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우디 Dec 06. 2020

지금, 디자인에 윤리가 필요한 이유

Ethics for designers

최근 디자인 윤리 관련 주제로 디자인 콘퍼런스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정량적으로 딱 떨어지기 힘든 주제라 참여 자체에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다. 이 주제에 관해 공식적으로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도 마음에 걸렸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직접 들어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값진 경험이라는 생각에 참여를 결심했다. 모든 것이 무사히 끝난 지금 다행히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주제에 관해 학계가 아닌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토론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운이 가시기 전 콘퍼런스 과정에서 느끼고 배웠던 것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참고로 이 글은 내가 속한 조직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음을 미리 밝힌다.



디자인 윤리의 아주 짧은 연대기

디자인 윤리에 관한 논의는 오래되었고 또 학문적 깊이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현대적 의미의 시작점은 *지오데식 돔으로 유명한 '버크민스터 풀러'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는 1960년대 왕성하게 활동한 디자이너이자 사상가로 디자인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이상주의자였다. 그는 극단적인 이성주의와 과학 기술에 대한 신뢰에 기초를 두었고 많은 젊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 후 1971년 이 분야의 기념비적인 책 한 권이 출판된다. 빅터 파파넥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the Real World)'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얼마 안가 사회를 위한 책임 있는 디자인 운동의 바이블이 되었다. 주로 이 시기 디자인 윤리에 관한 논의들은 소비자 주도 디자인, 대량 생산, 환경 문제에 집중되어 있었다.


*지오데식 돔 : 지오데식 다면체로 이루어진 반구형 또는 바닥이 일부 잘린 구형의 건축물이다. 표면은 삼각형의 구면 격자로 이루어져 있다. 삼각형 모서리와 면으로 힘을 분산시켜 얇은 껍질 만으로 하중을 지탱할 수 있다.


버크민스터 풀러의 지오데식 돔


디지털이 삶의 중심이 된 지금 구글의 전 디자인 윤리학자였던 트리스탄 해리스가 이끄는 'Center For Humane Technology'라는 비영리 조직이 논의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조직의 주요 고문으로는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을 만들고 현재 협업 툴 아사나를 창립한 저스틴 로젠스타인, 무한 스크롤을 만든 에이자 래스킨(공동 창립자)등이 있다. 이들은 스스로 만든 인터페이스의 중독성 때문에 인류가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에 경각심을 내비친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디자인 윤리에 관한 논의는 환경에서 인간성의 문제로 축이 이동했는데, 트리스탄 해리스는 지금이 과거에 없던 특이한 지형을 가진다고 말한다. 실리콘 밸리에 종사하는 소수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전 세계 몇 십억 사람들의 경험을 선택 설계한다는 것이다. 이 논의는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시점이 아닌, 기술이 인간의 취약점을 이용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그 시기는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트리스탄 해리스는 오늘날이 기술에 의해 인간성이 체크메이트 된 시대라고 표현하며 논의의 중심에 디자이너가 있다고 덧붙인다.



인스타그램과 시각적 위계

며칠 전 평범한 솜베개에서 중앙이 움푹 파인 디자인으로 베개를 바꿨다. 원래 목이 좀 결리는 편이었는데 바꾼 디자인 덕분에 통증이 적어졌다. 수면의 질이 개선되면 하루 컨디션에 영향을 준다. 디자인이 내 삶에 작은 영향을 끼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작은 예일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핸드폰 속에서 울리는 수많은 앱들을 생각해보자. 이 중 몇몇은 전 세계 수십억 사람들의 하루에 영향을 끼치고 행동을 형성한다.

    넷플릭스 디자인 다큐 ‘Abstract’ 중 인스타그램 디자인 리드인 이언스폴터 편에는 인터페이스가 사람에게 주는 영향을 고려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스타그램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프로필 상단에 위치한 팔로워 수일 것이다. 인스타그램 측은 이 영역이 프로덕트 성장을 막고 있고 이 숫자가 일종의 ‘허상 지표’라고 판단한다. 우리는 팔로워 수가 많은 사람을 보며 다양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저 사람은 팔로워가 많으니 훌륭한 사람이겠지?’, ‘저 사람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위에 좋은 사람도 많겠지?’

    하지만 숫자 자체가 의미하는 바는 아무것도 없다. 유년기부터 팔로워를 의식하며 성장한 세대는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에 이 영역이 포함될 것이다. 다큐에는 이언스폴터의 디자인팀이 프로필 상단에 적용할 몇 가지 시안을 통해 시각적 우선순위를 논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화면에서 팔로워의 시각적 우선순위를 낮추는 대신 사용자 이름이나 직업을 강조하거나 프로필 사진을 강조하는 등의 시도를 해본다. 이언스폴터는 이 시안들을 통해 숫자가 아닌 사람이 드러날 수 있기를 꿈꿨다.

 


윤리와 도덕의 구분

생각해보면 한국에 살며 윤리와 도덕의 개념을 정확히 구분해 사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올바른 행동이나 선한 삶을 살아야 하는 정도로 혼용해온 것이다. 최근 콘퍼런스를 준비하며 영어의 Morality와 Ethics가 국어보다 개념적으로 선명히 구별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Morality가 정당하거나 옳은 것에 대한 '공동체의 평가'라면, Ethics는 상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것에 대한 '개별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Morality가 사회적으로 지켜나가야 할 공동선에 가깝다면 Ethics는 보편타당한 차원에서 개별적 존재들이 가질 수 있는 신념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개별적 존재에는 개인은 물론 조직이나 직업군이 포함될 수 있다. 우리가 디자인에서 고민해봐야 하는 것은 Ethics에 가깝다.



무언가를 진행하는 데 있어 완벽히 중립적인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 속 디자인은 대부분 조직의 이익이나 특정 의견의 지지에서 출발한다. 이로 인해 피해를 받는 쪽이 생기기도 하고 이익을 보는 쪽이 생기기도 한다. 의도와 다르게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 모든 면면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오히려 실무에서 경계해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키고 싶은 10개의 가치를 모두 잃지 않으려 애쓰는 것보다, 정말 잃고 싶지 않은 한 두 가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보는 것이 현실적인 Ethics에 가깝다. 더불어 자신이 속한 조직의 딜레마에 대한 평가를 섣불리 내리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점진적으로 얻어나가는 편이 멀리 봤을 때 더 나은 방법이다.



코로나와 생존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많은 회사들이 사업의 노선을 변경했다. 변화 이면에는 보통 회사의 생존이 걸려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해지면서 모임이나 물리적인 만남, 집 밖을 나가는 것 자체가 윤리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데이팅, 모임, 여행, 피트니스 산업 등은 존재 자체로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해서인지 그런 중압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을 관련 산업 디자이너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번 콘퍼런스에는 코로나로 인해 영향받은 팀들이 해당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나왔다. 특히 오프라인 기반 독서모임을 온라인으로 옮기려는 시도와 여행이 사라진 시대에 여행 산업을 지켜낸 경험 공유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한계 속에서 저마다의 최선을 찾으려 한 시도가 Ethics적이라고 느껴졌다.



착한 디자인에 관하여

'착한'이라는 수식어에는 마케팅적 함의가 개입된다. 지나가는 길에 '착한 임대인'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본 기억이 난다. 집세와 관련 있는 임대인에 대한 긍정적 유머인 셈이다. 하지만 이 수식어가 붙음으로써 더 심도 있고 복잡하게 논의해봐야 할 문제들이 너무 쉽게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다.

    착한 디자인 혹은 착한 마케팅의 대명사로 불리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탐스슈즈다. 이 브랜드는 신발 하나를 구매하면 저소득 국가 어린이에게 신발 하나를 보내는 마케팅을 펼친다. 표면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좋은 의도로는 충분하지 않다(Good intentions are not enough)'라는 기부 컨설팅 사이트를 운영하는 손드라 시멜페니크는 탐스슈즈를 비판하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 탐스슈즈가 신발을 보내는 국가에는 태국, 가나, 세네갈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자체적으로 신발을 생산할 수 있는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품질이 좋고 가격이 무료인 탐스슈즈가 대량으로 유입되면 지역 내 신발 산업의 가격 경쟁력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아이는 신발을 가지지만 신발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의 부모는 실직자가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손드라는 이러한 형태의 착한 마케팅을 진행할 때 고려해볼 수 있는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해 세심히 기획해야 한다고 전한다.



반면 와비파커라는 안경 브랜드는 이러한 손드라의 주장을 잘 수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와비파커는 패스트 컴퍼니라는 세계적인 경제지에서 구글과 애플을 제치고 혁신 기업 1위에 등극한 브랜드다. 사용자가 사이트에 접속해 안경 5개를 고르면 와비파커가 안경을 배송해준다. 사용자는 5일간 실생활에서 안경을 착용하고 마음에 드는 안경 하나를 선택한다. 그리고 시력 측정지를 함께 동봉한다. 그 후 사용자는 완성된 안경을 받는데 이 과정에 드는 배송비 모두를 와비파커가 부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와비파커 역시 탐스슈즈와 비슷하게 안경 하나를 구입하면 저소득 국가에 안경 하나가 전달된다. 더불어 시력을 측정하고 안경을 제작하는 기술도 커뮤니티에 함께 전수되는데, 이로 인해 저소득 국가에서 자체적으로 안경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지역 내 노동력을 이용하기 때문에 가격도 합리적으로 측정된다. 와비파커는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안경이 기부됐을 때 생산성 35%가 향상하고, 월 수입은 20% 상승한다는 데이터를 증명해가는 중이다.



무한 스크롤과 정지신호의 부재

디자인 윤리에 처음 관심이 생기게 된 계기는 무한 스크롤이라는 인터페이스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무한 스크롤이 일반화된지는 얼마 안 됐다. 이전에는 스크롤 중 바닥에 더보기 버튼을 눌러 화면을 더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인터페이스를 최초 고안한 사람은 애이자 래스킨이라는 디자이너다.(참고로 그의 아버지는 클릭-드래그 개념을 창시한 제프 래스킨이라는 사람이다. 제프 래스킨은 애플의 초창기 멤버이자 매킨토시 초기 기획에도 참여했다.)

    애이자 래스킨은 사용자가 스크롤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화면을 더 보고 싶다는 근거인데 바닥에 왜 정지신호를 줘야 하지?라고 생각했다. 바닥에 정지신호를 없애 버린 그의 가설은 맞았고 무한 스크롤을 선택한 서비스와 플랫폼의 스크린 타임은 눈에 띄게 증가해나갔다. 하지만 애이자 래스킨은 자신이 만든 인터페이스가 인류의 너무 많은 시간을 앗아간다는 사실에 각성하고 트리스탄 해리스와 함께 ‘Center for Humane Technology’를 조직한다. 그는 이 단체에서 인터페이스의 정지신호를 다시 복원하자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사회에 던지고 있다. 정지신호의 부재와 관련된 대표적인 인터페이스로는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자동재생 기능 등이 있다. 두 플랫폼의 상당히 많은 트래픽이 자동재생 기능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지 신호가 없으면 정말로 소비하지 않아도 될 것을 더 소비하게 되는 걸까?

    정지 신호의 부재와 소비량에 관련된 유명한 실험이 하나 있다. 음식 섭취 행동 전문가 브라이안 완 싱크는 탁자 밑으로 수프가 자동 보충되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평소처럼 수프를 먹었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참가자들이 평소 먹던 양보다 평균 73% 정도 수프를 더 섭취했다는 걸 알게 됐다.


애이자 래스킨(Aza Raskin)

 

커머셜한 인터페이스를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데 있어 스티브 크룩의 '(사용자를) 생각하게 하지 마!'는 교본처럼 여겨진다. 책을 덮고 나면 사용자가 고민할 지점을 최소화할수록 좋은 인터페이스가 될 거라는 확신이 든다. 사실 나는 스티브 크룩의 빅팬이고 책의 많은 부분이 커머셜한 인터페이스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애이자 래스킨의 주장은 역설적인 측면이 있다.

    그는 디자이너들에게 일시 정지를 기준으로 디자인하기를 권한다. 불편할 수 있지만 정지신호를 복원해 결정의 권한을 사용자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제작자가 아닌 사용자로서 내 하루를 돌아보았을 때 너무 많은 선택의 지점들을 시스템에 맡기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그러한 구조의 반복이 끼칠 예측할 수 없는 영향이 두렵기도 하다.

    솔직히 내일 당장 이런 종류의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는 일이 주어졌을 때, 윤리적인 측면을 수용할만한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여기에는 조직 내 철학적 합의와 이를 받아들일 사회적 분위기가 함께 조성돼야 하기 때문이다. 급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다양한 논의가 일어나는 지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마치며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영미권에 확산되고 있는 디자인 윤리에 관한 논의는 이미 성숙한 것처럼 느껴진다. 블로그나 다양한 매체에서 양질의 글이 매일 생산되고, 어떤 것은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되기도 한다. 나는 커머셜한 것과 윤리적인 것이 함께 논의되는 그들의 다양성이 부러웠다. 페이스북에 디자인 윤리와 관련된 그룹을 만든 것은 이러한 결핍을 해소하고 싶음이 컸다. 한국에서도 관련 정보들이 직접 만들어지고 유통되면 좋겠다. 다행히 그룹을 운영하며 주제와 관련 있는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알게 되고 서로 영향을 주며 배우는 중이다. 조바심보다 지치지 않게 적당한 보폭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적절한 시기에 중요한 의제를 마련해준 디자인 스펙트럼에 깊은 감사를 전하며 이만 글을 줄인다.



'지금, 디자인에 윤리가 필요한 이유' 끝.


관련 자료 및 링크


매거진의 이전글 예쁜 디자인이 중요할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