아직 대중화되지 않고 남과 구별되는 것을 선택하고 싶은 감각이 존재한다. 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이러한 감각을 '구별 짓기(La Distinction)'라는 자신의 대표작에서 오래전 언급한 적이 있다. 우리는 보통 '취향'이라는 것이 한 개인의 연속적 선택에 의해 자연스레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부르디외는 취향은 경제적 수준, 문화적 배경, 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된다고 본다. 즉, 한 개인이 형성하는 취향은 생각보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뜻이다. 개인의 취향은 시대를 의미하는 부분적 단서들로 가득 차있다. 부르디외는 저서에서 대학 교수, 간호사, 빵집 부인 등의 기호를 통해 각 계급에서 형성되는 취향의 전형을 보여준다. 각 계급에서 형성된 취향은 이동이 쉽지 않고 집단적 성격이 강한 특성이 있다. 하지만 지금도 그럴까?


인스타 팔로잉 목록이 개인의 지향을 나타낸다고?

부르디외의 책은 오래전에 쓰였다. 당시는 개인이 얻을  있는 정보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의 구별 짓기는 어떻게 작동할까? 우리는 인스타그램만 접속해도 넘쳐나는 타인의 취향과 기호를 쉽게 접할  있다. 넘실대는 레퍼런스는 고급, 저급 문화의 경계를 빠르게 해체한다.  주위에는 고액 연봉을 벌지 않더라도 다양한 층위의 문화적 향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전까지만 해도 대중적이 않던 #골프(573) #오마카세(56.4) #파인다이닝(15.3만개) 해시태그 개수의 변화에서 이러한 단면을 엿볼  있다.

    고급문화에 대한 높아진 접근성은 단순히 정보 습득에 그치지 않는다. 내가 팔로잉하는 계정 목록은 선호를 넘어 내가 닮고 싶은 라이프 스타일이 된다. 취향을 통해 자신을 조금 더 나은 삶으로 향하게(비추고) 하고 싶은 욕망은 지금 시대를 움직이는 가장 커다란 동력 중 하나다. 정신분석학의 대가 자크 라캉은 우리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라고 정의했다.

수 많은 #오마카세 #골프 해시태그들

최근에는 어떤 사람이나 브랜드가 스스로 나는 어떤 존재라고 발언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팔로잉한 계정들을 쭉 볼 때 지향하는 가치관이 역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안젤리나 졸리는 1,412만이라는 팔로워가 있지만 팔로잉은 단 3개뿐이다. 3개는 NAACP(인종 불평등 관련 단체), doctorswithoutborders(국경 없는 의사회), refugees(UN 난민기구)이다. 그녀는 말없이 팔로잉으로 정치적 발언을 열심히 하고 있는 셈이다. 꼭 세계적인 인플루언서나 정치적 함의가 담겨있지 않더라도 이러한 현상은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빵순이 친구는 달콤한 케이크 관련 계정만 팔로잉한다. 하루가 코드로 가득 찬 개발자 친구는 인간이 아닌 고양이 관련 계정만 100개 넘게 팔로잉한다. 매달 책 한 권 읽기에 실패하는 마케터 친구는 자기 계발 관련 계정만 열심히 팔로잉한다. 이처럼 개인이 어떠한 지향점을 가지고 수집한 팔로잉 목록에 있는 계정들 간에는 보이지 않는 연결성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팔로잉을 통해 결핍을 메우기도 하고 내 취향을 더 강화하기도 한다. 만약 새로운 브랜딩을 시작한다면 바로 인스타그램을 여는 게 아니라, 내 브랜드가 어떤 팔로잉 목록, 어떤 기호의 집합에 들어가면 승산이 높을지 충분히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마케팅 방법론으로 묶이지 않는 고객 집단

최근 브랜드나 마케팅에 종사하는 지인들을 만나면 공통적으로 말하는 어려움이 있다. 고전적인 마케팅 세분화 방법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성별, 연령대, 직업, 교육 수준, 결혼 유무, 수입 등으로 나누는 인구 특성적 세분화(Demographic Segmentation) 방식에 대해서는 대부분 회의적이었다.

    며칠 전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같이 먹은 적이 있다. 5명이었는데 모두 MZ세대고 IT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30대였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주말에 하는 취미, 구독하는 OTT 종류, 결혼관, 좋아하는 동네, 선호하는 명품 브랜드 등 5명밖에 안 되는 사람들의 기호를 덩어리로 묶기가 쉽지 않았다. 너무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하기 때문이었다. 현대의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는 부르디외가 말한 경제적 수준, 문화적 배경, 이데올로기에 자신의 취향을 머무르게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키워드를 유행이 아닌 욕망으로 보기

러스틱 라이프, 헬시 플레저, 인덱스 관계...

매년 트렌드를 분석하는 단체에서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는 집단을 규정한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신조어들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현대인의 더 나은 라이프 스타일을 향한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최근 만들어진 신조어 중 '러스틱 라이프'는 도시 생활과 시골 생활을 믹스하는 개념이다.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배달음식의 조미료 맛에 모두가 지쳐갈 무렵 tvN에서는 '슬기로운 산촌생활'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바쁜 일상을 피해 밤에는 별이 가득한 예쁜 시골에서 장작불을 피우고 제철 재료로 음식을 해 먹는다. 산촌생활의 내용은 이게 다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시골 생활에 대한 로망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그런데 러스틱 라이프의 핵심은 도시생활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것에 있다. 도시인이라는 정체성이 중심이며 주말만 시골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러스틱 라이프의 이면에는 늘어난 직장인의 여가시간이나 비대면 근무가 가능해진 사회적 배경도 존재한다. 예전 귀촌 생활 같은 완전한 도시와의 단절이 아닌 자본과의 안전한 연결성이 고려된 시골 라이프 스타일인 셈이다.

러스틱 라이프와 안전한 시골(출처: tripadvisor)

디지털은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채널의 개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 그리고 인친, 페친, 트친, 링친, 오프라인 찐친같이 채널별로 내가 친한 사람들을 무의식적으로 구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계 형성 인식을 인덱스 관계라고 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직장도 포함된다. 지인이 한 번은 자신의 슬랙 화면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거기에는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그룹과 커뮤니티가 수많은 워크스페이스로 존재했다. 지인의 회사는 슬랙 내에서는 그냥 하나의 워크스페이스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업무 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인은 평소 일하며 생기는 어려운 문제를 탭을 넘나들며 전문가들에게 묻고 답하며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른 탭에는 현재 지인이 속한 회사의 리더보다 더 뛰어난 사람도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양상은 성취에 대한 욕망으로 번져 회사의 위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브랜드 액티비즘에 대하여

신이어마켙, 어글리어스 마켓, 프라이탁

이 브랜드들의 공통점이 뭘까? MZ세대가 선호하는 브랜드인 동시에, 영리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 정치, 경제 같은 사회적인 이슈에서 올바름을 추구하는 브랜드들이라는 점이다. 이를 브랜드 액티비즘(Brand Activism)이라고도 한다. 환경을 위해 포장을 없애거나, 버려지는 제품을 리사이클링 하거나, 제품 하나를 사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품 하나가 가는 식이다. 검색을 통해 브랜드 간 비교가 너무 쉬워진 시대다. 이 말은 가격이 비슷한 제품이 있다면 브랜드가 내세우는 가치가 내가 실천하고 싶은 가치와 비슷할 때 선택받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 된다. 더불어 MZ세대는 내가 상품을 사기 위해 지불한 대가가 앞으로의 사회나 환경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욕망이 무척 크다. 지금부터는 이러한 지향점을 가진 브랜드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신이어마켙

폐지 줍는 시니어들이 그린 손그림 달력을 파는 브랜드가 있다. 이 브랜드의 이름은 신이어마켙이다. ‘신이어’는 시니어라는 표현을 모르시는 어르신들의 발음에서 따온 것이고, ‘마켙’은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 있는 만물상을 나타내는 슈퍼마켙에서 왔다. 브랜드는 다양한 측면에서 새로운 세대와 가까워지고 싶은 시니어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이러한 바람 때문일까? 신이어마켙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의외로 Z세대가 열광한다. 인기 있는 탁상 달력이나 편지지에는 시니어의 인생꿀팁을 담은 매운맛 직언들이 귀엽고 어설픈 그림이나 글씨로 담겨 있다.

창작을 하고 있는 할머니 (출처:정경 시사 FOCUS)

신이어마켙의 시니어들은 대부분 폐지를 수거하며 생활하시는 저소득 노인들이다. 브랜드는 시니어들에게 무거운 물건 대신 그림을 그려 저작권료를 지급하는 형태로 일자리를 제공한다. 현재는 노인 일자리 프로젝트지만 앞으로 직접 고용으로 나아가는 것이 브랜드의 목표라고 한다. 신이어마켙이 추구하는 브랜드 액티비즘은 경직된 노인 고용 문화나 일자리의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사회적인 인식을 심어준다.

 

어글리어스 마켓

잘 자랐지만 못생겨서 버려지는 농산물이 전체의 1/3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적이 있다. 못난이 채소들이 적절한 판매 경로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글리어스 마켓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품가치가 떨어진 못생긴 채소만 골라 판다. 크기가 너무 크거나 작아서, 살충제가 없어 무해한 상처가 남거나, 코로나로 인해 학교의 급식 수요가 줄어서, 너무 개성 있게 생긴 채소들이 어글리어스 마켓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못생겼지만 맛있는 채소들(출처: 어글리어스 마켓)

어글리어스 마켓은 버려지는 채소들을 농부들에게 직접 공급받아 중간 과정 없이 직접 유통한다. 소비자는 사이트에 접속해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배송 주기만 선택하면 된다. 이후 제철 유기농 채소들이 친환경 박스에 랜덤 하게 담겨 배송이 오는 시스템이다. 어글리어스 마켓의 홈페이지에 가보면 고객들이 직접 못난이 채소들로 요리한 사진들과 사연을 많이 볼 수 있다. 배달 음식을 줄이고 브랜드 가치에 동참하고자 시작한 소비가 결국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고, 못생겼지만 영양가가 높아 아기 이유식으로 즐겨 만든다는 내용들이다. 어글리어스 마켓의 브랜드 액티비즘은 못난이 농산물을 구출해 지구를 위한 작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프라이탁

마커스 프라이탁, 다니엘 프라이탁 형제의 의해 1993년 스위스에서 설립된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은 새것을 구매해도 헌것이다. 오래된 트럭 방수천과 폐차 안전벨트, 바퀴 속 고무 등을 더해 가방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프라이탁은 업사이클링(Upcycling) 브랜드의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업사이클링은 재활용과 유사하지만 확연히 다르다. 재활용이 쓰던 물건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업사이클링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디자인이나 가치를 부여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매력 때문인지 트렌드에 민감한 힙스터들이 프라이탁 마니아가 되어 스스로 상품을 주위에 홍보하는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업사이클링의 대표 브랜드, 프라이탁(출처: OSISWING)

프라이탁을 매는 것만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직접 말하지 않더라도 그런 가치를 실천하고 싶어 한다는 이미지가 형성된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는 꽤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기도 한다. 스위스의 비싼 인건비로 오래된 안전벨트, 방수 천등을 일일이 손질해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금액대가 높다. 그런데 막상 프라이탁 가방을 주문해서 받아보면 원단에 흠집이 많고 코를 대보면 냄새도 좀 나는 것 같다. 일반 가방이었다면 아마 단번에 반품 생각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프라이탁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업사이클링 과정에서 나온 흠이 유일성이라는 가치가 될 수 있다. 프라이탁 마니아들은 수납 같은 기능성보다 브랜드가 실천하는 액티비즘을 구매하려는 성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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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과 새로운 브랜드들을 살펴봤다.


'왜 브랜딩 프로세스가 통하지 않을까?' (끝)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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