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스페이스 오페라이자 메가 IP로 가는 첫발
정말 오래 기다린 작품이다. 작년 여름 경 개봉하려던 영화는 코로나로 인해 추석 개봉으로 한차례 연기되었고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코로나로 인해 또다시 무기한 연기하다 끝내 넷플릭스에서 오늘 공개되었다. 개봉 첫날 극장에서 눈으로 확인하려 했는데 결국 오늘 넷플릭스 공개와 동시에 TV 화면을 통해 만나보게 되었다.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전율을 잊지 못한다. 헐리웃에서나 제작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가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멋진 비주얼로 탄생하다니... 놀라웠다. 실제 영화를 통해 확인한 우주의 미장센은 예고편에서 본 것 이상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비주얼은 지금까지 봤던 모든 한국영화들을 압도한다. 장면 하나하나가 헐리웃 영화에서 본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만일 극장에서 봤으면 온몸에 소름이 돋을 뻔했다. 특히, 우주를 날아다니는 비행 장면에서도 어색함이 전혀 없었으며 연출 또한 훌륭했다. 헐리웃 평균 제작비(약 $6,500만)의 반도 안 되는 비용(약 240억원)으로 이 정도의 화면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 정말 놀랍다.
승리호는 국내 최초 SF IP 비즈니스를 시도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마블의 대성공 이후 영화 시장은 IP 중심으로 트렌드가 급격히 바뀌었다. 특히, 하나의 세계관을 여러 매체 통해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트랜스 미디어 전략이 콘텐츠 비즈니스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전략이 성공하려면 매력적이고 독특한 캐릭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잘 형성되면 IP가 커다란 확장성을 갖게 되고 이는 다양한 분야에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해 준다. 그중 가장 확장성이 가장 큰 장르는 마블, DC, 스타워즈, 해리포터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수퍼히어로, SF, 판타지 장르라 할 수 있다.
승리호는 이런 시도를 한 국내 최초의 작품이다. IP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는 카카오페이지는 승리호 제작 초기에 투자를 결정하고 IP를 공유하기로 했다. 마블처럼 트랜스 미디어 전략은 아니고 승리호의 기본 세계관과 캐릭터만 공유한 채 웹툰과 영화로 각각 제작하는 방식이다. 애초에 승리호는 웹툰을 통해 먼저 선보이고 이에 대한 기대감을 영화 흥행으로 그대로 잇고자 했다. 그러나 코로나로 개봉이 연기되는 바람에 이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지 못했다. 웹툰은 15화 만에 누적 조회수 500만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당초 계획대로 아무 문제없이 극장에 개봉했다면 1,000만은 충분히 돌파하고 남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81309480001465
영화는 메가 IP가 되고자하는 비전을 영화 내용에 그대로 담았다. 먼저 캐릭터에 신경을 쓴 티가 역력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처럼 저마다의 특징이 강한 캐릭터들을 구성해 이들 간의 케미를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극을 풀어나갔다. 그런데, 마블처럼 촘촘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송중기의 스토리에 잘 공감이 되지 않았고 빌런의 악행 이유도 막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화려한 비주얼에 익숙해진 중반부 이후부터는 집중력이 떨어졌다. 캐릭터들의 표면만 만들고 내면은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느낌이다.
영화에는 다양한 국적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독특한 것은 이 다양한 국적의 인물들이 저마다 모국어로 대사를 한다는 점이다. 동시통역기의 발달로 모두가 자국 언어로 이야기를 해도 소통이 된다는 설정인데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에서 이렇게 국적을 강조하는 것은 처음 본다. 해외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기 때문에 만든 설정이 아닐까 한다. 비영어권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해외 관객에게 어필하기 위한 하나의 요소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천편일률적으로 영어로만 대화하는 헐리웃의 설정보다 훨씬 현실적이라 마음에 든다. 비 영어권 국가에서도 비슷한 생각이지 않을까 한다.
스토리 라인의 경우 아쉬운 부분이 많다. IP 구축을 위해 안전한 길을 선택하려다 보니 스토리는 클리셰들로 범벅이 되어 있다. 이미 헐리웃에서 많이 본 장면들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스포일러라 직접 언급하기 어렵지만 후반부의 스토리 전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다수 등장한다. 국내 첫 스페이스 오페라 작품이라는 점들이 이런 점들을 다 상쇄하게 해 주지만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다.
어쨌든 승리호는 내 기대 만큼을 충족시켜 준 작품이다. 워낙 기대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망을 시키지 않았다. 스토리 라인과 캐릭터 구축에 일부 아쉬움이 있지만 이 정도면 스페이스 오페라와 메가 IP로 가는 첫발을 충분히 훌륭히 내디뎠다고 평가하고 싶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만큼 한 번에 전 세계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다른 나라에서도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넷플릭스에서 좋은 반응이 나오게 된다면 후속 작품이 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때는 부디 극장에서 IMAX로 관람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국산 스페이스 오페라를 IMAX로 본다면 또 다른 감동이 있을 것 같다.