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밀라노 스타벅스 세이렌은 조각일까?
출장 중 밀라노의 한 스타벅스를 방문했다. 정원 같은 테라스를 지나 웅장한 문을 힘겹게 열자, 마음을 사로잡는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윤기 나는 대리석 바닥 위로 갓 로스팅된 커피 원두의 은은한 향이 공간을 꽉 채웠다. 세련된 이탈리아 사람들의 대화소리와 육중한 에스프레소 기계의 작동음이 어우러져 새로운 세계로 막 발을 내디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탈리아의 깐깐하고 자부심 강한 커피 문화가 스타벅스를 최대한 우아하게 받아들이려는 노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봐도 밀라노 스타벅스에는 세이렌이 없었다.”
밀라노에 있는 스타벅스는 고급버전인 리저브 로스터리다. 리저브는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브랜딩에 녹색과 흰색이 섞인 세이렌 로고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R과 별로 구성된 리저브 로고를 중심으로 매장 정서에 맞게 검정이나 갈색, 금색 계열로 적용된 세이렌을 은은하게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밀라노에 있는 스타벅스 리저브에는 그마저도 찾을 수가 없었다. 넓은 매장을 둘러보며 스타벅스(리저브)의 정체성이 무척 축소되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대신 공간 전체에서 이탈리아 고유의 에스프레소 문화를 존중하거나, 장인 정신을 강조하려는 흔적이 많이 보였다. 그러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 돌아오는 모퉁이에서 섬세하게 조각된 거대한 세이렌과 만나게 되었다.
심벌로만 접하던 세이렌이 조각이 되자, 이탈리아의 장인정신과 예술에 대한 열정등이 자연스레 투영되었다. 실제로 스타벅스는 에스프레소 종주국인 이탈리아 진출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미국 시애틀과 중국 상하이에 이어, 2018년 9월 세 번째로 문을 연 이 공간은 아예 원두까지 자체적으로 로스팅해 몰입감 있는 커피 경험을 제공한다. 커피 외에도 이탈리아 로컬푸드도 제공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밀라노 스타벅스 리저브는 세계에 있는 다른 매장들과 차별화된 이미지를 가지는 데 성공했다.
글로벌 기업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는 현지 문화를 고려해 브랜딩해야 하며, 이러한 접근 방식을 통해 브랜드와 지역 고객 간의 유대감을 강화할 수 있다. 만약 이를 간과하면 어떻게 될까?
미국의 대표 DIY(Do It Yourself) 유통업체 홈데포(Home Depot)는 2006년 중국 시장에 호기롭게 진출했지만 결과는 암담했다. 당시 중국인들은 셀프 인테리어에 DIY 전통이 있는 미국인들만큼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상류층의 경우 주택을 투기 목적으로 구입해 인테리어가 필요 없는 경우도 많았다. 홈데포는 이후 6년간 중국 시장에서 분투하다 결국 끝까지 남아 있던 7개 점포를 폐쇄하며 완전히 철수했다.
한국에서 실패한 대표적인 글로벌 브랜드로는 월마트가 있다. 1998년 월마트가 한국에 진출할 당시 이마트, 롯데마트등은 이미 한국인의 구매 습관에 최적화된 형태로 높은 시장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월마트의 가성비 전략은 다양성과 가심비를 추구하는 한국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한 것도 크게 작용했다. 홈데포와 월마트 사례를 보면 현지 문화와 소비자 습관에 대한 브랜드 차원의 충분한 고려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부터는 현지 문화를 존중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더 입체적으로 구축한 세도나의 맥도날드와 파리 디즈니랜드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미국 애리조나주 세도나에 있는 맥도날드 아치는 아름다운 청록색이다. '빛의 도시'로 불리는 세도나는 붉은 사암(Red Rock)을 보러 방문하는 관광객이 많다. 그리고 건축물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지나치게 침범하면 안 된다는 법규가 존재한다. 1993년 맥도날드가 세도나에 들어서는 시점 지역 의회는 노란 아치가 자연보다 더 도드라지는 색이라 판단했다. 맥도날드는 의견을 받아들여 아치를 눈에 덜 띄는 청록색으로 변경했다. 내부에서는 맥도날드의 상징을 변경하는 것에 대한 반대도 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세도나의 매장은 SNS상에서 '블루 맥도날드'로 화제가 되며 지역 관광 명소가 되어 버렸다.
같은 맥락으로 캘리포니아 몬테레이의 아치는 검은색이고,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아치는 하얀색이다. 두 매장 모두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해서인지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1992년 파리 근교에 디즈니랜드 건설이 확정되자 자국 문화를 너무나 사랑하는 프랑스 사람들은 대규모 건설 반대 시위를 벌였다. 결국 디즈니 측은 많은 저항을 감안해 '유로 디즈니랜드'라는 이름으로 개장한다(현재는 완전한 디즈니랜드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디즈니랜드는 무척 미국적인 공간이다. 내 머릿속 디즈니랜드는 복잡하게 섞여있는 서브컬처 위로 미국을 상징하는 캐릭터들이 풍선과 핫도그를 들고 웃고 떠드는 이미지다. 웅장한 베르사유 궁전으로 상징되는 프랑스인들의 바로크 취향에 디즈니가 반가웠을 리만은 없다. 개장 후 유로 디즈니랜드는 예상 고객 50만에 한참 못 미치는 5만에 그쳤고, 출범 6개월 만에 3400만 달러의 막대한 손실을 냈다. 이후 유럽인들의 취향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디즈니의 노력과, 신선한 테마를 경험할 수 있는 어트랙션 도입 등으로 경영난을 어렵사리 극복할 수 있었다. 실제로 파리 디즈니랜드는 베르사유 궁전이나 유럽의 다양한 성을 참고한 흔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더불어 독일식 소시지나 맥주, 이탈리안 피자, 프랑스식 해산물 같은 유럽 로컬 푸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것은 브랜드의 본질과 닮은 면이 있다. 브랜드는 자신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것들과의 관계까지 고려해 스스로를 세공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다른 말로 브랜딩이라고도 부른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브랜드가 지켜야 할 정체성과 지역 문화의 존중은 불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글에서 다룬 성공 사례들을 기억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지역사회는 브랜드를 관통해 자신들만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육중한 문을 닫자 ASMR 같던 이탈리아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뚝 끊겼다. 강렬한 에스프레소 내음도, 이빨이 아릴 정도의 단 케이크도, 섬세한 세이렌 조각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전통과 현대가 우아하게 손잡은 그 장소는, 꽤 오랫동안 기억 속에 선명히 간직될 듯하다.
"지역화 전략, 글로벌 브랜드의 새로운 얼굴“ (끝)
*chatGPT의 도움을 받으며 작성했습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