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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Aug 26. 2020

AI가 디자인을 한다고?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미래와 숙제

최근 한 보도에 따르면 20여 개의 상업 디자인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린 디자이너가 인공지능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디자이너의 이름은 니콜라이 이로노프(Nikolay Ironov)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이번 글 표지는 그의 작품입니다.



니콜라이 이로노프의 디자인

러시아산 인공지능은 디자인 스튜디오 ‘Lebedev’의 외부 디자이너로 지난 1년간 활약했습니다. 니콜라이는 카페, 바, 소비재 등 다양한 분야의 브랜딩을 맡았습니다. [그림 1]은 니콜라이의 작품들입니다. 이중 붉은 배경의 맥주 브랜딩은 상업적으로도 꽤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림 1] 니콜라이가 한 디자인. 출처 : artlebedev.com


알고리즘에서 인공지능 느낌을 일부로 지운 것인지 니콜라이 작품에는 투박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 느낌을 인간미로 해석해도 될 것 같아요. 기사에 따르면 인간 디자이너도 힘든 복잡한 콘셉트 설계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반듯한 그리드 기반 디자인은 더 쉽게 할 수 있겠죠. 한발 더 나아가 니콜라이는 인간 디자이너가 겪는 슬럼프, 표절 논란, 아이디어 고갈 등에 구속받지 않아도 됩니다. 바이러스로 인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니콜라이는 먹지도, 자지도 않고 끊임없이 크리에이티브를 찍어냅니다. 저는 AI를 보며 인간 디자이너의 더 나은 점이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미래에 어떤 시대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시대정신과 디자인

시대정신이란 어떤 시대를 지배하고 특정 짓는 정신을 말합니다. 디자인은 특히 시대정신에 영향을 많이 받는 분야입니다.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 운동(Art and Craft Movement)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예술의 기계화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우하우스 역시 과학 기술의 발전과 관련 있습니다. 멀리 안 가더라도 iOS 발전사를 보면 시대와 디자인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스콧 포스톨(iOS6까지 애플 UI 총괄 관리자)은 초창기 모바일 인터페이스가 익숙지 않은 대중을 위해 스큐어모피즘을 고안했습니다. 이는 사물의 모습을 유사하게 표현하는 디자인 개념으로 3차원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그림 2] 좌측에 해당합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디지털 세상으로 비교적 쉽게 온보딩 할 수 있었습니다. UI 디자이너들 역시 벡터보다 비트맵을 선호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묘사력이 디자이너 연봉과 비례했던 게 기억나네요. 하지만 재현성이 높아진 만큼 소프트웨어는 점점 더 무거워져 갔습니다.


[그림 2] 출처 : prototypr.io / design, how and why it evolves


iOS7 UI 총괄 관리자가 조너선 아이브로 바뀌면서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그는 애플 제품 대부분의 미니멀한 외관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iOS7의 시각적 특징인 'flat’함은 스큐어모피즘에 대한 강한 반작용이었습니다. 마치 화려한 르네상스 이후에 매너리즘 미술이 온 것처럼요. 사람들은 현실과 인터페이스가 닮지 않아도 기능에 대해 유추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그림자나 질감 같은 3차원 요소가 빠지니 디자인은 전반적으로 평평해졌습니다. 비트맵 비중이 줄어 용량도 가벼워졌습니다. 다양한 디바이스의 디자인 최적화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디자이너 개인의 의지나 창의성보다 기술발전에 더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자연스레 기술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윤리적인 측면에 가깝습니다.


*미술공예 운동(1860~1910) : 영국에서 일어난 공예 운동. 윌리엄 모리스는 당시 산업사회에서 대량 생산되던 조잡한 제품과 차별화되는 수공예의 정수가 되는 작품들을 만들려고 했다.



중독적 인터페이스

전 세계 인스타그램 사용자는 10억 명이 넘습니다. 한 프로덕트내 인터페이스가 그대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소수가 절대적 다수에게 영향을 끼치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SNS 피드를 무의식적으로 당기고 새로운 뉴스가 있는지 확인합니다. 구글의 전 디자인 윤리학자 트리스탄 해리스(Tristan Harris)는 이러한 새로고침(Pull to Refresh)과 슬롯머신 원리의 유사성을 지적합니다. 여기에는 심리적 요인인 가변적 보상(Variable Reward)이 포함됩니다. 사용자의 간단한 행동(레버를 당기는 일)이 다양한 보상(새로운 피드)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보상이 예측 불가능할수록 중독성은 극대화됩니다. 인스타그램의 무한 피드나 틴더의 좌/우 스와이프도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슬롯머신은 미국에서 야구, 영화 및 테마 파크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수익률을 내고 있으며 다른 종류의 도박보다 4배 더 중독성이 높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UI 설계는 비즈니스에 기여합니다. 그리고 사용을 편리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습니다. 문제는 꼭 필요하지 않은 부분에도 습관처럼 중독적 인터페이스가 디자인되는 것입니다. 가령 이메일은 슬롯머신 UI를 사용한다고 해서 사용자 체류시간이 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매우 많은 메일 서비스가 이 UI를 활용합니다. 아마도 관성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 윤리와 디자인을 다루는 단체인 'Center For Humane Technology'는 이러한 중독적 인터페이스가 점점 더 인간성을 다운그레이드화 시킨다고 경고합니다. 특히 중독에 취약한 10대에게는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MAU 10억 명 넘는 서비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위한 답변들

제가 운영 중인 페이스북 그룹 '인간을 위한 디자인'에는 가입 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의미 있는 답을 주셨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저와 비슷하거나 더 앞선 문제의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고민 끝에 지나가기 아까운 답변들을 공유할까 합니다. 아래 답변들은 니콜라이보다 인간이 더 잘 해낼 수 있는 부분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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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답변 사용을 그룹 내 모든 멤버에게 동의받지 못했습니다. 개인 정보 보호상 모두 익명 처리했습니다. 맥락과 다르게 인용되지 않도록 주의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럼에도 답변이 공론화되는 것에 거부감이 든다면 제 브런치 속 문의하기나 그룹을 통해 꼭 말씀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Q. 디지털 노이즈를 통해 점점 더 다운그레이드화 되어가는 인간성의 회복은 핵문제나 환경오염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인간성의 회복이 결국엔 이 문제들을 해결할 열쇠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성이 파괴된 인간에서 시작된 문제들이니까요!

제가 공부하는 ux 분야에 있어서는 그 중요도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성이라는 단어가 인간의 지성과 윤리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질문대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네, 앞으로 더 중요한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성과 윤리가 곧 환경 문제의 개선을 좌우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네 온라인 그 자체가 또 다른 환경이기에 중요하다고 봅니다.

네 생각해보면 제가 지금 하는 프로젝트와 연관이 있는데 인간성이 희미해진다는 것은 사회성과 감정의 연결과 관련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네. 인간성은 오히려 더 직접적인 것 아닐까요?    

나빠지는 게 눈에 보이지 않아 심각성을 빨리 깨닫지 못하다가 결국은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점에서 모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서로 간의 역학관계에 따라 중요도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성을 잃어가는 문제를 개선함으로 핵문제나 환경오염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생길 것 같네요. 더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디자이너도 윤리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특히 공감력에 대해    

디지털 기술의 반작용은 우리의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만들게 되겠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문제를 자각하는 지금 시도가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 노이즈는 현대의 페이크 뉴스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의 가치 호도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넵 인간성 회복이 되면 다른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 번도 곰곰이 생각해본 적 없어서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인간성의 회복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 그룹을 통해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예 인간의 시간을 다루는 거라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네. 사회문화 시스템의 최소 단위가 인간(?)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죠.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앞으로 중요한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 회복이 시작일 거 같습니다    

매우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코로나와 같은 극한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안이 될 수 있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안에서 부정확한 데이터와 서비스로 인해 부작용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노이즈가 디지털 윤리의식과 관련된 의미를 얘기하시는 거라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 링크]

https://www.facebook.com/groups/designforthesuperrealworld/?ref=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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