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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May 03. 2023

PMF를 찾지 못한 서비스가 준 가르침

가능성 있는 씨앗을 찾아서

[린 스타트업]의 저자 에릭 리스는 프로덕트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실험을 땅에 씨앗을 심는 행위에 견주어 말했다. 씨앗 중에는 나무로 자라지 않는 것들도 있고, 조금 자라다가 성장이 멈추는 것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심지 않은 씨앗에서 나무가 자랄리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력이 되는 한 최대한 많은 씨앗을 심어보고 나무가 될 가능성을 찾아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씨앗을 심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존재한다.



서비스마다 스테이지와 상황이 다르다

A 회사: PMF 찾았음. 매출이 잘 나고 있음. 아하 모먼트 찾았음. 쇼핑몰.
B 회사: PMF 못 찾았음. 아직 매출 없음. 리텐션이 높지 않음. 유틸리티 앱.

위 두 예시는 실제로 내가 경험한 회사다. A 회사는 내가 입사했을 때부터 매출이 조금씩 나고 있었다. 하지만 서비스에 있는 기능 전반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디자이너 없이 개발자가 임시방편으로 만들어놓은 부분도 많았다. 그런데 기능들의 부족한 점이 많은데도 매출이 잘나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나무로 자랄 씨앗을 이미 찾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만들었다. 자연스레 새로운 씨앗을 더 많이 심는 노력보다 있는 기능들의 개선에 집중하게 됐다. 쇼핑몰은 멘털모델도 꽤 명확한 편이기 때문에 UX에서의 과감한 시도보다는 상품 리스트뷰를 고쳐보거나, 누끼컷을 다른 각도로 적용해 보거나, 문구를 조금 더 친절하게 다듬거나 하는 노력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로 인해 갑자기 서비스가 몇 배로 성장하는 일은 드물었다. A페이지에서 B페이지로 가는 퍼널의 이탈률이 약간 개선되거나, 누끼컷을 바꾸자 상세 페이지로의 진입이 n% 개선되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서비스의 큰 구조적 변경도 거의 없어 각 중요 페이지들 간 의존성이 크지 않고 독립적이었다. 이런 측면 때문에 각 중요 페이지들마다 담당 디자이너와 개발자 소수를 묶어 작은 한 팀처럼 운영이 가능했다. 이렇게 꾸려진 몇 개의 작은 팀들은 저마다 이루어야 할 목적이 뚜렷했다(당시 스쿼드라는 개념을 쓰지는 않았는데 유사한 것 같다. 중요한 건 자연스레 이런 구조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장바구니 작은 팀의 목표는 '전체상품 주문하기'버튼을 최대한 많이 클릭하게끔 하면 됐다. 페이지 내 모호함을 줄이고 사용성을 꾸준히 개선해 나갔다. 하지만 작은 팀들의 이 같은 노력이 갑자기 서비스에 드라마틱한 몇 배의 성장을 만들지는 못했다. 대신 작은 팀들이 목표를 조금씩 달성하는 것들이 모여 아주 천천히 서비스의 점진적 성장을 만들어낸 기억이 난다.


A 회사는 아니지만 대부분 이런 식의 노력들이었다. @goodui.org


B 회사는 A 회사와 상황이 무척 달랐다. 서비스 론칭 후 꽤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나무로 성장할 만한 씨앗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유입(inflow)되는 대로 유저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리텐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스토어 광고나 소재를 만들어 타겟팅 광고를 해도 효율이 나지 않았다. 서비스가 전달하려는 핵심가치가 시장에서 정말 필요한 것인지를 검증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동일한 경험을 수만 가지 형태의 UX로 유저에게 전달할 수 있는 유틸리티 앱 특성상 문제 파악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앱 로고를 바꾸고 스크린샷도 변경해 봤지만 효과가 미미했다. 사용자 경험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 자체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심도 들었다. 초조했고, 어떻게든 활로를 찾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 서비스 대부분 아직 나무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씨앗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A 회사처럼 특정 페이지에서의 점진적 개선만을 쫓을 수 없다(PMF를 찾기 전 많은 서비스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당시 최선이라 믿었던 방법은 메이커의 직관(물론 경쟁사 리서치나 UT도 진행했다)으로 가장 중요한 페이지를 계속해서 완전히 뒤바꾸며 드라마틱하게 튀는 지표를 찾는 것이었다. 큰 구조를 변경하며 선이 굵게 실험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가 약간 올라가는 것에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 방식은 변수를 최대한 통제한 뒤, CTA 버튼 컬러만 변경해 A/B 테스트 후 클릭률의 승자를 찾거나, 온보딩의 UX 라이팅만 변경해 %를 상승시켜 보려는 목적과는 아예 다른 지향점을 가진다. 도입부에서 예로 든 것처럼 나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씨앗을 찾아보려는 안간힘인 셈이다. 심리적인 압박과 초조함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해당 서비스는 많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결국 PMF를 찾지 못했다. A 회사에서는 통했던 방법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지만, 0에서 나무가 될 씨앗을 발견하는 것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임을 뼈저리게 배웠던 소중한 경험이다.



소중한 메이커의 직관

서비스가 초기일수록 메이커나 창업가의 직관을 바탕으로 한 선 굵은 배팅이 필요한 시점이 찾아온다. 아직 큰 나무가 될지 작은 나무가 될지 모호한 상태에서 다른 가능성들을 배제한 채 하나의 씨앗에만 몰두할 경우,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자원을 낭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평소에 잠잠하지만 뛰어난 직관을 가진 동료가 강하게 아이디어를 낼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도 덩달아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그 사람의 직관 역시 커리어를 쌓으며 축적된 경험 데이터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레이엄 벨이 전화를 발명할 때 시장 조사를 했을까요? 사람들은 우리가 그것을 눈앞에 내놓기 전까지는 자기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릅니다."



장인이 될 수 없는 UX 전문가

비슷한 시기에 가죽 공예로 커리어를 시작한 친구가 있다. 10년 정도 일했는데 그 친구는 이미 장인 대접을 받고 있다. 본인 스타일이 곧 시장의 수요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 친구와 비슷한 시기부터 디지털 프로덕트와 웹 서비스를 설계하고 있지만 장인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이 업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MZ를 대상으로 하는 이북 서비스에서 몇 년 간 사용자 경험을 설계했다고 해보자. 이후 신선 식품을 다루는 온라인 커머스로 이직해 스마트한 주부들을 대상으로 사용자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면 어떨까. 피그마 스킬이나 보편적인 UX 개념은 적용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처음부터 다시 유저나 시장에 대해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온라인 교육 시장에서 'UX 마스터'라는 명칭을 볼 때마다 기분이 약간 묘해진다. UX에 대한 보편적인 이론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특정 카테고리에서 유효했던 경험이 다른 영역에서도 유효할 것이라고 넘겨짚어 정답처럼 말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타 서비스를 벤치 마킹하는 것과 내부에서 직접 경험하는 온도 역시 정말 다르다. 요즘 들어 어떤 것에 대해 잘 안다고 주장하는 것이 점점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경험하고 이해한 범위 내에서의 생각을 최대한 해상도 높은 언어로 전달하는 것고 쉽지 않다. 이 글도 그 정도로만 전달되면 좋겠다.



'PMF를 찾지 못한 서비스가 준 가르침'(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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