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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May 30. 2023

설리번 선생님! 아직도 형태가 기능을 따라야 하나요?

GPT 시대, 형태는 무엇을 따라야 할까?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이 처음 사용한 이 문장은 건축을 넘어 현대 디자인을 은유하는 가장 유명한 문장이다. 이번 글은 해당 문장이 오늘날 디지털 세상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와 분명한 한계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론부터 이야기하면 기능이 형태를 이루는 데 있어 중요한 가치이기는 하나 모든 상황에 적합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형태는 다양한 상황을 매개해 문화나 상징, 기술의 발전, 때로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따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 그대로 디자인이나 건축이 아름다움을 먼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해야 하는 기능에 의해 형태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리번의 말대로라면 의자는 사람이 가장 편하게 앉을 수 있는 기능을 찾아 최종 형태를 결정해야 한다. 더불어 디자인이 사용되는 목적과 기능을 충족하는 이데아적 형태가 있다는 믿음에도 기대고 있다. 이러한 원칙을 따르면 간결하고 정돈된 미적 외관을 가질 수 있다. 오브제성이 약해지고 용도성이 강해지는 셈이다.

집에서 찾아본 설리번적인 디자인들


위 이미지들은 형태는 기능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디자인들을 집에서 직접 찾아본 것이다. 모두 별다른 장식 없이 목적에 맞게끔 디자인된 것처럼 보인다. 장식을 싫어하고 기능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는 꽤나 설리번적인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디자인에도 이 법칙이 적용될까?

우리가 매일 만나는 디지털 세상에도 이 법칙이 적용될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디지털 서비스를 설계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용자 경험(UX)과 사용자 인터페이스(UI)의 토대 역시 사용성과 실용성을 기반으로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대부분 쇼핑몰의 경우 좌측 상단에는 로고가 위치하고 장바구니 아이콘은 우측 상단에 위치한다. 메인에 커다란 이벤트 배너가 존재하는 경우도 일반적이다. 이는 현재 웹사이트나 앱들이 사용자가 목적을 쉽게 이해하고 달성할 수 있게끔 직관성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장바구니 아이콘이 일반적으로 우측 상단에 위치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용자가 기대하는 위치이고 이는 곧 기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신선 식재료 커머스 정육각의 메인 화면

이러한 측면 때문에 사용자는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해도 과거 학습한 버튼의 위치, 메뉴 구조, 다양한 아이콘들의 위계등을 통해 앱 내 기능들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 만약 장바구니 아이콘이 우측 상단에 없고 다른 곳에 위치한다면 사용자는 이내 혼란을 느껴 서비스를 이탈할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 모든 디자인에 이 원칙이 항상 적용되지는 않는다. 지금부터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사례를 하나씩 살펴보자.



형태는 수많은 기능을 통합하기도 한다.

형태가 정말 기능만을 따른다면 스마트폰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아이폰의 외형을 보자. 형태는 무척 단순하지만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정말 많은 기능을 수행한다. 어떤 사람은 촬영의 도구로 쓰고 어떤 사람은 SNS용도로 사용한다. 아이폰의 탄생 자체에 이미 다양한 목적을 통합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다목적성과 유연함을 담는 단순한 형태는 설리반의 개념으로 충분히 설명하기 힘들다. 역설적으로 아이폰이 비누곽 같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장식적이었다면 지금처럼 수많은 기능을 통합한다는 의미를 잘 내포할 수 있었을까?


형태는 상징과 문화를 따르기도 한다.

이모지 디자인은 기능에 맞는 형태 외에도 상당히 많은 문화 및 사회적 맥락을 담는다. 대표적으로 마스크 쓴 이모지의 변화가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마스크를 쓴 이모지의 눈이 슬프게 표현되어 있었다. 마스크란 아플 때 착용하는 것이라는 다소 부정적 의미를 시각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를 지난 현재 마스크 이모지는 우측처럼 다시 디자인되었다. 우측 이모지의 눈은 웃고 있다. 더 이상 마스크는 아플 때만 쓰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하면 좋은 긍정적인 상징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는 형태가 기능에 의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사회적 맥락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눈모양이 달라진 마스크 이모지 @designboom


이모지는 때때로 정체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한 10대 소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히잡 이모지가 없는 걸 알고, 유니코드 협회에 이모지를 추가해 달라고 건의했다. 소녀의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현재 스마트폰에서 히잡 이모지를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이모지는 문화, 인종, 성별, 성 정체성, 장애등 사회적 변화에 발맞춰 표현의 저변을 점점 확장하고 있다.



형태는 브랜드 정체성을 따르기도 한다.

종종 디자인은 기능이 아닌 브랜드성을 강화하기 위한 형태로 발전해 나간다. 아래는 안경 브랜드 젠틀 몬스터에서 전개하는 '누데이크'라는 디저트 브랜드다. 누데이크는 디저트가 가진 외형과 공식을 깨고 파격적인 비주얼을 전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래는 누데이크의 ‘버거케이크’라는 제품이다. 만약 형태가 기능을 따르는 데에만 집중한다면 굳이 진짜 햄버거와 헷갈릴 수 있는 시도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버거케이크는 사람들의 많은 사랑과 주목을 받고 있다.


햄버거를 닮은 누데이크의 버거 케이크 @https://rladnjsrl01.tistory.com/166


이러한 시도가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누데이크가 여태껏 보여온 브랜드의 전개 방식이 전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 전통적인 베이커리 브랜드에서 누데이크 같은 시도를 했다면 어떨까? 누데이크 제품들의 형태는 예술과 재미, 심미성을 오간다. 이는 브랜드 정체성만을 충실히 따른다. 기능과 유용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명상앱 코끼리 @wwit

위 이미지는 코끼리라는 명상 앱이다. 얼핏 화려한 일러스트나 색상이 많이 사용돼 기능성이 돋보이는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코끼리 앱의 슬로건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이다. 이 앱의 존재 목적은 유저가 다양한 명상 콘텐츠를 들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다. 앱 전반에 사용된 보랏빛 컬러와 반복해서 사용되는 코끼리 아이콘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코끼리 외에도 다양한 명상 앱들은 화면을 기능적이고 단순하게 디자인하는 대신 물이 넘실대는 것처럼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시각적 표현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프로덕트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인 동시에 앱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과도 맞닿아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조금 떨어지는 사용성은 트레이드 오프 하는 셈이다.

 


형태는 기술에 따라 완전히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

곧 펼쳐질 본격적인 가상현실 세상에서 형태란 완전히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 특히 사용자가 자신의 신체를 통해 가상 세계와 직접 상호작용 할 때, '형태' 자체는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다. 현실의 물리 법칙에서는 불가능한 계속 형태를 바꾸는 건물이나, 날아다니는 자동차등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기능과 형태의 관계를 넘어선다. 어쩌면 앞으로의 디자인적 과제는 누가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물리적인 제약에서 기능-형태의 관계를 해방시켜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느냐가 될지 모른다. 이는 곧 수많은 비즈니스 기회로 연결될 것이다.



그럼에도 형태가 기능을 따라야 한다는 말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개념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지닐 것이라 생각한다. 이 가치가 없다면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가 목적성을 잃을 것이고 사용자는 큰 혼란을 겪을 것이다. 다만 앞에서 다룬 것처럼 오늘날 디자인은 단순히 기능적인 문제 해결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는 기능 이전에 브랜드가 가진 지향점을 먼저 내비치기도 하고, 문화적인 정체성이 기능 앞에 있기도 하다. 디자이너뿐 아니라 서비스를 만드는 메이커들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한 두 가지 개념으로 모든 상황에 대한 해답을 쉽게 찾으려는 태도다. 새로운 기술을 매개한 비즈니스들은 기존의 형태와 기능의 관계를 전복시키며,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을 탐색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원칙은 지금보다 더 유연하고 다양하게 해석 및 적용되어야 한다.



'설리번 선생님! 아직도 형태가 기능을 따라야 하나요?' (끝)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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