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혁신이 만나는 지점
해당 글은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제작하는 계간지를 위해 작성되었던 글입니다. 따라서 말미에 현대자동차 헤리티지와 관련한 전시 내용이 나옵니다.
헤리티지는 오랜 시간을 견뎌낸 브랜드만이 누릴 수 있는 상징이자 특권입니다. 단순히 오래되기만 한 브랜드에서는 진정한 헤리티지를 느낄 수 없습니다. 헤리티지는 일관된 브랜드 가치와 서사를 공유하며, 변화하는 문화와 함께 호흡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와 연결된 과거의 유산은 브랜드가 지속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됩니다. 반면, 과거의 영광에만 기대어 안주한 수많은 브랜드들은 헤리티지를 계승하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1950년대부터 북미의 독보적 백화점 체인이었던 시어스(Sears)는 급변하는 유통시장에서 과거의 영광에 안주했습니다. 신생 브랜드였던 월마트(Walmart)는 고품질 제품을 낮은 마진으로 대량 판매하고, 코스트코(Costco)는 안정적인 수익원을 얻을 수 있는 회원제 모델을 채택했습니다. 시어스는 이러한 트렌디한 전략에 밀려 정체성을 잃고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한때 3500개에 달했던 시어스의 실패는 헤리티지가 단순한 과거의 낭만적 계승이 아니며 생존과 밀접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지금부터 브랜드가 헤리티지와 관계 맺는 다양한 방식과 사례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브랜드는 다양한 방식으로 저마다의 헤리티지를 축적합니다. 대표적으로 다음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브랜드 박물관
브랜드 박물관이나 전시 공간을 통해 역사적 제품, 문서 등을 전시합니다. 헤리티지가 녹아든 공간에서의 브랜드 경험은 고객에게 더 생생히 전달됩니다. 예를 들어,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위치한 '월드 오브 코카콜라 박물관'은 코카콜라의 역사와 혁신적인 마케팅을 소개하여 전 세계 관객과 브랜드만의 헤리티지를 연결합니다.
2) 퇴직자 구술
오래 근무한 직원들의 경험담은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 역사가 됩니다. 이를 구술로 기록하여 기업의 정체성과 가치를 후대에 전하는 것도 헤리티지 축적의 한 예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IBM Oral History Program'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수많은 IBM 퇴직자들의 참여로 수십 년에 걸쳐 지속되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은 IBM의 혁신적인 프로젝트, 회사 문화, 경영 철학 등이 포함되며, 브랜드 유산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3) 디지털 아카이브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브랜드의 사진, 문서, 비디오 자료를 온라인에 보관합니다. '디즈니 아카이브'는 헤리티지를 디지털로 축적한 좋은 예시입니다. 디즈니는 초기 애니메이션 스케치부터 영화 제작 노트, 역사적 사진 등의 방대한 자료를 디지털 아카이브로 보관 중입니다. 이를 통해 직원과 대중은 물론 관련 전문가들이 디즈니의 역사와 유산을 학습해 현재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기업의 역사를 책으로 출판하거나, 기업의 역사적 순간을 기념하는 헤리티지 이벤트를 열고 과거의 인기 제품을 재출시하는 것도 축적의 방식들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전개 방식은 브랜드가 과거의 유/무형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보존하고, 현재와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합니다.
전 세계 많은 브랜드들이 헤리티지의 효과를 인식하고 마케팅 전략에 통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대표적으로 나이키와 코카콜라는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지속적으로 브랜드 전통과 역사를 강조하는 콘텐츠를 공유합니다. 헤리티지 브랜드가 새로운 브랜드 혹은 콘텐츠와 협업해 내놓는 제품들 역시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영감을 줍니다. 1932년 시작된 '레고'는 영화, 비디오 게임, TV 프로그램 등의 다양한 미디어 협업을 통해 '창의성'이라는 브랜드 핵심 가치를 지속적으로 전달합니다.
넷플릭스의 인기 콘텐츠인 '기묘한 이야기'와 레고가 협업한 제품은 고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기묘한 이야기’의 상징적인 장면들과 캐릭터들이 레고 블록으로 재현되어, 기존 레고 팬들과 기묘한 이야기의 새로운 팬들 모두에게 매력적인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브랜드의 과거 인기 제품을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재출시하는 방식 역시 소비자들에게 특별한 감성을 전달합니다. 1985년에 처음 나이키에서 출시된 에어 조던 1은 여러 차례 복각되어 헤리티지 계승과 함께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헤리티지 마케팅 방식 중 가장 강력한 몰입을 만드는 것은 바로 공간을 통한 직접 체험입니다. 고객이 공간에서 브랜드 유산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상호작용은 깊은 감성적 유대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효과 때문인지 최근 많은 브랜드들이 헤리티지 마케팅에서 공간 방식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공간을 통한 헤리티지 전달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겠습니다.
브랜드 헤리티지를 온전히 느끼고 이해하는 데는 단편적인 광고나 프로모션 만으로 부족할 수 있습니다. 반면 공간을 통한 헤리티지 전달 방식은 오감을 활용하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샤넬은 공간을 통해 헤리티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대표적인 브랜드입니다. 특히,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가브리엘 샤넬 패션 매니페스토' 전시는 그녀의 디자인 여정이 현대에 끼친 영향력을 입체적으로 탐구합니다. 전시에는 1910년부터 1971년까지 샤넬 디자인의 진화와 철학을 상징하는 트위드 슈트, 2.55백, 뷰티 및 주얼리 제품이 등장했습니다. 관객은 공간을 돌며 단순히 정보를 받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이야기를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관객은 샤넬의 디자인과 철학이 어떻게 현대 여성 스타일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1894년부터 명맥을 이어온 초콜릿 브랜드 '허쉬' 역시 공간을 통해 효과적으로 헤리티지를 전달하는 브랜드입니다. 허쉬는 펜실베이니아에 위치한 ‘초콜릿 월드’라는 체험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초콜릿 월드에서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초콜릿의 부서지는 소리, 부드러운 감촉, 풍부하고 달콤한 향, 신선한 맛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초콜릿 제조 과정을 직접 보고, 맞춤형 초콜릿을 만들어보는 등의 체험을 통해 허쉬의 초콜릿에 대한 철학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샤넬과 허쉬의 사례는 공간으로 전달하는 헤리티지에 대해 잘 말해줍니다. 공간을 통한 헤리티지는 오감으로 브랜드 감성을 형성하며, 고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지금부터는 현대자동차모터스가 공간을 통해 헤리티지를 축적한 대표적인 사례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현대자동차모터스의 뿌리와
미래를 잇는 세 가지 헤리티지 프로젝트
현대자동차는 50년 전 한국 최초로 독자 개발한 차량인 포니를 통해 헤리티지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내부에서는 미래차 경쟁력을 강조해도 모자란 시점에 과거를 돌아보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시 공간에는 1주일 만에 5000명이 넘는 방문객이 몰릴 만큼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관객들은 1970~1980년대 사회상을 상징하는 소품들과 함께 전시된 포니와 포니 픽업, 포니 왜건, 복원된 포니쿠페를 눈에 담으며 밴드 잔나비가 작업한 음원 '포니'를 듣는 체험을 했습니다. 공간을 찾은 사람들은 브랜드의 다층적 체험을 통해 현대차의 철학과 뿌리를 느끼고, 앞으로의 미래 방향성을 충분히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기아는 1944년 창립 이래 79년간 걸어온 발자취를 'Movement with People'이라는 콘셉트로 전시하는 헤리티지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기아의 초기 모델인 T-600과 브리사, 스포티지와 K5, 최신 전동화 모델인 EV9, PBV를 통해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 한 벽면에 설치된 디스플레이에는 차량이 아닌 사람들의 서사를 비춥니다.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첫차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생계 수단으로써의 택시가 그려집니다. 관객은 전시를 통해 눈부신 기술 발전 이면에 있는 사람을 중심에 놓으려는 기아의 핵심 가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울산공장의 50년 역사를 기념하는 상설 전시 '오래된 미래'는 '꿈의 시작', '꿈의 실현', '우리의 꿈, 오래된 미래'라는 세 개의 섹션으로 헤리티지를 기록합니다. 공간에는 인공지능으로 복원된 정주영 선대 회장의 음성이 울려 퍼지며 울산공장이 50여 년 전 허허벌판에서 공장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최초 생산 모델인 코티나, 한국 최초 전기차, 수출 전용부두 건설 관련 사료, 그리고 여정을 함께 해온 울산공장 직원들의 때 묻은 흔적들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전시입니다.
지금까지 알아본 바와 같이, 헤리티지는 단기적인 마케팅 활동이 아닙니다. 브랜드의 문화적 유산을 다양한 방식으로 축적하고 이를 현대적인 맥락에 맞게 조율하여,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가치를 전달하는 행위입니다. HMG 사례처럼 헤리티지는 멈추지 않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방식으로 시간을 초월하는 브랜드의 상징을 만들어갑니다. 이는 단순한 과거의 회고가 아니라, 브랜드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투자입니다. 그리고 고객과의 깊은 감성적 연결을 구축하는 궁극의 브랜드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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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 시간을 초월한 브랜드 유산(끝)’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