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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Feb 20. 2019

이미지의 모험

생산자 입장에서 보면 이미지가 탄생하는 과정을 몇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1) 100% 내 손으로 만든 이미지(일러스트, 순수 사진 촬영물등)

    2) 사진 촬영 후 후반 작업에서 가공된 합성물.

    3) 100% 합성물(인터넷에서 수급된 이미지로만 제작)

    4) 상업적으로 문제가 없는 이미지로만 제작(pixabay, unsplash 등 CC0등급에서 수급된 이미지)


더 많은 사례가 있을 수 있지만, 경험상 위 4가지 사례 정도면 설명이 될 것 같다. 아래는 브랜딩에 참여했던 EXR이라는 브랜드의 무드 이미지 한 컷이다.


EXR 무드 이미지 중 한 컷


위 이미지의 경우 네 가지 사례 중 2번에 해당한다. 작가와 촬영 후 후반 작업에서 완전히 재구성한 경우다. 쉬운 말로 사람과 오토바이(스튜디오 촬영)를 제외하면 100% 합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처음부터 그럴 계획은 아니었다. 촬영 후 뒷 배경만 조금 다듬으면 되겠지라고 순진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촬영해온 이미지를 매체에 적용해보니 상상하던 느낌과 너무 달랐다.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이미지를 보면 크게 하늘과 땅(사막)으로 나뉜다. 하늘에서 구름은 하나의 이미지처럼 느껴진다. 사실 하늘 하나를 만드는데 들어간 소스는 10개 정도 된다. 목적이 전혀 다르게 생산된 구름들이 모여 하늘 하나를 이룬 것이다. 칠레 구름도 있고, 미국 구름도 있다.(전부 cc0이미지) 제일 왼쪽 하늘에 존재하는 작은 구름은 퇴근길에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이다. 좌측에 있는 죽은 나무는 브라질에서 온 이미지고 근경 얖 옆으로 퍼져있는 바퀴 자국은 일본 레이싱 경기장 바닥에 나있는 질감을 이용해 맵핑했다. 땅 역시 마찬가지다. 언덕을 기점으로 근경/원경으로 나뉜 땅은 완전히 다른 이미지 두 개의 합성물이다.(근경은 코첼라의 어느 지역 이미지이고, 원경은 아프리카 사막지대 이미지이다.) 원경에서 삭제된 원본 이미지 왼쪽에는 목동들이 소를 몰고 있었다. 합성 시점에 그 부분은 필요가 없어져 삭제했다. 원본 이미지가 가지는 맥락이 동시에 삭제된 것이다. 생산자는 자신의 원본이 이렇게 사용될지 상상이나 했을까.


무료 사이트의 구름 이미지


이미지를 완성하고 한 동안 모니터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보고 지나칠 것이다. 설사 합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도 한 장의 이미지가 탄생하기 위해 30개가 넘는 서로 다른 맥락의 이미지들이 사용되었다는 것까진 알기 힘들 것 같다.(알지 못하게 하는 게 이미지 생산자의 임무이기도 하니까.)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모델과 오토바이를 빼면 모든 것이 다 합성인데, 원본과 소스의 비율이 역전된다. ‘이미지'를 다룬다는 것이 어떤 의미 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합성 툴이 없던 예전 에는 적어도 이 사진이 가상인지 실제인지에 대한 의구심은 없었다. 하지만 현재는 사진이라는 것 자체가 의심의 구심점이 된다. 어떤 코스메틱 브랜드는 포토샵을 하나도 하지 않은 사진을 걸어놓고, 각주로 '이 이미지는 보정되지 않았습니다'라는 걸 광고 문구로 걸었다. 아이러니한 진정성 마케팅이다. 어쩌면 이 부분에 대한 해명이 선결 조건화돼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원본과 가상의 경계에 서있는 사진


원본과 가상의 경계는 흐려진 지 오래다. 발터 벤야민이 예측한 이미지의 미래와 또 다르게 흘러가는 것을 요즘 느낀다. 이미지는 또 어떤 모험을 거쳐 미래에 닿을지 궁금해졌다.


이미지는 유영중이다




'이미지의 모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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