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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물장어 Dec 28. 2020

[시네마 톡] 원더우먼1984

아쉬운 이야기, 소중한 경험

  감동적이었다. 아이맥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로고를 볼 때 가슴이 웅장해졌다. 곧바로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작년 10월 조커를 보고 1년이 넘은 시점에 만난 아이맥스는 만감을 교차하게 했다. 영화의 시작, 다이애나의 고향 데미스키라에서의 경기 장면은 왜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하는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압도적인 화면과 웅장한 사운드는 연신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였다.


  원더우먼 1편은 배트맨 대 슈퍼맨 이후 망해가던 DC 영화에 심폐소생을 시킨 작품이다. 1편은 메시지도 내용도 액션도 좋았다. 무엇보다 갤 가돗이라는 매력적인 배우를 발견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그러나 원더우먼 1984는 전작의 이런 위치에 미치지 못한다. 원더우먼 1984는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전작에서 약 60년 쯤 후인 198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레트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초반부는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주변의 모든 사람과 환경은 80년대의 느낌을 한껏 풍기고 있지만 정작 주인공인 다이애나는 홀로 현재 시대에 와 있는 것 같았다. 헤어스타일이며 의상이 너무 현대적이라 극에서 배경으로 설정한 80년대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레트로 영화가 주는 향수를 마음껏 느끼지 못하게 하였다. 


  원더우먼 1편처럼 2편도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1편은 선과 악으로 구분된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루었고 2편에는 인간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1편의 경우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인간의 추악함을 보여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선한 부분이 존재하고 이것이 희망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당시 독일군의 악랄함과 이에 맞선 스티브의 희생을 통해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이번 작품 1984는 인간의 욕망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그려 메시지에 대한 공감을 얻는데 실패했다. 영화는 인간이 소원하는 것, 즉 욕망을 쉽게 채우려는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 때 이 세상은 혼탁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 때문에 할 수 없지만 이러한 내용을 풀어내는 방식이 촘촘하지 않다. 특히 마지막에 가서는 개연성도 떨어지고 너무 맥이 빠지는 형식으로 마무리를 지어서 메시지에 공감이 되지 않았다. 히어로 영화에서 교훈을 줘야한다는 강박이 만들어낸 패착이 아닐까 싶다.


  더 큰 문제는 액션이다. 1편에 비해 인상에 남는 액션 장면이 거의 없다. 원더우먼의 파워가 드러나는 장면이 많지 없다. 액션 시퀀스는 짧고 힘이 없고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았다. 강력한 신 아레스와 일전을 겨룬 1편 마지막 전투에 비해 너무 허망하게 끝난 이번 작품의 마지막 전투 또한 맥이 빠지게 한다. 충분히 매력적으로 잘 쌓아놓은 빌런은 허무하게 퇴장한다.


  원더우먼 1984에서는 DC의 다른 캐릭터들과의 연결점을 하나도 보여주지 않는다. DC 유니버스 안의 캐릭터 원더우먼이 아니라 그냥 단독 영화로 봐도 무방하다. 1편만 해도 배트맨을 살짝이라도 등장을 시켜 후속 편들과의 연결고리를 약간이나마 만들어 놓은 반면 이번 작품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마블이 개별 히어로 독립 영화에서 다른 캐릭터들을 등장시키고 이들 간의 관계를 전체 세계관 안에 녹여내는 것과는 철저히 다른 모습이다. 이미 몇차례 시도를 하다가 실패하자 이젠 아예 포기한 듯 싶다. 마블과 DC의 제작 역량의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여러 좋지 않은 평을 했음에도 여전히 기분은 좋다. 2시간 반에 이르는 시간 동안 마스크를 쓰고 중간중간 알콜을 뿌리는 수고를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OTT가 극장의 자리를 위협하지만 극장은 여전히 영화를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OTT는 이야기만을 팔지만 극장은 이야기에 더해 경험을 판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느낀 오늘의 경험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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